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위기의 미혼모 ②]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누가 보호해줄까
[집중취재-위기의 미혼모 ②]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누가 보호해줄까
  • 김혜진 기자
  • 입력 2020-10-23 19:58
  • 승인 2020.10.23 20:55
  • 호수 1382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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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인권 보호의 핵심인데…정부 지원 ‘0원’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사진=김혜진 기자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친부모가 실명으로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이 가능해졌다. 아기를 낳아도 키울 수 없는 입장에선 ‘베이비박스’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특히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은 출산 이후 극심한 우울증을 느끼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아기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안 돼 고민하던 부모는 결국 화장실에, 길가에 유기한다. 이 같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막아보고자 베이비박스가 생겨났다. 현재는 수도권 두 곳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데 올해 8월까지 총 1777명의 아이가 왔다고 했다. 일요서울은 직접 방문해 더 자세한 상황을 들어 봤다. 

유일한 베이비박스 수도권 2곳, 10년간 총 1777명 거쳐가

#1. 키울 능력만 된다면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 거두고 싶지만 함께하는 게 우리 둘에게 더 불행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이런 선택을 합니다. 제대로 된 음식도 못 먹고 태교도 못했는데 해 준 것 없이 보내게 되어 마음이 아프네요. 부디 행복하게 순탄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엄마를 이해해줬음 좋겠어... 엄마가 끝까지 아들 옆에서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아들 사랑해. 정 주지 말아야지 독하게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더라. 건강하게 무럭무럭 또 행복해야 해. ㅡ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2. 아이 아빠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이 되지 않았죠. 부모님께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서 10달을 보내고 혼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첫날은 믿기지가 않았어요. 하루 지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키울 수 없는 현실이 실감이 나고요. 찾아보니 입양특례법 때문에 곤란한 사람들이 저 말고도 많더라고요.

네가 싫어서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니야. 미안하고 사랑해. 앞으로 건강하고 밝고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어. 또 아프지 마렴. 네가 아픈 것 내가 다 아파줄 수 있으면 좋겠다. 네 생각도 매일매일 할 거야. 잊지 않을게 집에서 낳은 건 너무 미안해.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하고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행복하렴 우리 아가야.

“엄마들이 박스 문을 열기까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는 게 보여요. 박스를 열면 무거워서 몇 초가 걸리니까 그때 얼른 뛰어나가서 엄마를 붙잡는 거죠.”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서 2년째 근무 중인 상담사 이혜석 씨는 24시간 상주하며 베이비박스에 벨이 울릴 때마다 뛰어나간다.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를 데리고 들어와 상담을 진행하며 아기가 나중에 볼 편지라도 써 달라고 권유한다. 이후 아기를 어디서 낳았는지부터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차근차근 묻는다. 이 씨는 상담하다보면 엄마들 중 상당수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최후의 선택을 하러 온다며 마음먹고 무작정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는 엄마들은 드물다고 했다.

서울 주사랑공동체 교회와 군포 새가나안교회 두 곳의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아기들은 10여 년간 총 1777명(2020년 8월 기준)에 달한다. 교회가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아기를 맡기는 부모의 가정상황은 전체 72.1%가 미혼 가정이었다. 연령층은 ▲20대 52% ▲30대 28% ▲10대 12% 순이다. 베이비박스에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나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아기들이 맡겨진다. 어린 나이에 충동적인 임신으로, 강간에 의한 임신으로, 혼외자를 임신한 경우,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임신한 경우 등 사례도 다양하다. 

베이비박스 아기, 안전한 행정보호 시스템 필요

2009년부터 10여 년간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온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정부로부터 보호 받고 안전한 울타리에서 자라야 하는데 보호는커녕 행정 절차조차 보호받을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주사랑공동체는 ▲곧장 112에 신고한다. ▲관할 지구대가 DNA를 채취하는 등 방문조사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구청 공무원이 방문해 임시보호된 아기를 병원으로 인도한다. ▲서울시립아동병원과 보라매병원에 가서 여러 차례 꼼꼼한 건강검사를 받는다. ▲일시보호소에 머물다가 자리가 생기는 보육원에 순서대로 보내진다. 장애 판정을 받은 아기의 경우 별도의 장애아동시설로 배정된다. ▲보육원 원장의 재량에 따라 입양 가능 여부가 정해진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베이비박스에서 입양까지 최소 3주, 최대 6개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 목사는 “외국은 원터치 시스템으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는 아기들이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진다”면서 “안전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개월동안 아기를 돌보는 비용은 병원 검진비를 제외하고 모두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두 교회가 ‘알아서’ 지출한다. 생필품 등 각종 아기용품이나 소정의 비용 지원은 교회 신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십시일반 모아 제공하기도 한다. 아기를 보호하는 이곳들에 정부나 해당 지자체가 책정한 예산은 ‘0원’이다. 

여전히 논의만 하는 ‘보호출산제’ 가능해질까

앞서 엄마들의 편지에서도 등장했지만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으로 많은 부모들이 베이비박스를 찾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실명 출생신고를 거부한다. 대개 출산 사실이 노출될 경우 곤란해지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출생신고가 된 아기에 한해서만 입양이 가능한 현행 입양특례법에 따라 아기의 정착지가 제한된다. 입양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아기는 바로 보육원으로 가게 된다. 이종락 목사와 관련 시민단체, 몇몇 국회의원들은 법안 개정과 지원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2018년 2월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허용하고 출생기록을 법원에서만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비밀출산 및 임산부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난 2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한 미혼모들의 편지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미혼이 출생신고를 하는 등의 부담을 감내하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면서 “이제는 독일처럼 비밀출산제를 도입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제안했다. 이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호(익명)출산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호출산제는 임산부가 상담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신원을 감춘 채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김미애 의원은 23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아이를 입양 보낼 때 ‘입양정보통합관리시스템’을 이용하면 가족관계등록부보다 더 풍부한 정보가 영구보존되기 때문에 나중에 언제든 아이가 원하면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아직까지 아이의 알 권리 보호를 위해서만 출생신고를 하도록 해야 하는 건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종락 목사 역시 “법과 제도부터 제대로 구축한다면 더 이상 갈 곳 없는 엄마와 아기가 생기지 않아 베이비박스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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