2천억대 국회 연수원 놓고 신구 권력 ‘충돌’


김태랑 전 국회 사무총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2천억원대의 국회 의정연수원 건립 사업이 신임 사무총장의 등장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국회 사무처는 강원도 고성을 국회 연수원 후보지로 결정했다. 그러나 박계동 사무총장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된다’고 밝히면서 신구 총장 간 기싸움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박 총장은 후보지 선정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김 전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김 전 총장 측은 박 총장의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주기 위해 제동을 걸고 있다고 의혹을 보내고 있다. 국회연수원 후보지 선정을 두고 벌어지는 신구 총장 간 다툼이 자칫 지역 간 감정 대결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감도 확산되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김태랑 전 사무총장 시절인 지난 4월 11일 2천2백억원 가량 소요되는 국회의정연수원 대상 부지로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28지(약칭 도원지구)를 최종 확정해 통지문을 강원도에 보냈다. 이어 같은 달 20일에는 국회 공보관이 강원도청 기자실을 찾아 국회연수원 건립부지로 고성군 도원지구를 확정 발표했다. 5월 14일에는 국회 사무처와 강원도 및 고성군이 참여한 가운데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기공식을 갖기도 했다.


제천시, 고성군-국회 사무처 ‘빅딜설’ 제기

사실상 고성군 소재 군부대와 토지교환 협의까지 마친 상황으로 고성군이 국회 연수원 후보지로 결정된 것이다.

당시 경쟁 부지로 충북 제천시를 비롯해 강원도 횡성군과 인제군이 경합을 벌였다. 특히 유력한 경쟁 도시는 충북 제천시였다. 한나라당 지명직 최고위원인 송광호 의원의 지역구다. 송 의원은 경쟁에서 탈락한 이후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와 김형오 국회의장을 설득해 국회 사무처가 18대에 다시 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바로 박계동 신임 총장이 임명된 이후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박 총장 역시 공적인 자리에서 ‘재검토’를 긍정적으로 밝히면서 국회 연수원 사업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충북 제천시를 비롯해 괴산군, 경남 산청군이 국회연수원 유치를 위한 신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특히 한번 고배를 마신 제천시는 부시장을 단장으로 ‘국회연수원 유치 및 제천종합연수타운 조성 전담 데스크포스’를 구성, 제천과 서울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홍보전에 돌입했다.

괴산군 역시 읍면 주민자치위원 등 110명으로 국회연수원 유치 추진위를 결성한 뒤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제천시의 경우, 강원도 고성으로 국회연수원 후보지를 선정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나아가 조성위는 “고성군이 2005년 금강송 80여 그루를 국회에 기증하고 국회사무처와 성군 도안면이 자매결연을 통해 교류한 것과 관련 후보지를 사실상 내정한 뒤 형식적으로 선정절차만 밟았다는 ‘빅딜설’을 제기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강원도 측은 발끈했다.

강원도 속초 고성 양양이 지역구인 무소속 송훈석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의원 299명에게 ‘국회의정연수원 건립부지에 대해 알려드립니다’는 자료를 배포하면서 “관계법령 저촉 여부 및 입지 여건 등에 관해 관계부처 협의를 마쳤고 국회실문단의 현지 답사, 국회 사무총장의 후보지 방문, 국회 소속기관 주요 간부 간담회 개최, 각 후보지에 대한 설명 및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의정연수원 부지를 결정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박계동 총장, 고향 선물출마설까지 복마전

이어 송 의원은 “뒤늦게 후보지에서 탈락된 지역이 이의제기를 하며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연수원 후보지 신청서를 낸 경남 산청의 경우 박계동 사무총장의 고향이다”며 “송파에서 공천 탈락한 이후 고향에 출마하기 전에 선물을 줄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의구심을 표출했다.

또 그는 “지금 강원도민의 절반 이상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며 “이번 일로 한나라당 텃밭으로 여기는 강원도민의 민심이 사나워졌다”고 전했다.

박계동 사무총장 측 역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임기 초부터 전임 총장이 추진하던 사업을 뒤집는다는 데 부담감을 표출했다.

박 총장의 한 측근은 “박 총장을 만났을 때 하는 말이 전임 총장이 향후 10년 동안 할 일을 다 해서 내가 할 일이 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 의아했다”며 “전 총장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출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선정 경위 문의 속 ‘무용론’ 솔솔

이어 그는 “박 총장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는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다”며 “선정 과정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해소하고 난 후 후보지 결정은 2차적인 문제 인식이다”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나아가 박 총장의 고향인 경남 산청에서 후보지 신청과 관련해서는 ‘아는 바 없고 무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김태랑 전 총장은 2년 임기 동안 국회 내 주차시설 시스템 완비로부터 도로공사, 조경 사업, 국회 의원회관 별관 건립 추진, 의정관 건립 등 많은 사업을 의욕적으로 벌였다. 특히 지난 제헌 60주년 국회 기념식 행사에서 불꽃놀이를 비롯해 티셔츠 제작 등과 관련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김 전 총장이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라는 점이 한나라당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김 전 총장은 평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 차장을 지냈고 새정치국민회의 사무부총장, 15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을 거쳐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에 민주당 일각에서는 금명간 전임 총장에 대한 신임 청장 측의 공세가 시작될 공산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기 국회가 열리고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김 전 총장이 이뤄놓은 온갖 사업 관련 의혹이 봇물처럼 제기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특히 청와대에서 국회연수원 후보지 관련 문의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한 인사가 전화를 걸어와 “선정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느냐”고 경위를 문의한것으로 전해졌다.

송 의원 측에서는 “청와대 역시 후보지 선정이 변경되거나 보류될 경우 강원도 민심 이반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며 “10%대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 제고하기위해서라도 고성군에 국회연수원이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회연수원 부지 선정관련 지역감정에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겹치면서 시민단체에서는 고유가 시대에 국회의원들의 대형차 증가 추세와 함께 2천억원대 호화판 국회연수원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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