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을 예고하는 아베 사다의 광기

사람들은 아베 사다에게 동정적이었다. 아베 사다는 오랜 재판 끝에 불과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아베 사다의 성기 절단 사건은 암울한 제국주의 시대에 일어난 일이라 일본 예술가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소설과 연극이 발표되었고 마침내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 의해 ‘감각의 제국’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베 사다역을 맡은 영화배우 마츠다 에이코와 기치조우역을 맡은 후지 타츠야는 격정에 빠진 아베 사다역을 연기하기 위해 영화를 찍을 때 실제 정사를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아베 사다는 정신적으로 조증에 걸려 있었다고 분석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많다. 불우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 기치조우를 처음으로 만났으나 그 남자를 소유할 때는 섹스할 때뿐이었다. 조증은 일반적으로 말을 많이 하고 섹스에 대해서 몰입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조증 환자들의 경우 뇌신경을 자극하는 도파민이 확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베 사다는 욕정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를 살해했다. 욕정은 비정상적일 때 광포해 진다. 그렇다면 조증이라는 정신 질환을 앓게 되면 누구나 이와 같은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베 사다가 기치조우를 살해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30년대 일본은 제국주의가 극도로 발달해 있었고 막강한 군부는 중일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본은 1937년의 중일전쟁에 뒤이어 1939년 진주만을 폭격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려 들어가는데 아베 사다의 살인사건은 이러한 광적인 제2차 세계대전을 암시한 사건인 것이다. <끝>



남녀가 방사 도중 음화(淫火)가 일어나서 죽은 사건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사랑, 소위 불륜은 본인들에게는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이지만 타인에게는 지탄의 대상이다. 그런 까닭에 불륜 관계인 사람들의 사랑은 비밀스럽고 더욱 뜨겁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불륜 때문에 정사를 하는 사람이 간혹 있고, 돌연사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조 시대 전라도 나주의 한 촌가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가 불에 타 죽었는데 당시 형조참의였던 다산 정약용이 사랑이 너무 뜨거워 음화(淫火)가 일어나 타 죽었다고 결론을 내려 희이(稀異)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정조 연간 한겨울이었다. 전라도 나주에 살고 있는 나은갑의 집에 밤 9시경 두 남녀가 찾아왔다. 여자는 쓰개치마를 두른 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몸을 돌리고 서 있었고 남자는 나은갑이 평소에 알고 지내는 김점룡이었다. 날씨가 살을 엘 듯이 추운 탓인지 그는 땔감 석 단을 들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빈방에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김점룡이 나은갑에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우리집에…… 부인이신가?”

나은갑은 김점룡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여자를 살피며 당황하여 물었다. 그러나 여자가 몸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여자는 뒷모습의 자태가 얌전하고 기품이 있었다.

“아, 아닙니다. 아저씨 집에 빈방이 있는 걸 알고 있어서…….”

김점룡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은갑은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으나 김점룡을 알고 있던 터라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나은갑이 허락을 하자 여자가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을 한 달 넘게 비워놔서 냉골일 거야.”

“괜찮습니다. 땔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도 이부자리는 있어야지.”

“여분이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은갑은 김점룡에게 이부자리를 갖다 주고 몇 마디 셈에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김점룡은 두어 차례 방을 드나들면서 방이 따뜻한지 확인하고는 깨진 그릇에 숯불을 담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나은갑도 안방으로 가 부인과 함께 잠을 잤으나 선잠을 잤다. 이상하게 비어 있던 방에 잠을 자고 있을 김점룡과 여자의 생각이 자꾸 떠올랐고 찬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나은갑은 김점룡이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자 의아했다. 날씨가 추워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동행한 여자가 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는 방 앞에 가서 나직한 목소리로 김점룡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밤새도록 운우지정을 나누었나? 어찌 대답이 없지?’

