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접시에 쥐가 내린 적이 있나? 대근은 그렇게 묻고 나서 머리를 흔들며 실토했다.“정말이지 머리털 나고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 갑자기 수백 볼트 전류에 감전된 듯 찌지직 하고 쥐가 내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 거야. 그러니 이 싸부의 체면이 어찌 됐겠어. 교오코가 풀이 죽은 내 물건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 밀치며 내뱉더라.”-간고꾸노 에브리바디 레비트?한국 남자들은 사부님같이 모두 토끼냐? 그 비꼬는 말을 듣는 순간 열이 확 뻗치는데 번개같이 네 얼굴이 떠오르더라. 그렇지! 맞아! 강쇠 놈이라면 한국 남자의 본때를 보여줄텐데. 또 너라면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까 궁금하기도 하고.“잠자코 듣고 있던 강쇠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네 말 들으니 교오코가 별난 축에 들긴 드나 보네. 맞아. 남자 거시기에 쥐를 내리게 할 정도면 일단은 교오코의 몸이 호리병 구조라고 봐야겠군.”

“호리병? 그게 뭔 소리야.”“이런 무식하긴. 공부 좀 해라 공부. 아는 산부인과 의사한테 들은 얘긴데 말이야. 명기들은 대부분 호리병 구조를 가졌대. 그러니까 남자 거시기가 들어가면 옴싹달싹 못하는 거야. 반면에 예로부터 시집 가서 소박맞고 쫓겨나는 여자들은 십중팔구 항아리 형이라는 거야.”“항아리? 히히 알만 하다. 항아리엔 된장이나 담아야지, 달리 뭔 소용이 있겠어.”대근은 낄낄거리며 태껸도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 들어서자마자 눈처럼 피부가 하얀 여자애가 강쇠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헐렁한 도복 차림임에도 터질 듯한 젖가슴과 팽팽한 둔부의 선이 그대로 살아 움직였다. 그런가 하면 바로 옆에선 통통하고 귀여운 인상의 앳된 여학생이 비지땀을 흘리며 올려차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대근은 엄숙한 사범의 표정으로 돌아가 수련생의 동작을 일일이 지도해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강쇠는 예리한 눈빛으로 여자 수련생의 몸매를 관찰했다. 이윽고 지도를 끝낸 대근이 여자 수련생을 따로 불러 한 사람씩 강쇠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교오코, 저쪽은 마사코양이야. 둘 다 태껸에 입문한 지 두 달 된 초보 수련생이지. 인사들 나눠.”그러면서 대근은 여자들에게 강쇠를 ‘한국여자들이 알아주는 터프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교오코의 눈빛이 고양이처럼 변하며 강쇠에게 관심을 나타냈다. 반면에 귀엽고 앳된 마사코는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만 건넸다. 강쇠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나는 성을 엄청 밝히고, 하나는 성을 전혀 모르는 버진이라고. 강쇠는 교오코에게는 남자로서 권리를, 마사코에게는 의무감을 행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여자들이 도복을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대근이 다가와서 강쇠에게 귀속말로 말했다.“어때, 오늘 밤 내가 자리를 만들어줄까. 잠깐 다시 생각해봤는데 난 아무래도 교오코의 상대가 안될 것 같아. 네가 교오코를 맡아 한국남자의 자존심을 살려줘라.”대근은 여자보다는 친구가 더 좋았는지 스스럼없이 양보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강쇠의 대답은 다소 엉뚱했다.“아냐. 오늘 밤은 안되겠어. 교오코를 상대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할 일? 그게 뭔데.”“일본 여자의 몸을 알아야겠어. 한 여자 한 여자마다 일희일비 해선 큰 일을 못해. 다시 말해 나무를 보고 숲을 봤다고 얘기할 수 없는 이치지.”“뭐야. 문자 쓰지 말고 톡 까놓고 말해. 어쩌자는 얘기야.”“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일본 여자들 신체검사부터 해봐야겠다 이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왜 그 유명한 혼탕부터 구경시켜 주는게 순서일 것 같아.”“혼탕? 이그 또 헛소문 듣고 왔군. 일본 혼탕은 먼 옛날 얘기야. 그렇다고 그런 혼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봤자 할머니들밖에 볼 수 없어. 그런데 할머니도 정말 괜찮겠냐?” 남녀 혼탕부터 가자는 강쇠의 말에 대근은 한차례 비꼰 뒤 면박을 주었다.“신체 검사는 무슨 얼어 죽을 신체검사야. 제 아무리 미녀건 추녀건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건 다 똑같지. 그러지 말고 강쇠야. 오늘 밤에 네가 교오코를 맡아라. 그럼 난 귀여운 마사코랑…히히 생각만 해도 황홀해지는군.”강쇠는 그러나 대근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일축했다.

