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인권 개선 핵심은 혐오 단어 순화와 사용 자제”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탑골공원 옆 노인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 [뉴시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탑골공원 옆 노인무료급식소를 찾은 노인들 [뉴시스]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온라인상에서 노인들을 향한 ▲틀딱(틀니 소리를 빗댄 표현) ▲연금충(연금을 축낸다는 의미) ▲할매미(시끄럽게 말한다는 의미) ▲노슬아치(노인을 벼슬로 안다는 의미) 같은 ‘노인 혐오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같이 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널리 쓰이면서 ‘혐로(嫌老)·노인 혐오’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노인에게 공포를 느끼고 기피하는 ‘노인 포비아’ 현상으로까지 번졌으며, 각종 노인 혐오 표현들은 나날이 증식하며 몸집을 키워가는 실정이다. 사회적 약자로 지목되는 노인들을 향한 가혹한 사회의 시선. 일요서울은 코로나19 시대의 노인 혐오와 노인 포비아 현상을 짚어본다. 

한국은 ‘노인공경’이라는 단어보다 ‘노인 혐오’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다가오는 사회가 됐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지하철과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사례와 길을 지나갈 때 손이나 어깨로 밀어내며 통로를 확보하는 사례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 일화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후 박근혜 前 대통령의 탄핵 철회를 요구하는 태극기부대의 집회로 정치 관련 이슈에도 노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문 정부에 반기를 든 노년층이 광화문에 집결하면서 일시적으로 코로나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가 급증했다. 

시민들은 일상에서 대면하는 노인들에게 “광화문 집회 갔다 왔으면 어떡해요”라며 ‘노인 포비아’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또한 베이비붐세대가 노년층에 진입하면서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고령 인구 급증이 예상됨에 따라 노인 부양 부담도 커졌다. 여러 사회문제가 얽히면서 세대 갈등도 심화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청·중년층 사이에서의 ‘노인 혐오’ 현상이 최정점을 찍은 실정이다.

노인 혐오 먹고 자라나는
‘노인 포비아’

올해 코로나19의 팬데믹(전세계 대유행)으로 한국도 영향을 받는 가운데, 보수 성향이 다수를 차지하는 노년층의 대규모 집회가 코로나 확산 급증으로 이어지자 ‘노인 포비아’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 이후로 노인 포비아 현상이 극명해졌다. 

일요서울이 지난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서울시 종로구 일대 청년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년 10명 모두가 ‘자신이 노인을 기피하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도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해서 거부감이 든다”, “교회를 다니거나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다수 노년층이기 때문에 일단 피한다”라며 노인 기피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노인 포비아 이전에 노인을 혐오해 왔을까. 답변에 응한 청년 10명 중 3명은 노인을 혐오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머지 7명도 직접적인 노인 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뿐,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기존에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노인 혐오 행태가 코로나19 시국에 접어들면서 노인 포비아 현상으로 변형된 양상이다.

최근 10여 년간 온라인상에서 꾸준했던 노인 혐오. 노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일요서울은 지난 13일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일대에서 60세 이상 노인 20명에게 혐오표현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취재했다. 

답변한 노인들은 대다수 자리 양보 강요 등 청년층들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온라인상에서 익히 사용되는 틀딱, 연금충 등의 단어들을 아는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면전에선 경로효친
온라인에선 혐오 남발

노인 혐오 표현의 의미를 알고 있던 노인 중 한 사람은 “일부 노인들이 무례한 행동을 일삼아 왔던 것은 사실이다. 맹목적인 혐오가 아닌 이유 있는 혐오라면 노인들이 수용 가능한 부분은 수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인은 “우리 세대는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아서 에티켓에 대한 개념도 적은 사람들이 대다수다. 가까운 할머니·할아버지한테 공공장소 에티켓이나 디지털 기기 사용 방법 같은 걸 상냥하게 알려준 적이나 있냐”고 되물었다. 

반면, 노인 혐오 표현의 의미를 모르던 노인들은 대다수 크게 분노하거나 놀란 반응을 보였다. 단어의 뜻을 알게 된 한 노인은 “무서운 세상이다. 자녀들, 손자·손녀들이 쓸 수도 있다 생각하니 배신감도 든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지 않은 노년층에게 휴대전화는 전화·문자 용도가 크다. 사회 이슈를 확인할 때는 인터넷 기사보다 뉴스 영상으로 접하는 세대다. 온라인 노출이 적은 환경도 노인 혐오 표현을 접하지 못했던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노인 혐오 표현은 실제로 사용되는 언어표현이 아닌 온라인상에서만 쓰이는 혐오 단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인 면전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대중교통 이용 시 마주치는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옮기기 힘든 짐을 들어 다 주기도 하는 등 한국사회의 경로효친을 기반으로 선행을 베푸는 이들도 있어 ‘노인 혐오’를 직접 경험하는 노인은 극히 소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018년 “우리 사회의 저출산, 청장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 세대 간 소통 부재가 맞물려 노인 세대가 미래 세대의 부담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노인혐오’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났다”며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혐오 개선방안 중 하나로 온라인상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혐오 표현의 순화’를 지목했다. 차별·혐오 단어는 대립과 갈등에서 시작됐지만, 단어 자체로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의 순화로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차별·혐오 표현은 다양한 영역에서 편 가르기를 위해 쓰이는 말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혐오 표현에 노출돼 왔고 이제는 혐오 대상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든 사회적 지위에 혐오 표현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는 혐오 표현에 무뎌진 사람들을 탄생시켰고, 더 자극적인 혐오 표현의 생산 단계로 이끌어 왔다.

이정복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모두가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에서 부정적 기능을 하는 것이 차별적 언어”라며 “언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 결과로 인한 문제점을 이해하면서 혐오 표현 사용을 자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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