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어느 한 기자는 '가장 이기적이고 비겁한 갑질'은 희망고문이라고 했다. 희망고문은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안될 것 같으면 안 된다고 분명히 해야 하는데,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는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노력해보자' '알아 보자'고 다독거리는 것이다. 매정하게 자를 수 없어 위로의 뜻으로 한 말도 절박한 처지에서는 그 한마디가 새로운 '희망'이 되어 기대하고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

그 안타까운, 속이 타고 애간장이 녹는 마음이 희망고문이다.  희망고문이 길고 강할수록 실패로 끝났을 때 그 부작용은 더 크고 충격적이다. 사업이나 사랑 실패,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이들의 심정 그 한 자락에는 희망고문의 흔적이 있다. 타인들은 '그 정도 일로 자살까지…….'라며 약한 심성을 탓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 희망, 버팀목이 무너질 때(그렇게 생각될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만약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면 그는  '가장 이기적이고 비겁한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과 우파 진영, 즉 반문재인 측이 앓고 있는 증상이 희망고문 피해자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세력의 파렴치한 행각에 실망과 분노를 넘어 절망에 고통당하면서도 분명 다음 선거에서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여권의 연이은 실책과 내로남불, 몰염치, 반민주 행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권교체의 희망은 더 커진다. 갖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한 대통령의 40%대 국정지지도를 보면 절망하고 낙담하지만 간혹 반문진영의 지지율이 일시적 반등 조짐만 보여도 흥분하고 희망을 불태운다. 

 그러나 정말 지독한 반문진영의 희망고문 가해자는 내부에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이고 비겁한 갑질' 가해자다. 그는 당의 혁신을 통해 2022년 수권 가능한 정당으로, 당 소속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희망을 제시한다. 당명을 바꾸고 색깔을 바꾸고 당사를 옮겼다. 좌클릭을 통해 중도. 서민층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불명확한 정책들을 제시하며 선점했다고 자평한다. 광주 5.18 민주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서울시장 당선 조건으로 '호남 지지'를 거론하고 비례대표 25% 배정 당규화를 추진한다.

 김종인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당의 재활과 혁신을 통해 정권교체를 꿈꾸었던 인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정청래(민주당) 의원의 지적대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도 박힌 돌들은 조용히 침묵 중'이다. 정권교체만 된다면 더한 굴욕이라고 참을 수 있다는 간절함이다. 참으로 가혹한 희망고문이다.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반문 진영의 안타까움을 비웃듯이 당내 잠재적 대권후보, 아니 향후 반문 정치세력의 리더그룹으로 꼽히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모욕적 비하를 서슴지 않는다.

 최근에는 부산시장선거와 관련, "지금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내가 생각하는 후보는 안 보인다"고 칼질했다가 '집에 돌아가시라' '차라리 문 닫아라' '격려도 모자랄 판에 낙선운동이나 하고 다녀' 등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은 당내 비판에 대해서는 "다른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나는 내 할 일만 하겠다"고 소통을 차단한다. 전당대회나 자강론이 거론되면 여차하면 걷어차고 나갈 태세다.

 반문 진영이 김종인 위원장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2022년 정권교체다. 가까이는 서울. 부산 시장보궐선거 승리다. 그러나 보궐선거와 대선 승리를 위한 밑그름은 내놓지 않고 있다.  뜬금없이 제기한 ‘70년대생 경제전문가 대선후보론’이 전부다. 당 지지율도 여전히 20%대다. 중도. 청년층 지지가 관건이라면서 중도.청년층을 사로잡을 개혁방안은 없다. 신인을 낙점해 대통령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지만 현직 대통령도 힘든 일을 야당 임시관리인이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자만. 오만이 아니라 망상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희망고문에 정권교체를 간절히 희망하는 국민들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있는데 국민의힘과 반문 진영 리더들은 두꺼비눈만 껌뻑껌뻑하면서 지켜만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희망고문을 끝내는 방법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가급적 빨리 해피 또는 베드 엔딩에 직면할 것을 권유한다. 베드 엔딩의 슬픔이 결코 희망고문의 부작용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들에 대한 희망고문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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