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낙태죄 입법예고안’ 후폭풍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처벌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낙태를 임신 14주까지 전면, 사유가 있는 경우 24주까지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의 정부 입법예고안에 대해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낙태죄 폐지 찬반 양측과 정치권까지도 비판적 견해를 내놓으면서 개선 요구를 하고 있다.

24주까지도 제한적 허용···범죄 행위 임신 등 사유

지난 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는 개정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입법예고했다.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데 따른 후속 조치 차원에서 마련됐다. 앞서 헌재는 오는 12월31일까지 형법상 낙태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태아 생명권 등과 관련, 사회적 논란이 돼 왔던 내용이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자율적 임신중지, 반대 측에서는 낙태 예방 조치 강화 등을 요구했다.

헌재 판단이 나오면서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거세졌다. 최근 개정 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첨예한 찬반양론 대립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우선 이번 입법예고안에는 임신 14주 이내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정 사유나 별도 상담 등 절차 없이도 본인이 결정하면 가능하다는 방향인 것.

임신 15~24주의 경우에는 사유를 충족하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강간 등 범죄 행위 임신, 건강을 해칠 우려, 혈족 또는 인척간 임신이나 임신 지속에 따른 사회적 곤경 등 사유다.

낙태 시술자를 의사로 한정하고 상담 및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다. 또 자연유산 유도약물을 허용해 시술방법의 선택 방법을 늘렸다. 의사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 진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정부는 입법예고 이후 연내 법 개정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낙태 전면 허용한 셈” vs

“처벌 유지는 기본권 침해”

낙태죄 폐지 찬반 양측 모두 입법예고안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여성계를 중심으로 한 찬성 측에서는 낙태 처벌 조항을 유지하는 개정안이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낙태 허용 요건은 입증 부담을 가중하며, 허용 여부를 구분하는 14주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의료인의 행위 거부 인정은 합법적 낙태에 대한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반대 측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의 개정법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과 같은 셈이라며 강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윤리적 문제, 태아생명권 등을 언급하면서 법 개정 방향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후유증이 오히려 여성 건강권을 해친다는 주장 등이 나오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임신한 여성 시각서 생각해야”

정치권에서도 갑론을박과 함께 비판이 일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3일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를 만나 “낙태죄 폐지를 생각해 볼 수는 있지만 출생률이 저하돼 애들이 감소하는 나라에서 너무...”라며 “헌법재판소 (헌법 불합치) 판결이 있으니까 전향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지난 14일 “낙태의 문제를 저출생 문제와 연계시킨 것이다. 그래서 (사고방식이) 후지다고 하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저출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낙태죄를 유지해야 하고 법적 규제와 처벌도 계속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20~30대 여성들이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라며 당명도 바꾸고 로고도 바꾸고 혁신을 외치지만 낙태죄 이슈를 저출생 문제와 연결시키고, 여성을 출산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전체주의적 사고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배복주 부대표는 지난 12일 이번 정부안에 대해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 과정은 배경이나 맥락은 삭제하고, 처벌조항은 그대로 두고 제한적인 조치를 두는 것뿐”이라며 “처벌요건만 완화하고 현행 모자보건법 14조를 조정해서 형법에 가져다 붙여두기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처벌조항을 삭제한 정의당안 추진 방침을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4일 “임신한 여성의 시각에서 성‧재생산권리 보장, 안전한 의료제도의 보장, 사회정책과 서비스 제공에 기반해 낙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입법조사처는 ‘낙태죄 개정의 쟁점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14주 이내를 온전한 여성의 자율권이 행사되는 시기로 둔다고 해도 그 시기를 어떻게 명확히 판단할 것인지, 허용 요건의 차등을 두는 14주와 24주를 구분하는 질적인 차이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면서 “태아의 독자 생존 시기에 대해서는 22주, 24주, 28주 등 각 의료시스템과 개별 임부와 태아의 건강상태, 물리적, 환경적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정부 입법안의 반론을 제시했다.

이어 “낙태를 형법상 처벌의 영역으로 두기보다 재생산 건강, 의료서비스, 사회보장제도 적용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형법의 낙태죄에 대한 전면적 개정(처벌의 폐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여성계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특정한 사유를 지정하거나 선별하지 않고 임신한 여성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안전에 기반한 여성 본인의 요청이 보장돼야 한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낙태를 위한 시스템 마련 ▲안전하고 신속한 인공임신중절 보장 및 정보제공 ▲피임약 보급 및 인공임신중절 예방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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