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8·15 드라이브’ 노림수

건국 60주년 및 8.15 광복절 기념식서 한복차림으로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쇠고기 정국에 따른 연이은 촛불시위, 정연주 KBS사장 해임, MBC PD 수첩 수사 등으로 현 정부의 지지율이 다소 변화를 보이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MB)이 8·15 강공 드라이브로 승부를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전 정권이 남긴 좌파 흔적을 없애고, 보수세력의 결집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강하게 펼쳐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건국절 논란 속에서도 ‘건국 60주년’을 강조하며 광복절 행사를 치러낸 것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또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는 듯하다. 야권이 불참한 반쪽짜리 광복절 행사를 치르면서까지 이 대통령이 추진한 8·15 강공 드라이브의 노림수를 짚어봤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건국절 논란은 일부 보수시민단체 등에 의해 처음 공론화됐다.

이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건국절 입법안 제출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불씨가 커졌고, 정부가 8·15 경축 행사를 건국 60주년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건국절은 친일 합리화(?)

이에 따라 자유선진당을 제외한 야3당 대표들은 정부의 공식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고, 소속 의원들과 함께 서울 효창공원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건국절 논란의 불씨는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다. 법안이 제출된 이상 국회 논의 및 입법화 여지도 남겨 있다.

건국절 추진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요인은 뭘까.

정부 수립 원년을 1948년 8월 15일로 보고 있다는 데 문제의 단초가 있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럴 경우 우리나라는 역사가 60년 밖에 안되는 신생국가가 되고 헌법정신이 부정되며 남한만의 대한민국 분단체제가 영속화된다.

특히 일제시기에 악랄한 친일 행위를 했다 해도 해방 이후에 반공투쟁만하면 애국자로 둔갑해 건국공로자가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백범 김구 같은 항일운동가나 민족지도자는 분단정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건국 공로자가 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 친일하다 친미로 갈아탄 매국노들이 건국 주역이 되며, 독도가 자기영토로 편입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이 합리화될 수밖에 없다.

박한용 민족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은 “1948년을 강조할 경우 1945년 8월 15일부터 3년 동안 좌익과의 반공투쟁에서 만들어진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이 경우 역사성이 임시정부와 연결되지 않으며, 항일운동의 의미도 사라져 버린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1948년을 건국절의 기점으로 하면 1905년 독도가 자기영토로 편입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은 당연히 합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법치 강조, 공세적 국정운영

이 같은 반발에 대해 건국절 입법안을 대표 발의한 정갑윤 의원 측은 “광복 뿐 아니라 건국도 기념해야 한다는 내용을 국회에서 논의하고 싶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청와대와의 연계 의혹도 “야권에서 청와대와 연관시키며 의혹을 제기하는데, 전혀 무관하다”며 부인했다.

야권 관계자는 “건국절 논란이 예상되는데도 여권이 경축행사를 강행한 이유는 보수세력 결집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며, 야권이 김구 선생을 찾아간 것 역시 자기 색깔을 찾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경축행사를 통해 이 같은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이 대통령은 경축 기념사를 통해 ▲안전·신뢰·법치 회복 ▲저탄소 녹색 성장 ▲삶의 질 선진화 ▲국가브랜드 가치 향상 ▲유라시아-태평양 시대 등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특히 법치를 강조한 부분은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향후 국정 운영의 축을 법과 원칙에 두고,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깃들여있기 때문이다 .

이 대통령이 공세적 국정운영을 밝힌 데는 쇠고기 파동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자신감과 국정지지도가 회복세에 있다는 확신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강경책을 택한 이유는 ‘쇠고기 정국’의 파문을 겪으면서 강경책이 정국 주도권 회복에 가장 유효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현 정부는 쇠고기 정국에서 핵심 지지층이 빠져나가자 당황했으며, 최근 지지율 회복은 강경책 덕분으로 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지율 상승 반전 기회

청와대 관계자는 “경축사 키워드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 필요한 요소라는 점과 8·15 이후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중요 소재”라고 설명했다. 8·15를 기점으로 각종 개혁과제를 힘 있게 추진하며,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15 강경 드라이브에 이어 추석을 쇠고기 정국의 확실한 반전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여권은 추석을 염두에 둔 정책 발표를 줄줄이 예정해 놨다.

