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립편집위원
이경립편집위원

필자는 민주화로의 이행과 독재로의 회귀를 두고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가 대혼란을 겪고 있던 1986년 대학에 입학했다.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던 제5공화국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민주화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군사정권이 일합을 겨루던 시기였다.

당시는 조직화된 노동세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민주화를 이루려는 야당세력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대학생들이었다. 1986년 초 필리핀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기는 그들보다 더 민주화 의식이 앞서 있다고 생각하던 우리나라 학생운동에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대학교에서 교련교육을 받고 1학년 때는 문무대 입소, 2학년 때는 전방 입소를 일주일씩 다녀옴으로써 90일간의 군생활 단축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남학생들에게는 문무대입소와 전방 입소는 현역 입대 시기를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이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벚꽃이 지기도 전에 문무대 입소를 마친 필자는 4.19혁명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사이의 한 달여간 대학생으로서의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중간고사는 최루탄이 난무하는 교정에서 크리넥스 티슈를 벗 삼아 치렀고, 일부 과목은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아도 학점을 따는 데 문제없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따라 시험을 치루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학점을 따기는 했다. 그리고 그 학점이 나중에 유학을 가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선배 말 들어 손해 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1987년 대학교 2학년 때는 더 많은 수업을 거부하고, 더 많은 시험을 거부하고, 급기야 전방 입소도 거부했다. 그리고 6월 항쟁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 나아가는 데 아주 조금의 힘을 보탰다. 물론 그 힘에는 아주 작은 희생도 곁들여 있다.

6월 항쟁 이후, 제5공화국 헌법의 개정작업이 이루어지는 등 민주화로의 이행이 진행될 즈음, 조교를 통해 전방입소를 거부했던 학생들에게 다시 입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입소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필자는 전방입소를 하는 대학생들에게 45일간의 군생활을 단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대학생들에게만 주는 특권이라고 생각했기에 입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군에 입대한 후에 일부 후임병보다도 늦게 전역을 맞이했다. 전방 입소 거부는 필자가 선택한 것이고 필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진 것이다.

정부의 공공의료 개혁정책에 반대해 의사국가시험을 거부했던 의대생 대표단은 YTN의 시사토크 ‘알고리줌’에 출연해, 국시 거부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따른 단체 행동이었고, 국시 재응시를 요청할 상황도 아니라며, 국시 거부에 대한 사과표명을 하지 않았다.

조승현 의대협 회장은 “많은 분들이 기득권이나 특권의식 이런 식으로 저희를 수식하고 계시는데, 사실 저희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학생이자 청년이거든요. 올바른 의료 환경이 조성되고 나면 올바른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의료계의 미래를 밝히는 올바른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정부가 추진했던 의료 정책들,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 항의를 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했던 것이고, 그 시험을 위해서 단체 행동을 또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에요”라며, 사과 등의 단체 의사표명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그들의 스승들이 국시기회를 허하라며 대신 사과했다. 그런데 누구 맘대로! 우리 자랑스런 의대생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정부는 의대생들의 기개를 꼭 지켜주기 바란다. 이들은 향후 우리 의료계를 이끌고 나가야 할 사람들인데 좌절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30여 년 전의 20대 필자가 알았듯이 지금의 그들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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