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위험한 사랑(1)

“그렇지? 그런데 왜 그런 흉한 꿈이 나를 괴롭힐까.”

그러나 그 정도로 어머니의 입술이 닫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낯익은 손님이 찾아오자 다시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글쎄, 내 얘기 좀 들어보실라우, 어젯밤 꿈에 말이유……. 손님이 흥미를 갖든 말든 어머니는 또 똑같은 말을 꺼내놓는 것이었다.

“꿈은 반대라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 꿈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손님이 귀찮다는 투로 손사래까지 치며 말토막을 자르고 들었으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자기 할 말은 모두 뱉어내고 나서야 어머니는 입을 닫았다. 그러나 마무리를 하면서 끝으로 하는 말은 언제나 똑 같았다.

“오늘 저녁 반찬은 무얼 먹고 싶다니, 우리 아기가?”

염 은옥은 그런 어머니가 오히려 안쓰러웠다. 무엇이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일까. 혹시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신다는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 염 은옥은 ‘미나리를 듬뿍 넣고 끓인 생대구탕’을 주문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이 원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 또 다른 선

태진개발의 김 국진 이사는 골프장 건설현장에서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가 천호동의 백곰파 행동대장인 기수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강 승길과 함께 있던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확인은 모두 끝났는데, 어떡할까요?”

그의 목소리는 힘이 넘쳐 있었다.

“그래 상황은 어때?”

“뭐 상황이랄 것도 없어요. 명령만 주십시오, 단박에 끝장내어 버릴 테니까.”

“그렇게 함부로 서두르지 마. 너희들은 그게 탈이야, 언제나.”

날씨 탓일까, 김 이사는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들큰한 아카시아 꽃향기를 실어왔다.

“몇 명이나 붙였어?”

“두어 명 붙였는데요.”

“계획은 세웠어?”

김 이사의 물음에 기수는 코웃음으로 대꾸했다. 이런 일에 무슨 작전계획까지……. 그는 그냥 밀어붙이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따지고 살피다가는 시작도 하기 전에 ‘곰팡이’가 슬어버린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도 계획은 세워야지. 사람 멱을 따는 일인데.”

“알겠습니다.”

“뒷감당을 생각해야지.”

전화가 끊겼다. 그러나 김 이사는 쉽사리 폴더를 접지 못했다. 기수는 젊고, 분명해서 이런 일에 인기가 많았다. 프로다운 솜씨도 이미 정평이 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 이사에게는 그 자신만만함이 늘 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더구나 이번 일은 ‘이권’이나 챙기는 시시껄렁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까딱 잘못하면 ‘줄줄이 사탕’처럼 떼거리로 엮여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설계도를 놓고 예비 브리핑을 하다가 맥이 끊긴 강 승길은 초조한 눈빛이었다. 깜씨, 이 짜아식. 이게 얼마짜리 ‘껀수’인데……. 그럴수록 그는 차 일만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가 갈렸다. 이틀 뒤에는 내 틀림없이 결행하리라. 김 국진 이사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그러나 입력된 문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하루 종일 소식이 없는 ‘빳따’가 궁금했다.

골프 건설에서는 토목과 조경이 제일 큰 공사였다.

다행히 산을 깎아내리는 공사를 맡아 이익금은 이미 조금 챙겼으나 이제는 본격적인 공사에도 참여하고 싶은 게 그의 욕심이었다.

다른 사업과 달리 건설업이 매력 있는 사업이라는 것은 이처럼 한 번 ‘노’가 나면 일생동안 배 두들기며 살 수 있는 ‘쩐’이 한꺼번에 굴러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러나 지금 강 승길이 안고 있는 문제는 도급 실적 미달이었다.

“오늘 저녁 어떻습니까? ‘강월’에 물 좋은 아이들이 새로 들어왔다는데…….”

강 승길은 사람 좋은 웃음을 헤실헤실 뿌리면서 김 이사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를 붙잡고 늘어지면 본 공사에 참여하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산 몇 개 깎아내리고 허무는 기초 공사에서 그는 이미 김 이사의 실력을 보았던 까닭이었다.

“회장의 호출이 있어요. 저녁 여덟 시까지는 꼭 들어오라는…….”

“아니, 그 ‘오야지’는 밤잠도 자지 않는답디까?”

“월급쟁이라는 게 매인 몸 아닙니까. 거기다가 그 양반이 요즘은 국회의원 병에 걸려서 신경이 보통 날카로운 게 아니거든요.”

그러나 김 이사는 강 승길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다음 날 ‘강월’에서 여덟 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자동차에 올랐다.

기수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가 자동차에 오른 지 20여 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는 당장 일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10분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 사랑은 힘이 세다

낯선 사내 둘이 미용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온 것이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미용실 주변을 기웃거리며 쑤군대는 품이 분명했다. 공터에 몸을 숨긴 채 미용실을 주시하던 차 일만은 그들을 발견하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만……. 차 일만은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각이 진 그들의 눈초리에는 살기가 돌고 있었다. 둘 가운데 키가 크고 홀쭉한 사내가 조장인 듯 그가 무어라고 하자 키가 작고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가 허리를 굽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속전속결. 그들은 비교적 인적이 뜸한 아침녘을 택해 ‘그 일’을 끝내겠다고 작정한 게 틀림없었다.

차 일만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점퍼 속에 감추어진 무기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처지여서 그것은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퍽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차 일만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과, 하는 ‘풍월’로 미루어 짐작할 때 ‘촛짜’가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일에서 상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싸움에서 한 수 접히는 것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촛짜’는 비록 ‘풋깡’은 있을지 몰라도 실전 체험이 떨어져 몇 분이 채 못 가 제풀에 무너지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키가 큰 사내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을 때였다. 마침내 염 은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오늘이 정기 검진을 받는 날이었으면, 하고 바라던 차 일만은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호흡이 멈춰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절망이었으며, 낭패였다. 이제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차피 싸움이란 피할 방법이 없었으며, 누구든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두 사내도 염 은옥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건물 뒤편으로 급히 몸을 숨겼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염 은옥은 큰 배를 쑥 내밀고 다가와 평소와 다름없이 미용실 출입문을 밀었다. 그녀의 모습이 미용실 안으로 사라지자 사내들이 다시 나타났다. 차 일만은 조마조마했다. 등줄기에 땀이 솟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결심을 굳힌 듯 사내들이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차 일만도 더 이상은 가만히 숨어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미용실을 향하여 뛰어갔다.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앞뒤를 재고 자시고도 없었다. 목숨을 운명에 맡긴 채 갈 데까지 가야 하는 것이었다. 어금니를 앙다문 그는 미스 리가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바삐 나오다가 아는 체 하였으나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사납게 출입문을 열었다.

“이 짜아식들, 어따 대고 수작질이야! 담배 심부름 시켜놓고 일을 치르시겠다? 그리고는 강도짓으로 위장하려구?”

차 일만은 염 은옥부터 찾았다. 그녀의 안전이 첫째였다. 어느새 구석까지 몰린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겁에 질린 큰 눈망울이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보였다. 일촉즉발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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