“안돼. 나는 기필코 혼탕을 가봐야겠어. 일본 여자들의 신체적 특징을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불가피하다구. 넌 일본 여자들 가운데 호리병 구조가 많다는 소문도 못 들었냐. 자세히 보다 보면 한국 여자랑 어딘가 다른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몰라. 안 그래?”“거참 호리병 구조 너무 좋아하지 마라. 나처럼 감전당하면 시체 처리돼. 그러고 호리병 어쩌고 했다는 산부인과 의사 말야. 그 친구 혹시 산부인과가 아니라 내과 아냐?”“내과라니 얼토당토 않은…무슨 소리야.”“나도 내가 아는 유명한 의사한테 들었어. 거기에 손가락만 넣어봐도 명기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다면, 그거 다 헛소리라고.”이때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교오코가 끼여들었다.“저어기 사부님. 강쇠씨가 찾는 그 혼탕, 어딨는지 제가 알아요.”뜻밖에도 교오코의 입에서 한국말이 술술 나오는 걸 보고 강쇠는 깜짝 놀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대근이 설래설래 고개를 젓는 혼탕을 교오코가 알고 있다니, 귀가 번쩍 띄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강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국말을 모르는 줄 알고 처음 보는 여자 앞에 명기니 호리병이니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으니, 비록 낯 두꺼운 강쇠라 해도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강쇠는 후다닥 대근을 쳐다보며 말했다.“야 이대근. 너 누구 망신시킬 일 있냐. 첨부터 소개할 때 얘길 했어야지. 교오코양이 한국말 잘 한다고.”대근이 카카카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내가 귓속말로 말할 때 눈치챘어야지. 교오코는 교환학생으로 서울에서 삼년간 유학했었다. 그래서 우리 말을 제법 하지. 그런데 참, 교오코. 내가 듣기로 남녀 혼탕은 아주 옛날 얘기고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아는데 아직도 그런 데가 있단 말야?”이에 교오코는 배시시 보조개가 쏙 패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센토(동네 대중목욕탕)나 일반 온천에는 그렇죠.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인의 혼욕 습관이 어디 가겠어요. 게다가 남자든 여자든 우리 일본인은 나체에 대담하죠. 홀딱 벗은 이성의 몸을 봐도 별로 거리낌 없으니까 혼탕에서 함께 목욕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본 한국 여자들은 정 반대더라구요.” 교오코는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겪고 본 일화를 들려주었다.

“서울에서 유학할 때 친하게 지낸 한국 여대생이 둘 있었어요. 귀국 후에 둘이 일본으로 놀러왔죠. 그래서 서울서 진 신세를 갚을겸 여기저기 유명 관광지를 구경시켜주며 즐겁게 보냈죠.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목욕탕에 같이 갔다가 그만 일이 터져버린 거예요.”“일이 터지다니, 그렇담 그 여대생을 혹시 혼탕에?”강쇠가 치솟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급히 물었다.“아뇨. 우리집 근처 목욕탕에 갔었죠.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바보였어요. 한국과 일본의 목욕 문화 차이를 알았어야 했는데. 하여간 탕에 들어가서 목욕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어요. 동네 목욕탕 치고 밝고 깨끗해서 너무 좋다며 깔깔대며 목욕들을 했죠.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훈도시만 걸치고 탕 안으로 쑥 들어오는 거예요. 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근데 두 친구는 남자를 보고 기겁을 하더니 악!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가더라구요. 미처 붙잡을 틈도 없었죠. 수건 한 장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달아나는데, 정작 놀란 사람은 오히려 그 남자였어요. 남자는 목욕탕 주인이었거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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