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기획] 15명 식솔 데리고 탈북한 길수 가족 스토리-⑨
[탈북기획] 15명 식솔 데리고 탈북한 길수 가족 스토리-⑨
  • <정리=정재호 기자>
  • 입력 2020-10-16 15:15
  • 승인 2020.10.16 19:41
  • 호수 1381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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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길은 오로지 탈출뿐이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는 ‘장길수 가족’ 탈북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문 대표는 지난 1999년 문구 사업을 위해 중국에 진출했다가 알게 된 조선족 여성을 통해 길수 가족과 친척을 소개 받았다. 당시 15명이나 되는 길수 가족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다. 문 대표는 지난 7월28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20년째 북한인권운동을 해왔지만 북한의 인권상황과 중국에서 떠돌는 탈북자 인권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000년 문 대표는 길수 군과 그의 가족이 경험한 북한의 인권실태를 글과 그림으로 알리기 위해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현재 책은 절판됐다.

당뇨병에 걸린 가장이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처와 아들이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그 후 이들은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문학수첩]
당뇨병에 걸린 가장이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고 처와 아들이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그 후 이들은 붙잡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문학수첩]

 

이동학 - 이동학 씨는 장길수의 이모부이자 이화영 씨의 아버지다. 함경북도 화대군 출생으로 노동당원이다. 1999년 1월 탈북했다. 이 씨의 글은 장길수가 쓴 ‘눈물로 그린 무지개’에 게재됐다. 이 씨는 책이 출판된 2000년 당시 48세였다. 

-대외 노무의 소원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동학 스토리>
한 해가 지나고 98년 초 또다시 대외 노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업의 수 많은 종업원들 속에서 몇 명밖에 선출되지 않는데 나는 그럼에도 또다시 선발됐다. ‘성분 좋은 사람’들로 엄선을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다시 뽑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근심이 생겼다. 근심이란 다름 아닌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다. 북한 돈으로 약 4만 원, 달러로는 200달러가 있어야 했다. 어렵게 사는 우리 형편에 하루하루 끼니 이어 나가기도 힘든 가운데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내와 자식들까지 온 가족이 진지한 협의 끝에 대외 노무의 길을 택했다. 높은 이자 돈을 빌려 가든지 아니면 형제들의 협조를 받든지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기로 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들에겐 다시 한번 찾아가 부탁해 놓았다. 평양을 비롯해 먼 곳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방법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길게 써서 보냈다. 

그리고 그전 관례대로 서류 작성과 신체검사를 했다. 그런데 도에서 다시 신체검사를 받으라 했다. 웬일인지 검사 결과 혈압이 높아 불합격으로 나왔다. 함께 간 동무들 중에는 원래부터 혈압이 높아서 앓았거나 또는 앓지는 않아도 혈압이 높다고 근심하는 동무들도 있었다. 그런 동무들 가운데 몇 명은 혈압이 230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병원 의사들에게 부탁해 정상으로 바꿔 나왔다. 

평소 나는 혈압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고, 혈압을 재어 보았을 때도 높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나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100원을 담당 의사에게 주고 혈압 수치를 합격선으로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 혈압이 높은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의사들도 그렇게 해야 먹고 살 수 있기에 이해는 됐다.

다음은 도당에서의 면접이 있었다. 대외 파견을 맡아보는 도당 과장과 지도원이 면접을 시작했다. 이미 준비된 문건들이 있으므로 면접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다지 어렵지 않게 통과됐다. 면접은 오전 9시경에 시작하여 오후 4시경에 끝났다. 도당 과장과 지도원, 그리고 우리 인솔 지도원까지 세 사람에게 고급 담배 한 보루와 점심과 저녁 식사까지 부담하여 한 사람이 80원씩 바쳤다. 도에서의 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통지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중앙당 면접과 신체검사만 남았다. 중앙당 면접과 신체검사는 도에서 하던 것보다는 더 쉽다고 했다. 때로는 중앙당 면접과 신체검사를 하지 않고 대외 파견부에서 필요한 강습만 하고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기다림과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내려와 4만 원이나 드는 비용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할 때, 당에서 내 이름을 빼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넣었다. 결국 두 번째 대외 노무의 소원도 수포로 돌아갔다. ‘너희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성실한 인간들을 우롱하는 너희들이 증오스럽고, 너희 같은 놈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증오스럽고, 너희 같은 놈들을 기둥으로 하는 사회가 증오스럽다. 너희들과는 한 하늘을 쓰고 살 수 없다’

“한 끼라도 먹게 이것 좀 사주세요” 우리 집 총재산을 장마당에 내놓았습니다. 팔 것이라곤 이런 살림살이뿐이었습니다. [문학수첩]
“한 끼라도 먹게 이것 좀 사주세요” 우리 집 총재산을 장마당에 내놓았습니다. 팔 것이라곤 이런 살림살이뿐이었습니다. [문학수첩]

 

나와 온 가족이 3년간(96~98년) 소중히 안고 왔던 노무의 ‘아담의 집’은 이렇게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나는 그 ‘아담한 집’을 내손으로 불태워버린 죄책감으로 얼마동안 정신적 허탈감에 빠졌다. 대외 노무, 그것은 우리 온 가정의 희망이고 소원이었으며, 또한 온 가족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집’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가장인 내가 언제까지 절망감, 정신적 허탈감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비록 대외 노무의 ‘아담한 집’은 깨졌어도 내일을 위해 아내와 자식들은 ‘생활 전선’에서 싸우고 있지 않은가. 

먹고살기 위하여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는 것을 가리켜 ‘생활 전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국 각지 그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었고, 또한 남녀노소 그 누구에게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다. 이 말은 아마도 90년대 초부터 새로 생겨난 단어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부모들을 도와 일찍히 ‘생활 전선’에 출근 했는데, 학교에도 가지 않고 생활 전선의 일원으로 된 것은 96년도 초부터다. 

북한에 불어닥친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산과 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풀이 한창 왕성해졌을 때는 집집마다 그것이 유일한 식량일 때도 많았다. 한번은 직장에서 색깔이 까만 떡을 하나씩 먹어 보라고 나누어줬다. 설명에 의하면, 만경대 1호 라고 하는 약이다. 이것은 다섯 가지의 나뭇잎과 풀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그 약으로는 아무 나뭇잎이나 풀로 음식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먹어 보았는데 황칠나무잎 냄새도 나고 쓰기도 하고 텁텁한 감도 났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감을 느낀다고 했다. 

인민반(반장격에 해당)에서도 그 약으로 음식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소개 선전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후에 더는 그 약에 대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풀만 캐오는 것이 아니라 철에 따라 과일, 채소, 곡식 등 어쨌든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주워 왔다. 처음엔 계속 이삭 줍기만 해 오던 것이, 주워 올 것이 없어 그런지 농장에서 관리하는 농산물을 훔쳐 오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주워 올 것이 적어서 많이 못 가져와도 훔치지는 말아라, 어떻게 도적질하면서 살겠는가’ 했다. 아이들은 절대로 훔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끼리 떠들어대고 있었다. 과수원에 들어가 사과를 따 가지고 나왔는데, 과수원 제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경비원이 자기네를 붙잡았다고 했다. 그 경비원은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 집은 어디냐, 부모는 뭘 하느냐’면서 꼬치꼬치 따졌다. 그러더니 혼은 내지 않고, 사과 주머니를 자기 동무(농장원) 집에 가져다 주라고 했단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농작물을 훔치면 안 된다고 또 가르쳤다. 그렇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따끔하게 야단쳤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위압적으로 들렸는지 아이들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맏이가 입을 열어 한마디 했다. 

<정리=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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