나은갑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몸을 돌리려다가 방에서 연기가 솔솔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은갑은 황급히 김점룡을 부르면서 문을 열려고 했으나 안에서 고리가 잠겨 있었다. 나은갑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연기가 자욱한 화염 속에 두 남녀가 누워 있었다. 그들은 벌써 숯덩이처럼 타 있었다. 나은갑은 깜짝 놀라서 이웃에 살고 있는 고은옥을 불러 함께 불을 껐다. 불을 끄고 보니 두 남녀는 성한 곳이 없었다. 나은갑은 김점룡의 가족을 불렀다. 허겁지겁 달려온 김점룡의 부인이 시체를 살피고는 탄식을 하면서 울었다.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나주목사가 검험관들을 데리고 현장에 출동하여 검험을 실시했다. 나주목사는 먼저 김점룡의 시체부터 검험했다.

“두 눈에서 피와 흰 즙이 흘러내리고 이는 꽉 다물어져 있다.”

의생이 시체를 살피면서 말하자 서리가 시장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의 움푹 들어간 뼈가 까맣게 탔고, 어깻죽지와 왼쪽 겨드랑이가 불에 데어 부풀어 올랐다. 어깨에서 팔꿈치까지는 타서 까맣고 양손도 불에 데어 부풀어 올랐다. 하복부와 사타구니는 타서 부풀어 올랐으나….”

검험을 하던 의생이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의생에게 쏠렸다. 나주목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도 김점룡의 사타구니에 꼿꼿하게 일어서 있는 음경이 뚜렷이 보였다.

“살갗이 말린 음경은 곧게 섰으나 까맣게 탔다.”

의생의 말에 사람들이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여인의 시체에 대해서도 검험이 이루어졌다. 여인의 상태는 남자와 비슷했으나 가슴 위아래와 음문이 까맣게 타 있었다. 두 다리와 팔, 얼굴, 발톱은 온전했다. 나주목사는 두 남녀의 시체 앞에서 곤혹스러움에 빠졌다. 남녀가 모두 하복부 근처만 완전히 탔는데, 기이하게도 까맣게 탄 남자의 성기가 위로 꼿꼿하게 서 있고 여자는 음문이 유별나게 까맣게 탄 것이다. 나주목사는 관원들을 동원하여 타살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흉기에 찔린 뒤에 불에 타 죽은 것처럼 위장을 하지는 않았는지 알아내려고 방바닥을 깨끗이 쓸고 초를 뿌려보았으나 혈흔을 찾을 수 없었다. 두 남녀의 시체를 엎어놓고 세세히 살폈으나 역시 뒤에서도 외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이다. 남녀가 운우지정을 나누다가 한 사람이 죽는 일은 있어도 두 사람이 함께 죽는 것은 전례가 없다. 게다가 두 사람이 자는 것처럼 나란히 누워 죽지 않았는가?’

나주목사는 김점룡의 부인 김 소사를 신문했다.

김 소사는 남편이 외간 여자와 같이 죽었기 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대는 남편이 여자와 사통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가?”

나주목사가 김점룡의 부인에게 물었다. 나주목사는 원한에 의한 치정 살인이 아닌가 하여 김점룡이 외간 여자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본 것이다.

“몰랐습니다.”

“남편을 의심한 일은 없는가?”

“없었습니다.”

“그날의 상황을 자세하게 진술하라.”

“그제가 시아버님 제삿날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쓴 고기가 남아 있었는데 어제 남편이 아들을 시켜 대접할 사람이 있다면서 고기를 반남에 있는 술장수 노파에게 보냈습니다. 남편은 저녁을 먹은 후 밖에 일이 있다고 나가서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이웃집 아이가 갑자기 달려와서 나은갑의 집에서 남편이 죽었다고 하여 달려갔더니 방 안에 화염이 가득했습니다. 남편은 여자의 오른팔을 베고 누워 있었고 여자의 다리는 남편의 배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여자는 반남의 길가에 살고 있는 여자입니다. 남편과 여자가 불에 탄 것은 얼굴 아래와 다리 사이 사춤이었고 방구들은 구멍이 뚫린 곳이 없어서 어디에서 불이 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김점룡 부인의 대답이었다. 나주목사는 도저히 사망 원인을 알아낼 수 없어서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정리를 하여 전라도 감영에 보고서를 올렸다.

