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정착 비결은 어떤 상황이든 솔직한 것”

[사진 = 한의사 김지은 씨 제공]
[사진 = 한의사 김지은 씨 제공]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탈북민 재입북’ 관련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월북한 55명 가운데 29명(52.7%)은 탈북민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북한매체 보도 등을 통해 탈북민의 재입북 사실을 확인한 것인데, 확인되지 않은 인원까지 포함하면 재입북 탈북민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재입북을 하는 이유 대부분은 ‘정착 실패’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우리 국민인 탈북민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일요서울은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탈북민 정착의 현실을 알아보고, 문제를 진단하고자 한다. 지난 21일 인터뷰의 마지막 주인공 한의사 김지은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의대 교육 과정 조바심 버리고 도움 요청”
“남북한 보건 의료 통합 전문가 되고파”

-자기소개를 한다면.
▲ 함경북도 청진에서 의학 대학을 졸업하고 10여 년간 의사를 하다가 2002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도 한의대 본과 정규과정을 밟고 다시 한의사로 12년째 일하고 있다. 

-북한에서 어떤 계기로 의대 진학을 하게 됐나.
▲ 원래 꿈은 법관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곧잘 했고 말도 조리 있게 해서 법대 진학을 꿈꿨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됐다. 북한에서 법대는 김일성종합대학 법학과 하나뿐인데 여기를 가기에는 집안이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 대신 차선으로 사범대학에 가서 교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 어머니가 의대 진학을 강력하게 원하셨다. 나는 피를 보는 게 싫어서 의대는 안 가고 싶었지만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의대에 지원했고 운도 따랐는지 입학 후에 보는 시험에도 합격해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 

-북한에서는 의대생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반응인가. 
▲ 한국과 비슷하다. 의대에 다닌다고 하면 ‘공부 좀 했구나’라는 반응이다. 대부분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진학한다. 기술을 대우해 주는 북한에서 의사는 좋은 직업으로 손꼽힌다. 

-남북한의 의대 시스템은 어떻게 다른가.
▲ 한국은 종합대학 안에 단과대로 ‘의과 대학’이 있지만, 북한은 지역마다 ‘의학 대학’이 따로 있다. 북한의 의학 대학은 양방, 한방, 약학, 치과, 위생 등 전공이 있고 나는 한방 중에서도 동의학을 공부했다. 동의학은 90년대 초반 고려의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의학 대학에 입학하면 처음 1학년 때 원하는 전공을 적어 낸다. 나는 피를 보는 게 싫고 할아버지도 한의사여서 집에 있던 책들이 도움 될 것 같아 동의학을 선택했다. 

-의사를 10여 년간 하다가 갑자기 왜 탈북을 하게 됐나.
▲ ‘식량난’으로 인해 1993년~1995년이 정말 힘들었다. 의사임에도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면서 중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이 중국에 갔다가 북한에 잡혀 와도 계속 탈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가게 됐다.  

-탈북 이후,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처음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 무엇이든지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음에 전화 드린다’는 말이 거절표현인 걸 아는 것도 오래 걸릴 만큼 문화적 격차를 극복하는 것도 힘들었다. 우연히 교회에서 만난 사람을 따라 다단계 회사에 간 적도 있었는데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반해 3개월 정도 일하다가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게 됐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한의사를 다시 선택하게 됐다.

-한의사 준비는 어떻게 했나.
▲ 통일부·교육부에선 북한에서 한의대 다녔던 학력을 인정해 줬지만, 한의사 국가고시 자격시험을 신청하러 간 보건복지부에서는 졸업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북한에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는 황당한 소리까지 들었다. 답답했다. 그러다 회사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국회 국정감사에 참여해 발언을 할 수 있었고 이걸 계기로 한의대에 편입해 한의학을 다시 배우게 됐다. 남들은 이 나이에 학교에 가냐고 했지만 북한에서 배운 것과 한국에서 배우는 건 또 다르다고 생각했다. 등록금을 벌며 학교에 다녔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많이 얻을 수 있는 귀한시간이었다. 

-의과 대학에 진학했을 때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수재들 속에서 공부하려니 처음엔 따라가는 것도 어려웠다. 또 동기들과는 나이,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우였다. 첫 학기에 재시험을 보고 끝내고 나오는데 친구들이 케이크를 사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급 당할까봐 걱정하는 나를 응원을 해주고 공부를 할 때 모르는 부분을 잘 알려주고 기출페이퍼까지 만드는 도움을 줬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알게 된 건 내 인생에서 굉장한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 앞선 여러 과정을 거치며 지치고 자존심이 상해 한때 유서를 쓰기도 했었다. 그때,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보다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죽음을 생각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해 보니 내가 욕심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던 탓이 컸다. 생각을 바꿔 ‘자존심’ 대신 ‘자존감’을 챙기기로 했다. 자존감은 어떤 상황이든 솔직한 것인데 이런 게 오히려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힘들 때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이렇게 요청을 했을 때 단 한 사람도 이것도 모르냐며 무시한 적이 없다. 오히려 더 잘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다.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 탈북민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 주변 분들한테 가끔 이야기를 할 때 조바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조금 내려놓고 상황을 느긋하게 받아들이면 얼굴 표정도 좋아진다. 그럼 주변에 사람이 붙는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도 주변 사람들의 덕이 컸다. 99%의 악조건 속에서도 1%의 긍정을 찾는다면 그 1%를 보고 앞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방식을 바꾸니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하고 그 속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 좋은 시너지가 생기기도 한다. 인생은 마라톤이기 때문에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그걸 이겨내야 결승선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나.
▲ 남북한 보건 의료 통합에 관심이 많아 최근 법학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한의사가 무슨 법학박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보건 의료 통합을 위한 제도 개선은 법적 기초 하에 진행돼야 단단하고 견고해지는 것이다. 관련 법제 연구를 통해 의료 제도와 체계를 완성하는 게 중요하다. 건강한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지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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