여권에 따르면 21일 부동산활성화대책 발표를 시작으로 22일 추석 민생대책, 25일 2차 공기업선진화 방안, 27일 국가에너지기본계획, 28일 중소기업지원제도 개편 등의 발표가 예정돼 있다.

또 기후변화종합대책과 3차 공기업선진화 방안, 취임 200일 즈음의 국민과의 대화, 신성장 동력에 대한 국민보고대회 등은 9월 중에 진행될 정책 사안들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한나라당 당직자들과의 오찬 및 만찬에서 “이제 많은 것을 결심하고 행동할 준비가 됐다”면서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법과 질서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겠다. 예외가 없다”고 ‘법치’를 재차 강조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수차례 법치를 강조하는 것은 향후 여론이나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국정 개혁과제를 추진하고 속도를 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8.15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친이계 당 관계자는 “이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경제를 성장시키라는 의미인데, 세계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경제회복의 돌파구를 찾기가 쉽겠느냐”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친이계인 권택기 의원 측은 “8.15 강경 드라이브는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지만, 지금은 평가보다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완할 시기”라며 “지금은 당이 적극적으로 청와대를 지원하고 후에 견제 등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정책 추진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공격적 국정운영이 반발을 초래하면서 또 다른 국정 난맥상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국절 논란으로 야권이 광복절 경축행사에 불참한 것을 두고, 8.15 드라이브 정책추진이 이미 반쪽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KBS 사장 임명과정에서 제2낙하산 논란이 발생할 경우, 여야 간 대치가 심화되고 그 과정에서 국정지지도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방송관계법 처리에 따른 KBS국영화, KBS2채널 및 MBC 민영화 논란이 촉발되고 길어질 경우 정권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도 나오고 있다.

남북관계나 대일관계 등도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남북 경색 기간이 길어지거나 독도문제로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국정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도에 따른 당내 주도권 판도변화도 관심이다.

최근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바닥을 길 때, 정치권에서는 친이계 의원들의 세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돌았다.

구심점을 잃은 세력들이 세분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이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됐다.


8·15 드라이브, 약될까 독될까

다른 말로 풀어보면, 친이계 의원들이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박세력으로 이동해 박 전 대표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힘이 저절로 강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청와대가 당을 주도하는 상황이 오히려 역전되고, 정책 추진도 당에 끌려가는 지지부진한 형국으로 변모될 수 있다.

8.15 강공 드라이브가 역효과의 부메랑으로 현 정부를 치게 된다는 의미다.

친이계 성향의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면, 친이성향 의원들이 박 전 대표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결과론적 측면에서 밀어붙이기식 모습을 보이는 청와대의 움직임이 한편으론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8.15 강공 드라이브로 승부를 걸었다. 성공과 실패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 강경책이 궁극적으로 여권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건국절 입법안 왜 추진됐나?

때 아닌 건국절 논란으로 인해 건국절 입법안을 냈던 의원들이 당혹스런 표정을 보이고 있다. 국회 논의의 장을 통해 광복절에 건국의 의미를 담아보자던 애초 취지가 정치적 의미로 변질됐고,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은 인터뷰 등 외부와의 접촉을 당분간 끊은 상태다. 괜히 말 꺼냈다가 오히려 분쟁에 더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 측은 “이 법안은 16, 17대 때 발의됐던 법이고, 정치일정상 논의 없이 폐기됐다”면서 “새 회기에 들어서면, 폐기된 법안 중 논의 안 된 것을 재발의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런 법안 중 하나였다”고 해명했다.

정 의원 측은 “광복 뿐 아니라 건국도 기념할 필요가 있고, 국회라는 장에서 한번 논의해 보고자 발의했던 것”이라며 “보훈 단체 등 광복절과 관련 있는 여러 분들에게 오해를 주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 법안과 관련해 야권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연계된 것이 절대로 아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을 공동발의한 현경병 의원 측도 “야권에서 광복절에 의미를 두고, 좋지 않은 생각으로 꿰맞추기를 하고 있지만, 건국절 법안 제출은 MB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청와대와 사전 협의 등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정갑윤 의원이 대표 발의했고, 권경석, 김정권, 김학송, 김효재, 송훈석, 이화수, 정갑윤, 정두언, 정해걸, 조전혁, 허범도, 현경병, 홍장표 의원 등이 공동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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