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구상을 마친 뒤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하고 있다. 2014.04.17. [뉴시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영구상을 마친 뒤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하고 있다. 2014.04.17. [뉴시스]

[일요서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10일 자택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한 뒤 순천향대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그 다음날인 11일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된 지 6여 년만이다.

 
2014년 4월 17일, 해외 일정을 마치고 96일 만에 돌아온 입국장에서 “건강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은 뒤 “보시는대로 괜찮습니다”고 했던 짧은 대답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공식적입 목소리가 돼버린 것이다.
 
물론 그동안 몇 편의 서적이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놓기는 했지만, 역사적인 그룹 삼성을 이끌었던 수장의 작별로 안타깝고 아쉬운 마지막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일요서울]은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 경제계에 남겨놓은 행적들을 다시 되돌아봤다.
 
20세기와 21세기, 양 세기에 걸친 극적인 성공
처자식 빼고는 모두 바꾸자고 외치던 개혁 정신

이건희 회장은 전통제조업의 20세기와 첨단산업의 21세기를 이으며 양 세기에 걸쳐 가장 극적인 성공을 이룬 기업인 중 한 명으로 불린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시대의 배경을 보면 왜 이러한 평가를 받는지 한 눈에 파악이 가능하다.
삼성그룹의 역사에서 이건희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은 1987년이다. 삼성그룹이 글로벌 그룹으로 태동한 시기 역시 이 때다.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의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글로벌 경영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로 1990년대부터 촉발된 소련체제의 붕괴, 동유럽 공산체제의 몰락, 중국의 개방으로 인한 경영환경의 급변이 휘몰아쳤다. 글로벌화가 우리나라 최대 아젠다가 됐고, 그동안 글로벌화에 내면적으로 역량을 키워오던 삼성에게는 기회가 됐다.
 
두 번째, 세계는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전환을 맞이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등 디지털시대의 선봉에 선 기업들이 디지털화의 선두에서 삼성그룹을 이끌었고, 이는 한국정부의 IT정책과도 맞아 떨어졌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이러한 경영환경에서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정책·기업의 역량·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이 21세기를 선도하는 창조적 기업의 탄생을 이끌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삼성그룹이 ‘한국의 전통사상과 서구의 합리사상을 접목한 한국형 회사공동체로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기업집단이며, 그것은 국적이 없거나 국적이 애매한 글로벌기업인 다국적 기업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반이다.
 
위기경영론의 창안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과정 속에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경영 철학과 이론이 스며있었다. 아울러 무엇보다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업적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바로 위기경영론이다.
이건희 회장 역시 재임하면서 한 번도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바로 1997년의 IMF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삼성그룹에 적신호를 알렸다.
 
그럼에도 이건희 회장의 위기관리 능력은 오히려 삼성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성과를 거두게 했다. 두 차례의 위기 후 삼성의 기업실적이 괄목할 만큼 신장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건희 회장이 위기경영론의 창안자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1988년의 회장취임 이래 거의 5년마다 독특한 위기론을 제시하면서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바꾸자(처와 자식을 빼고 모두 바꾸자)”, 1998년 “버리자(IMF 위기극복을 위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과감히 버리자)”, 그리고 2002년 “찾아라(5~10년 후 무엇을 먹고 살 수 있는가를 찾아보자)”라고 강조하면서 급변하는 사회·경제 환경에 대응했던 일화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끝까지 관철 시킨 경영 철학 역시 이를 잇는 마하 경영이다. 마하 경영은 이 회장이 2002년 “제트기가 음속의 두 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만 두 배로 있다고 되는가. 재료공학부터 기초물리, 모든 재질과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으로 날 수 있다”고 강조한 데서 유래한 개념이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는 물론 엔진·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처럼 삼성이 글로벌 선진기업 중에도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실제 이러한 신경영 발표 이후 나타난 객관적인 지표들도 이건희 회장의 경영이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증명한다.
 
창업 때부터 지켜낸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삶
 
1993년 이후 매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29조 원에서 380조 원으로 13배가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8000억 원에서 38조원으로 47배, 총자산은 41조 원에서 543조 원으로 13.2배가 올라섰다. 시가총액은 7조 6000억 원에서 338조 원으로 44배가 늘었다. 또 이 모든 결과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 세계 9위로 귀결됐다.
투철했던 이념들
 
다만 이건희 회장의 경영 철학과 과거를 위기경영론 하나로 규정짓기는 모자라다. 이건희 회장을 말하는 데 필요한 단어는 상생과 책임 등이 존재한다. 삼성그룹의 삼성경영학을 살펴보면 이를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
 
삼성그룹을 움직인 삼성경영학이 성문화된 것은 1973년이다.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의 세 가지 항목으로 돼있는 삼성의 경영이념이 1973년에 수립된 ‘제2차 삼성경영 5개년계획’을 통해 성문화된 것이다.
 
