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들어!”
강 형사가 문을 발로 차며 뛰어들어갔다. 권총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지만 이미 방 안은 텅 비어 있다. “저기!”

따라 들어오던 마약반의 김 형사가 창을 가리켰다. 강 형사도 얼른 뛰어갔다. 창틀에는 시트를 꼬아 만든 밧줄이 걸려 있었다. 여기는 3층. 이미 용의자는 달아나 버린 것이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확실한 정보라고 했잖아.” 김 형사가 투덜댔다. “정보야 확실했지.” 강 형사가 담배를 한 대 김 형사에게 권했다. 연말연시 범죄 소탕 작전에서 걸린 한 피라미가 거대한 마약 루트를 알고 있다고 해서 이번 A호텔 기습 작전이 계획되었다.

사실은 무조건 마약 전담반에 넘겨야 할 사항의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주목을 쉽게 받는 일이라서 상부에서는 강력계와 합동작전을 펴라는 지시가 있었다. 추 경감은 이번 작전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강 형사는 달랐다. <국내 최대 마약 조직 검거, 수훈감은 시경 강력계의 강 형사> 이런 신문 제목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물을 들춰 보니 피라미 하나 없이 구멍만 뻥 뚫린 꼴이 아닌가.

“이건 말도 안 돼. 도저히 빠져나갈 시간이 없었어. 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면 말이야.”
강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정보야 누설되지 않았지. 그건 확실해.” 김 형사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강 형사는 불현듯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제기랄! 김 형사, 여기 지키고 있어.”

강 형사는 부리나케 라운지로 내려갔다. 수사 협조를 요청할 때 정보가 샌 것이다. 호텔 매니저가 한 패거리임이 분명했다. 강 형사는 계단으로 성큼성큼 뛰었다. 라운지에 내려섰는데 매니저는 보이지 않았다. 입안이 바짝 말라 들어왔다. 두리번거리는데 화장실에서 나오는 매니저와 눈이 마주쳤다.
“거기서!”

강 형사는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고는 그쪽으로 뛰어갔다. 매니저는 깜짝 놀라는 듯싶더니만 화닥닥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따라 일본에서 들어온 관광객들이 많아서 매니저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강 형사에게 옆구리를 세게 한 방 맞고는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왜, 왜 이러십니까?”

매니저가 영문을 모르겠다고 발뺌을 한번 해보았지만 이미 통할 단계가 아니었다. 강 형사는 뒤따라 내려온 부하들에게 매니저를 시경으로 송치하라고 말해 놓고 다시 3층으로 올라갔다.
“그 자식이 빠져나간 것은 간발의 차이였다고. 분명 뭔가 흘린 것이 있을 거야.”

김 형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둘은 방 안을 이 잡듯이 뒤져 나갔다.
“내 쪽은 별것 없는데? 자넨 어때?”
강 형사가 김 형사에게 말을 건넸다. 김 형사는 침대 밑에서 종이 몇 장을 주워 올리고 있었다. “그건 뭐야?” “암호문 같은데….”

김 형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종이에는 빽빽하게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암호 같지는 않은데. 암호가 이렇게 한 숫자만 죽 나열하는 게 어딨어?”
강 형사가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정말 그 종이에는 1자가 3줄, 2자가 3줄, 3자가 3줄 식으로 같은 숫자가 죽 늘어져 있기만 했다.

“그거야 우리 영역이 아니지. 암호 반에 갖다 줘서 알아보라고 하지.”
김 형사는 종이들을 소중하게 봉투에 챙겨 넣었다.
“그래, 그러면 그 암호는 마약반에서 담당하라고. 매니저는 강력계에서 다룰 테니까.”

강 형사의 말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암호는 암호 반에서 해독 불능이라는 통지를 가져와 실마리가 끊겼고 매니저 역시 완강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연행 24시간 만에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종이가 해결의 열쇠는 열쇤데….” 김 형사가 답답해하며 강력계에 들어와 종이를 강 형사의 책상에 던졌다.

“어, 왜 이래? 조심하라고.” 강 형사는 책상에 앉아 바늘에 실을 꿰느라 온 신경을 바늘귀에 집중하고 있었다.
“무슨 궁상이야?” “한 놈 잡다가 와이셔츠 단추가 떨어졌어. 총각이 별수 있나? 자기가 꿰매야지.”

강 형사는 실을 꿰면서 밑으로 보이는 숫자를 얼핏 보았다. “암호반에서는 영 모르겠대?”
“암호반 이야기는 이건 절대로 암호가 아니래. 1자가 37번, 2자가 33번, 3자 이하는 모두 똑같은 횟수가 반복되었는데 여기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야. 이봐 강 형사, 왜 그래?”

말을 하던 김 형사는 강 형사를 보고 놀라서 말했다. 강 형사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는 사팔뜨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흔들지 마!”
강 형사는 김 형사를 밀어내며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나가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이 1월 10일이지? 오늘 두 시에 G 호텔에서 거래가 있어! 가자고!” 김 형사는 멍청하니 강 형사를 바라보았다.

 

퀴즈. 강 형사는 어떻게 암호를 풀어낸 것일까요?

 

[답변 - 5단] 범인들이 이용한 암호통신은 매직아이. 바늘에 실을 꿰기 위해 바늘에 시선을 집중하던 강 형사는 얼핏 종이 위에 떠오른 입체영상을 보게 되어 암호를 모두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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