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빠진 국민의힘 ‘청년 정치’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2일 SNS에 올린 홍보물의 ‘문구논란’을 일으킨 중앙청년위원회(청년위) 당직자들을 상대로 면직 처분 등 중징계 처리를 결정했다. 이어 중청위의 박결 위원장도 지난 5일 당적을 내려놓고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 청년조직 주도권을 둘러싼 당내 계파갈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독일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내 청년 조직인 ‘영 유니온’을 모델로 추진 중인 청년당의 주도권을 놓고 그동안 국민의힘 내부에서 계파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혁신과 개혁을 명분으로 청년정치를 내세웠지만 주도권 갈등에 묻혀 퇴색되고 있는 모양새다. 일요서울은 국민의힘 청년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추적했다. 

김종인 [뉴시스]
김종인 [뉴시스]

 

-주호영 “실수 젊은이 특권” vs 김종인 “당에 도움 안 돼”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청년위)는 지난달 29일 SNS에 사진과 함께 이름, 소개 문구 등이 담긴 홍보물을 올렸다. 이재빈 전 인재육성본부장은 육군 장병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해 논란이 됐다. 그는 홍보물에 “인생 최대 업적 육군땅개알보병 14개”라고 적었다. 육군에서 보병으로 복무하며 포상휴가를 14차례 따낸 사실을 알린 것이지만 ‘땅개’라는 표현은 특수한 보직 없이 육군 보병으로 복무한 장병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는 은어다. 

김금비 전 청년위 기획국장은 자신의 포스터에 “2년 전부터 곧 경제대공황이 올거라고 믿고 곱버스타다가 한강 갈 뻔함”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곱버스’는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하락분의 2배로 수익을 내는 증시 상품을 가리키는 은어이며, ‘한강에 간다’는 말은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러 간다는 의미로 자살을 가볍게 희화화한 표현으로 정치 홍보물에 쓰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주성은 전 청년위 대변인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자유보수정신의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적어 정교분리 논란을 일으켰다. 논란이 확산되자 국민의힘 비대위는 지난 2일 온라인 방식으로 제8차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이 전 본부장과 김 전 기획국장등 청년위 부위원장 2인에 대해 각각 면직처분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사안으로 문제가 된 주 청년위 전 대변인 내정자에 대해선 내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지난 4일 청년위는 반발하며 SNS에 동일한 형식의 카드 뉴스로 청년위를 소개하는 글을 다시 올렸다. 

국민의힘 청년위는 이날 “남겨진 청년위 지도부를 소개합니다”라며 7장의 카드뉴스를 게재했다. 먼저 검은색 바탕에 국화 그림을 넣은 부고(訃告)를 떠올리게 하는 카드엔 “국민의힘 청년위는 상설위원회 규정 10절에 따라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당내 유일한 청년조직이었다”며 “이 시대의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곳, 또한 청년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든지 달려가 목소리를 높이려고 했다”고 글을 올렸다. ‘면직’과 ‘내정취소’ 도장이 찍혀 있는 카드뉴스도 같이 게시돼 있다. 청년위가 징계를 내린 당지도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박결 [뉴시스]
박결 [뉴시스]

 

‘홍보물 논란’ 속 박결 국민의힘 청년위원장 ‘정계 은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청년위 소속 위원들이 면직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지난 4일 SNS를 통해 “실수는 젊은이의 특권”이라며 옹호했다. 그리고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젊은이는 (실수해도) 열두 번 된다는 말이 있다. 실수가 없다면 발전도 없다”며 “그것을 훈련된 정치인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군땅개 알보병’을 남들이 말하면 비하가 되지만 거길 거친 사람이 ‘내가 고생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걸 비하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하겠나”라고 반박했다. 이어 “본인들도 많이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국민 전체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결 중앙청년위원회(청년위) 위원장도 같은 날 SNS에 “저희 당 지지자 및 국민 여러분께 다소 거부감을 줬다는 부분에서 청년위 위원장으로서 사과를 드리고 싶다. 다만 해당 내용이 이 정도로 확대해석돼 저희 청년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지탄을 받아야 할 사아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청년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 정치적 신념은 어떠한 외압에 의해 묵살돼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이며 청년들의 자산이다. 표현방식이 다소 정제되지 못했다고 해서 마치 청년들이 중범죄를 저지른 범법자와 같은 비난과 조롱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며 “당 비대위는 당 청년위원에 대한 처벌과 징계 권한이 있는 것과 동시에 당 청년위원들을 보호할 의무도 있다고 생각된다. 청년당원들에 대한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은 심각하게 유감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내용 자체가 오히려 청년위에 있는 사람들이 진취적이지 못한 것이었다”며 “옛날 사고에 사로잡힌 것은 당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편 박 위원장은 같은 날 자진사퇴 의사를 밝히며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늦게나마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구에게도 피해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오늘부로 모든 직책과 당적을 내려놓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다른 길을 걸어가겠다”며 “모든 것을 뒤로하고 모든 정치적 활동을 그만두려 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의 징계에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자신 역시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청년위 홍보물 문구가 논란이 될 순 있지만 징계의 수위나 박 위원장의 사퇴까지 이어진 것은 당내 계파갈등 가운데 나온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재섭 [뉴시스]
김재섭 [뉴시스]

 

“계파갈등 악의적 왜곡” vs “청년 내세운 계파갈등”

국민의힘 안팎에선 비대위에서 중앙청년위원회(청년위) 징계를 주도한 인물이 김재섭 비대위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청년당을 주도하고 있는 김재섭 비대위원이 청년위와 갈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섭 비대위원은 지난 15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청년위와 청년당의 갈등 배후에 계파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청년 간의 갈등도 악의적인 왜곡 주장이다”라며 “미래통합당에 입당해 정치를 시작한 저를 바른미래당의 청년정치학교에 몇 번 다녀왔다고 해서 프레임을 씌워 분류하는 것은 오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박결 위원장과 청년위가 청년당을 주도하는 것으로 합의해 당에도 보고가 이루어졌다”며 “박 위원장과는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애환이 있는 관계이며 갈등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익명을 요청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난 15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청년을 내세운 계파 간 주도권 쟁탈전이다”라며 “바미당계와 기존 통합당계의 갈등이며 두 세력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편에 선 청년들을 내세워 당의 핵심 조직을 장악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을 겨냥해 청년조직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어 청년을 내세운 계파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지난 13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혁신과 개혁을 위해 내세운 ‘청년 정치’가 계파정치로 퇴색되지 않기 위해선 청년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치인들을 청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김 위원장의 균형과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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