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등록전이어서 구속당한 김두한“그거야 어디 저희들이 한 일인가요. 저희들이야 그저 상부에서 지시를 하니 뫼시고 있는 것 뿐이지요.”교도소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변명답지 못한 변명을 했다. 그러자 김두한의원은 “그 따위 말이 내게 통할 줄 알어? 어서 빨리 경무대에 전화를 해. 내가 좀 이승만 대통령에게 따져봐야겠단 말야!”하고 마구 흥분하며 고래 고래 소리쳤다.소장은 여전히 역시 어쩔 바를 몰라하며 “김의원님, 제발 이러시지 말고 진정하십시오. 김의원님이 자꾸 이러시면 저희들의 밥줄이 끊어진다니까요.”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김두한은 더욱 흥분해 가지고“소장, 내 말이 안들려? 철책을 확 부숴버릴 거야!”“김의원님, 제발 좀 살려주십시오. 상부에 연락했으니, 곧 담당 검사가 오실 것입니다.”“담당 검사가 온다고? 새끼들, 날 이따위로 가둬놓고 무슨 낯짝으로 오겠다는 거야?”김두한은 솥뚜껑같은 주먹으로 쇠창살을 쾅 소리가 나게 때렸다. 온 감방안이 쩌렁하고 울렸다.

금방이라도 빵깐을 부숴버리고 말 것 같은 기세였다.“김의원님,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세요. 담당 검사가 오시면 어떤 대책을 세워줄 것입니다.”교도소장은 성난 김두한을 달래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때 급보를 받은 담당 검사와 서울지검 부장검사가 허겁지겁 김두한의 감방 앞으로 다가왔다.“김의원님, 왜 이러시오?”부장검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부장검사는 김두한에게 깍듯이 ‘김의원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어제의 뒷골목 황제가 아닌, 십만 선량에 의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니 ‘의원님’이라는 칭호가 너무도 당연했다.“응, 강검사 잘 오셨소. 그렇잖아도 내 당신을 좀 만나려던 참이었소.”응어리졌던 김두한 의원의 날카로운 화살이 강검사에게로 날아갔다.“그래 강검사, 날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잡아가둬두는 거야? 정말 왜들 이래? 빨갱이 잡느라고 최선봉에 서서 뛰어다닌 나를. 내가 누구보다도 투철한 반공투사라는 것을 강검사도 잘 알고 있잖아?”이렇게 말하는 김두한의 눈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아, 알다마다요. 왜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김의원님의 공로야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지요. 모르긴 해도 김의원님께서 그렇게 북한 공산당과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 나라는 공산당의 거센 불길을 끄지 못한 채 공산화 되었을지도 모릅니다.”강부장검사는 침착하게 김두한의 화를 가라앉히려는데 온 힘을 다 쏟았다.“그런줄 알면서 왜 날 잡아가둬두는 거야? 더구나 나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인데 십만선량을 봐서라도 당신들이 나를 함부로 구속할 수 없잖아?”“물론 현역 국회의원을 구속할 때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요.”“그런데 왜 함부로 나를 구속해! 국회의 동의를 얻었어?”“아 참, 영감님도 딱하십니다. 국회의원에 당선하시긴 하셨지만 아직 의원등록을 안하셨으니,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도 구속이 가능합니다.”“뭐라구? 이 자들이 누굴 놀리는 거야?”“놀리다니요.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좀 진정하시고 불만이 있어도 참아 주세요.”“좋아,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는데, 날 구속한 이유가 뭐요?”“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선거법 위반이라고.”“뭐, 선거법 위반? 단순한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을 구속한단 말이오?”강부장검사를 쏘아보는 김두한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김의원님,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저희가 적부심을 하고 있는 중이니 곧 판결이 내려질 것입니다.”강부장검사는 입장이 거북한 듯 교묘한 말로 김두한을 설득하려 했다.“필요없어. 당장 경무대에 전화를 걸어. 내가 직접 이승만대통령을 만나 따져 봐야겠어!”“아, 글쎄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라니까요. 조용히 기다리고 계시면 이삼일 사이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에잇 더러운 놈!”김두한은 강부장검사에게 이렇게 내뱉으며 울화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주먹으로 철책을 내질렀다. 철책이 휘어질듯 부르르 떨었다. 그런가 하면 빵깐 전체가 쩌렁쩌렁 요란하게 울렸다.이윽고 김두한은 더 이상 검사에게 따지지 않았다.

아니 지쳐서 물러서고만 셈이었다.초여름의 더위는 빵깐 안을 후덥지근하게 했다. 김두한의 가슴이 확확 막히도록 더웠다. 아니, 그것은 김두한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김두한은 어느 틈엔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한증탕에 들어앉은 것처럼 땀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런 중에도 김두한은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님, 기뻐하십시오. 이 불초 소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것도 정치 일번지인 서울중의 서울이라고 할 수 있는 종로에서 당당히 다른 후보와 대결하여 다른 후보를 여지없이 물리치고 당선된 것입니다….)김두한 의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온갖 상념들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청산리의 용장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숨어 살아야 했고, 그나마도 8살에 어머니마저 잃고, 외삼촌의 집인 개성에 가서 산에 가 매일 땔감을 해나르기가 지겨워 외삼촌 집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걸어서 서울로 도망쳐 왔지 않은가. 그리고 거지에 의해 수표교 가리밑에 끌려가 거지 노릇을 하다가 원노인의 도움을 받아 거기서 틈틈이 무도를 닦았지. 그런데 원노인이 죽자, 다시 원노인 집에서 나와 우미관 깡패 조직에 들어가 잔뼈가 굵었고, 그 두목이 되고, 광복이 되자, 부하들과 함께 빨갱이들을 때려잡다가 수 없이 죽을 고비를 겪게 되고, 유석 조병옥박사의 권유로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여 당선이 되고 한 것이 마치 영화화면처럼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그 중에서도 김두한의 가슴을 가장울렁거리게 한 것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꿈만 같았다.“김군, 이번 5·20선거에 한 번 출마해 보지 않겠어?”조병옥 박사가 어느 날인가 김두한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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