나아가 삼성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88년 3월 20일 창립 5주년을 맞이해 제2의 삼성경영학을 선포했다.
 
제2의 삼성경영학으로 당초 아홉 가지 항목(위기의식·인식의 전환·업의 개념·전략적 기회경영·기술 중시의 경영·인간존중의 경영·구매의 예술화·자율경영의 실천·그룹공동체 의식)이 선포됐다. 이들 중 실천되어야 하는 핵심 덕목으로 자율경영·기술중시·인간존중의 세 가지 항목이 선택됐고 1993년 3월 창립 55주년에 삼성경영학으로 정식 채택했다.
 
삼성그룹의 창업 때부터 기업 활동에 내재·전승되어 온 기업정신을 요약·공식화 시킨 사항들이다. 다시 말해 8·15 해방 후 삼성그룹의 기업 동기는 사업보국이었으며, 삼성그룹의 경영사상은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였다.
삼성그룹은 이 같은 경영사상에 입각해 삼성그룹 산하의 각종 기업을 설립했다. 삼성의 경영사상은 삼성그룹의 이념으로서 기업경영의 지침이 됐으며, 그것은 삼성맨이 공감하는 삼성정신이 되어 삼성그룹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다.
 
1984년에 삼성정신이 설립되었는데 이것은 삼성그룹의 경영이념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이고 명백하게 제시된 삼성인의 생활 지표였다. 삼성정신은 성문화되기 이전인 삼성그룹의 창업 때부터 삼성의 경영이념과 함께 지켜왔던 것이다.
 
즉 삼성정신은 경영사상의 실천이념으로서 삼성맨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다. 따라서 경영사상에는 삼성정신까지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가의 철학이나 경영신조가 기업의 이념으로 명시될 때 이를 경영사상이라고 하며 경영이념은 기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화 내지 확대되는 이른바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삼성의 경영이념은 창업기의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에서 점차 삼성정신인 창조정신·도덕정신·제일주의·완전주의·공영공존정신으로 확대 해석되어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경영이념인 사업보국은 이미 삼성그룹의 사훈이 되어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사상은 삼성인이 공유해 왔으며, 삼성인의 의사결정과 경영행동의 기준이 되어 있다. 또한 그 경영이념은 삼성인의 나침반 같은 것이기도 하다.
 
보좌진과 관리체계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의 퇴고에 빠져선 안되는 요소들이 바로 보좌진과 그들을 관리했던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다.
이건희 회장은 직설과 은유, 눌변과 열변, 은둔과 활보, 온유와 격정 등을 모두를 가진 이로 평가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도 그를 잘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그가 그렇게 음지에서 행동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그만이 가진 싱크탱크였다.
 
전 세계에서 영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삼성의 싱크탱크는 그 자체로도 한국의 싱크탱크 중 최고라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에 대한 노력은 세계최초의 기업을 육성해 고용을 확대하고, 저렴하고 우수한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해 전 지구적인 산업 부흥에 이바지 하는데 삼성의 존립의무가 있다는 확고한 신념에 고무되어 왔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경영학에서 경영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경영자는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눈과 국제적인 감각이 있어야 한다. 또 인재를 키워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만한 일을 맡기고 생활을 안정시켜주며 희망을 주어야 한다.
 
또한 경영자는 인류와 국가·사회에 유익한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기업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벌어들인 돈은 어떤 형태로든 국민에게 다시 환원시켜 사회와 회사를 공존경영 할 책임과 사명을 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이건희 회장이 2003년 불현듯 사원의 급여를 두 배로 올려주라고 주문한 일화는 이들을 관리하는 방법론을 보여준다. 임금협상도 끝난 8월이었다. 사장단과 인사팀의 혼란은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 초 삼성 임직원들에게 기어이 500%의 특별보너스를 주고 그해부터 바로 인상된 임금을 지불했다. 이건희 회장이 가진 철학은 “나는 사람 욕심이 세계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나은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내놓을 수가 없다. 돈 몇 푼 나가는 것은 신경도 안 쓴다. 우수한 사람을 더 데리고 효율을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이건희 회장이 주장하는 아젠다는 삼성그룹의 본사는 물론 각 계열사의 사장(간부)을 통해 전 직원에게 전달됐고 이건희 회장은 경영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고 사장단을 중심으로 책임경영제를 실시할 수 있었다.
삼성 가진 인재와 관리는 성실한 업무, 완벽한 일처리, 철저한 사후평가, 끝장 회의 문화 등의 자산을 남겼다.
 
이건희 회장의 능력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장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우뚝 섰던 것도 이건희 회장이 필두로 이뤄낸 결과였고 매출과 규모, 기술력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희 회장이 가장 기뻐하고 있을 발전은 그의 리더십과 인재 중시 등의 경영 철학들이 쌓이고 쌓여, 몇 년째 대한민국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손꼽히고 있다는 점이나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여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특별취재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