이 사건은 한겨울의 추위로 한 달 이상 비워둔 방에 갑자기 불을 때자 습기와 훈증이 생기고 악취가 합해져 의식을 잃은 뒤에 불에 타서 죽은 것이다.《무원록》의 유독물질로 사망한 조항을 살피면 ‘석탄을 구들에 때면 불이 세고 악취가 난다. 사람이 그 훈증을 쏘이면 정신을 잃고 죽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경우와 비슷하다. 병으로 죽었다고 할 수도 없고 불에 타 죽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번 사건의 사망 원인은 훈증에 먼저 의식을 잃고 불에 타 치사한 것으로 보인다.

전라도 감영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복검을 한 뒤에 제사를 내려 보내고 형조에 보고했다.

이 사건은 죽은 뒤에 불에 탄 것이다. 죽기 전에 불에 탄 경우는 주먹을 쥐고 고황(膏黃)의 증거(심장과 횡격막 사이에 이상이 있는)가 있다. 게다가 남자는 여자의 팔을 베고 여자는 남자의 배에 다리를 얹어놓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 불이 났다면 훈증으로 정신을 잃었다고 해도 어찌 깨닫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껴안고 있었겠는가? 《무원록》에 유독물질로 인한 사망 원인이 있다고 해도 둘이 한꺼번에 죽은 것은 괴이한 일이다. 사리로 따진다면 새벽에 망부의 대상을 마쳤으니 하룻밤을 설쳐 몹시 피로했을 것인데, 저녁에 여자를 만나 같이 자게 되었으며, 또 석 잔의 술에 취기가 있었고, 불을 때지 않은 음습한 방에서 과도하게 방사를 했으나〔過作〕밤은 벌써 깊었다. 남녀는 피로하여 서로를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졌다. 이때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에 그릇의 불이 우연히 붙었다. 처음엔 불길이 맹렬하지 않고 독한 연기가 방을 채웠을 것이다. 훈연을 마셨으니 먼저 정신을 잃고 불에 타 죽은 것이다. 불이 자욱한 연기에 의해 저절로 꺼지면서〔消滅〕집 전체를 태우지는 않았다. 이에 사망 원인을 훈증 치사로 기록한다.

정약용은 나주목사의 검험 시장과 발사를 꼼꼼하게 읽은 뒤에 이 사건은 일반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음화로 인해 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자신의 논리를 입증했다.

중국 곡주에 사는 부자의 며느리가 친정에 갔다가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며느리가 일어나지 않아 사람들이 깨우러 가서 방을 들여다보니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고, 침상 위를 보니 이불이 반쯤 타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모두 불에 탔으나 다리는 타지 않아 기이하게 생각했다.

정약용은 중국 곡주의 두 남녀도 음화가 일어나서 죽은 것으로 본 것이다. 정약용은 음화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이덕무의 말까지 끌어들였다.

사람의 몸은 모두 물과 불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道家)에서는 물이 오르고 불이 내리는 것을 극공(極工)이라고 하였고, 의가(醫家)에서는 음(陰)을 북돋워 화(火)를 내리는 것을 지요(至要)라고 했다. 음욕이란 섶에 비유될 수 있는 것으로, 끌어다가 불을 붙이면 몸이 타는데, 그런 것이 바로 사물의 이치다. 색(色)으로 죽는 자는 모두 안에서 오장육부가 타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이덕무의 말을 인용해 음욕에 대해 설명한 뒤에 사인을 음화로 결론 내린 이유를 들었다.

심(心)과 신(腎)에 황고(黃膏)가 있는데 음욕이 치솟아 극에 이르면 불이 나서 오장육부를 태워 숨이 끊어지게 된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게 자는 듯이 누워서 죽으며 살은 검게 된다. 이 불은 심과 신에서 일어나 속에서 겉으로 나와 온몸으로 번지기 때문에 다리와 얼굴은 타지 않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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