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차부와 색정부인

조선후기 전국적인 규모로 유통경제가 발달하고 상업 활동이 번창해짐에 따라 서울, 평양, 대구와 같은 도시들은 행정 도시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상업도시로서의 면모와 기능이 강하게 부각되어 갔다.

특히 서울은 최대의 소비도시로서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집하되고 거래되는 곳으로, 시전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종루(鐘樓:지금의 종각) 이외에 이현(梨峴; 배오개라고도 하며 흥인지문시장), 칠패(七牌:숭례문시장), 마포, 용산 등지에 새로운 상품교역처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곳들을 연결하며 소달구지를 끌고 짐을 운송하던 젊고 힘 좋은 차부들 또한 많았다고 한다.

어느 날, 용산의 한 차부가 교역처에 짐을 실어다 풀어놓고 주인에게 소달구지를 반납하러가는 길에 소피가 마려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는 서산으로 수줍게 넘어갔고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은 끊겨 아무런 부담 없이 한집의 담벼락에 서서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는데, 위에서 여인네의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났다.

급하게 줄기를 끊고 쳐다보니 한 예쁜 부인이 다락방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송구합니다, 계신 줄도 모르고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차부가 말했다.

“호호호 차부께서 다급하게 멈추신 것 같으니, 나 있다 생각마시고 마저 보심이 좋을 것 같소.” 부인이 차부의 아랫도리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아닙니다, 시원하게 보았으니 제갈 길을 가겠습니다.”

“그 무슨 막말이시오, 남의 집 담에 소변을 보는 것은 집주인 다리에 소변을 보는 것과 같은 것, 차부께선 응분의 대가는 지불하셔야 인지상정이지요.”

“음… 그럼 제가 어찌 해야 옳은지요?”라고 차부가 묻자 부인이 안으로 빨리 들어오라 했다.

부인의 지시에 따라 소달구지의 소고삐를 뒷문 옆 버드나무에 매어놓고 안으로 들어가니, 부인은 저녁을 대접하고 술상까지 내어주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하인을 시켜 벌을 내릴 것 같았던 부인이 이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것은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여기며 차부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인은 차부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는지 별감(別監)인 남편의 얘기를 꺼내며 차부를 안심시켰다.

“남편이 숙직이라 궁중에 들어가 없고, 아랫것들도 처소로 돌아가 내 부르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터이니, 차부는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시오.”

“그렇게 말씀하셔도… 행여나…”

“아니, 내 분명 걱정하지 말라 그러지 않소”라고 말하며 눈을 흘기는 부인의 자색이 어찌나 요염하던지 차부는 끓어오르는 음심이 일어났다.

그 순간 부인이 차부에게 달려들며 차부의 사타구니 사이 부풀어 오른 늠름한 그것을 움켜잡으며 환애할 것을 요구했다.

차부는 부인의 고운 손을 그것에서 떼어놓고 소달구지를 주인에게 맡기고 오겠다며 조용히 말하니, 부인은 빨리 맡기고 꼭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차부는 소달구지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부인의 곱디고운 자색과 요염한 자태가 자꾸만 떠올라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부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상념에 잠겨 걷던 차부는 뒷문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을 본 순간에야, 누구에게 홀린 듯 자신의 집이 아닌 부인의 집으로 왔다는 사실
을 알았다.

함께 방으로 들어가 끌어안으니 부인은 차부의 손을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로 이끌었다.

차부는 부인의 그곳에서 넘쳐흐르는 애액(愛液)에 손을 흠뻑 적시었고, 치마저고리 외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부인의 음탕함에 다시 한 번 놀라며 환애하니, 부인의 음희(淫戱)행위가 이루 말 할 수 없이 거칠고 강렬했다.

한바탕의 음희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끝이 났고, 나란히 누워 서로를 애무하며 후희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대문을 두드리며 부인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인은 급히 차부를 다락에 숨기고 잠근 다음, 나가 대문을 열고 남편과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남편은 숙직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집에 불이 난 꿈을 꾸곤 이상타 여겨 궁중 담을 넘어 나왔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부인은 사사로운 것에 마음을 쓴다며 꾸짖으며 빨리 돌아가라고 말했다.

남편이 기왕 나온 김에 한번 환애하고 돌아가겠다 말하니, 부인은 한사코 마다하며 들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몇 번을 실랑이질하다 남편은 돌아갈 시간이 촉박하여 아쉬워하며 돌아갔다.

부인은 대문을 단단히 잠그고 방으로와 차부를 다락에서 불러내려 한 번 더 환애할 것을 요구했다.

두세 번 거절하다 부인의 교태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환애하니, 부인의 음희 행동이 앞서보다 더욱더 요란했다.

길고 긴 음희가 끝나고 부인은 지쳐 잠이 들었고 차부는 부인 곁에 앉아 깊이 생각하니, 남편의 애절한 구애를 거절하고 외간남자인 자신과 음희를 질퍽하게 벌이는 이 부인의 음탕함에 통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차부는 일어나 벽에 걸려있던 칼을 뽑아 부인을 찔러죽이고 달아났다.

이튿날 아침 시종에 의해 발견된 부인의 주검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의금부의 사령들이 검안을 위해 나와 시종에게 물으니 어젯밤 남편이 궁중에서 나왔다가 언제 돌아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곧 남편은 부인을 죽인 살인범이 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고 사건 심리(審理)동안 어떠한 증거도 댈 수 없었던 남편은 꼼짝없이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형장으로 나가기 위해 소달구지를 타게 되었는데, 그 차부가 다름 아닌 부인을 죽인 용산 차부였다.

의협심이 강했던 차부는 그 음탕한 부인의 남편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할 수 없어, 의금부에 자신이 그 부인을 죽인 진범이라고 자백했다.

다시 시작된 심리를 맡은 판관은 그간의 일을 임금에게 상신하니, 임금께선 “한 음부를 죽이고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은 의롭고 대단한 행동이기에 차부를 용서하고 면천(免賤)시키고 상을 내리라” 하였다.

목숨을 구한 남편은 차부를 은인이라 말하고 자기재산의 반을 차부에게 나눠주었다.

이렇게 해서 차부는 의협심 강한 사람이라며 사람들에게 칭송받았고 그 음탕한 부인의 남편에게 받은 재산으로 넉넉하게 살았으며 자손도 번성했다.

이 설화는 패림(稗林:편자와 편찬 연대 미상의 266권 10책으로 이뤄진 야사총서)의 이순록(二旬錄) 하권에 기록된 얘기로 사대부 부인네들의 강한 음심을 비꼬며, 면천을 원하던 당시 민초들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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