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인다’ ‘나가라’…가족 학대 노인은 어디로 가야할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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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한국 사회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4.9%로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다. 앞으로 5년 뒤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노인 관련 인권 문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노인 학대’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노인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5년 사이 약 2.7배가 늘었다. 노인 학대가 발생하는 장소는 전체의 89%를 차지하는 ‘가정’이다. 노인들은 가정에서 ‘비공식 돌봄자’인 가족·친족(배우자,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녀 등)에 의해 돌봄을 제공 받지만 전체 학대행위자의 74.2%가 이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친족에 의한 ‘정서적 학대’ 피해 많아

[정서적 학대] 
#사례1. 피해 노인에게 지속적으로 욕설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피해 노인의 말을 무시한다.
#사례2. 피해 노인에게 아파트 명의를 변경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인다’ ‘나가라’ 등의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다. 

[신체적 학대]
#사례1. 피해 노인을 밀어 넘어뜨린 후 폭행하고 식탁을 엎는 등의 난폭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사례2. 매일 음주를 함으로써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음주 뒤 항상 피해 노인을 폭행한다. 

65세부터 100세 이상 피해 노인의 학대 유형을 살펴보면 ▲정서적 학대 42.1% ▲신체적 학대 38.1% ▲방임 9% ▲경제적 학대 5.2% ▲성적 학대 2.6% ▲유기 0.5%를 차지한다. 가족 및 친족 중 학대 행위자를 보면 ▲아들 42% ▲배우자 40.8% ▲딸 10.2% 순으로 나타났다. 

가정 내에서 노인에게 가해지는 학대는 정서적·신체적 피해가 압도적이다. 특히 가장 높은 비율인 정서적 학대는 피해자나 학대 행위자가 피해 행위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정서적 학대는 언어나 비언어적인 부분이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피해 노인이 수치심을 느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고, 구분도 애매해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고건 서울북부노인보호전문기관 팀장은 “노인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고 배제시키고 식사를 따로 챙기는 사소한 문제들도 정서적 학대”라며 “노인 스스로가 학대를 당하는지 모르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고, 경제적 학대가 가해지기 전에도 좋은 말이 오가진 않게 된다. 모든 학대에는 정서적인 학대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말했다. 

한정란 한서대 보건상담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가족이 가하는 폭력에 관대한 문화를 갖고 있어서 학대인지 아닌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한다”며 “가족이 함께 사는데 외출 시 노인을 두고 가거나 노인의 말을 무시하는 것도 학대인데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인보호전문기관’ 현장조사부터 사후관리까지 진행

노인 학대 피해 신고접수가 주로 이뤄지는 곳은 경찰서다. 가정 내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나 주변 이웃이 경찰에 먼저 신고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파악한 후 피해자가 65세 이상이면 여성청소년과 노인학대전담팀으로 사건이 인계되고, 이후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 넘어간다. 경찰 이외에도 노인보호기관과 병원, 동 주민센터, 요양보호사 등을 통해 많은 피해 사례가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 접수되고 있다. 

노인복지법 제39조의 5에 의해 만들어진 ‘노인보호전문기관’은 학대 피해 노인을 전문적으로 보호·관리하는 곳으로 전국 35개가 설치돼 있다. 기관은 신고접수를 받으면 몇 차례의 현장조사 진행 후에 사례 판정을 하고 상담 및 사후관리에 들어간다. 

기관은 학대 피해자에게 쉼터를 제공하거나 전화와 방문을 통해 상담·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일부 피해 노인은 ‘내가 왜 쉼터로 가야 하냐’며 현장조사 담당자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고건 팀장은 “가정 폭력 피해자가 65세가 지나면 노인학대로 구분되는데, 가정 폭력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경우가 많아 피해 노인들은 견뎌 온 시간을 억울해 한다”고 말했다. 

학대 행위자에 대해선 알코올, 정신질환 등 치료가 필요한 경우로 판단되면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치료를 권유하고 학대 행위자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시켜 주는 역할 등을 한다. 권금주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쉽지는 않지만 병원, 상담기관 등 협력기관을 통해 학대 행위자의 태도 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며 “치료를 받는 경우 비용 등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 다양한 기관들과 연결돼 꾸준한 관리 차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부양 떠넘기는 사회적 분위기부터 달라져야

전문가들은 가족이나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공식 돌봄 제공자가 되는 상황 가운데, 노인 부양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백승민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박사는 “가족 내 노인학대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돌봄이 다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 아래 발생해 문제 해결을 위한 개입·처벌이 모두 어렵다”며 “학대 행위자와 피해자 모두 사회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금주 교수도 “가정 내 학대는 사생활 영역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며 “부양 관련해서 가족에게 전적인 책임을 지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옳지 않다. 가족 내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악순환을 거치면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결국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단기적으로는 해결하더라도 결국 ‘재학대’로 피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인 스스로 인권 감수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의 복지 서비스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정란 교수는 “최근 코로나 현상 때문에 안전장치 없이 평소 관계가 좋지 않던 가족들과 피해 노인이 같은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부딪치는 건 굉장히 안 좋은 환경이다”며 “노인 인권 교육을 통해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인권 감수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노인이 외부활동을 통해 복지 서비스에 자주 노출돼야 스스로 힘을 가질 수 있다”며 “학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적극적으로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는 행동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 활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제도적인 노력도 필요한데, 예를 들면 ‘찾아가는 정보화교육’처럼 맞춤 돌봄 서비스 지원 등이 이뤄진다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인학대 신고는 노인보호전문기관 1577-1389(국번없이)나 경찰서(112), 정부민원안내 콜센터(110), 관할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 방문 신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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