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의 거목 `하늘나라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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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여만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4년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후 6년 5개월 병상서 지내
 그룹 핵심 `삼성전자` 경영권 당장 변화 없지만…. 업계 이목 집중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동안 투병해왔다

심장기능을 포함한 신체기능은 정상을 회복해 입원 6개월 무렵부터 안정적인 상태로 하루 15∼19시간 깨어 있으면서 휠체어 운동을 포함한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6년 5개월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이 있다.

이건희 회장, 평탄치 않았던 총수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회장은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후부터 삼성그룹의 회장을 지냈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 레슬링을 즐겨 하고 역도산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소년이었지만, 다혈질인 형들에 비해 차분하고 생각이 깊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일본에서 유학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대 사대 부속 중학교로 편입했고 이어 서울 사대부고로 진학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호암)이 삼남인 그를 후계자로 눈여겨본 것은 그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한비사건)` 이후였다. 이 사건은 1966년 5월 삼성 계열의 한국 비료가 사카린 55톤을 건설자재로 꾸며 들여오다가 들통 났던 일이다. 훗날 당시 현장지휘를 맡았다고 밝힌 장남 이맹희 씨의 회고록 `못다한 이야기`에 따르면 호암은 한국 비료 건설 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로부터 10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안받았다.

그리고 이 돈을 들여오기 위해 박정희 군사 정부의 묵인하에 기계, 양변기, 사카린 등 각종 상품을 국내에 밀수했다. 그러나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당시 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인분을 투척하는 등 국민적 공분이 일어났다. 결국, 책임을 지고 호암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차남 이창희는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이맹희는 아버지 대신 삼성 그룹의 경영을 맡게 됐다.

그런데 호암은 다혈질적인 이맹희의 경영이 미덥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호암자전`에서 맹희의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6개월도 안 되어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썼다. 이에 따라 호암은 1969년부터 다시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건희는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삼성가에서는 이때부터 호암이 이건희를 후계자로 여겼다고 보고 있다. 1970년쯤 이창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버지를 탈세 및 외화 밀반출 등의 혐의로 밀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호암은 이맹희도 모반에 가담했을 것으로 의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 호암은 이맹희의 주요 직함을 내려놓게 하고 경영에 사실상 복귀했다. 충격을 받은 이맹희는 일본으로 떠났고, 이창희 역시 `마그네틱 미디어 코리아(새한미디어의 전신)`를 설립하며 스스로 삼성을 떠난다. 1976년 호암이 위암 수술을 받으러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이건희를 제외한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호암은 이건희를 후계자로 공표한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다

그리고 곧이어 1977년 삼성 그룹의 미래를 가르는 결정의 순간이 온다. 파산 위기에 몰린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이었다. 당시 이건희는 "반드시 한국반도체를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삼성은 1977년 12월 30일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이듬해 `삼성반도체`로 이름을 바꿨다. 2년 뒤인 1980년에는 삼성전자와 합병했다. 1979년 이건희는 삼성 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건희 회장은 취임 후 얼마 안 되어 열린 삼성 그룹 창업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제2의 창업`을 선언한다. 이어 선친의 유언대로 큰형 이맹희의 부인 손복남 여사와 아들 이재현에게 제일제당(현 CJ) 그룹을, 이창희 가에는 제일합섬(이후 새한 그룹)을, 큰누나 이인희에게는 한솔 그룹을, 막내 이명희에게는 신세계를 맡겨 독립시킨다. 이건희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작업도 진행했다. 자신을 2대 회장에 추대한 공신이지만 지나치게 큰 영향력으로 기세가 등등했던 `아버지의 가신` 신현확 전 총리와도 경영권을 확고히 한 1991년 완전히 결별했다.

이건희의 경영 스타일은 세밀한 경영사항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큰 그림`에 대해 가끔 무게 있는 한마디를 던지는 식이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이건희는 도쿄에서 회의를 마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다가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전달받았다. 비디오테이프에는 삼성 세탁기의 뚜껑이 잘 맞지 않는 불량이 생겨 이것을 억지로 맞추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건희는 충격을 받아 사장단과 핵심 간부를 호출하고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고 호통을 친다. 또 1995년 무선전화기 품질 불량 사건이 터졌을 때는 500억 원 상당의 불량 제품을 쌓아 놓고 화형식까지 하며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결국 삼성전자 제품의 품질은 나날이 향상되었고, 지금은 최첨단 제품인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분기당 6조 원의 이익을 내는 대표적인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보유 주식재산 18조…. 상속세는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삼성 지배구조의 변화와 상속인이 내야 할 천문학적인 세금에 관심이 집중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은 23일 종가 기준으로 18조 2251억 원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이 회장은 ▲ 삼성전자 2억4927만 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 9900주(0.08%) ▲ 삼성SDS 9701주(0.01%) ▲ 삼성물산 542만 5733주(2.88%) ▲ 삼성생명 4151만 9180주(20.76%) 등을 보유했다.

이 회장은 이들 4개 계열사의 최대주주이거나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다. 모두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 4개 계열사 지분 상속에 대한 상속세 총액은 평가액 18조 2000억 원에 20%를 할증한 다음 50% 세율을 곱한 후 자진 신고에 따른 공제 3%를 적용하면 10조 6000억 원이다.

지배구조 개편도 관심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경영권 승계 의혹과 노조 문제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에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는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여당에서 삼성 지배구조와 맞물린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해야 한다.

다만 현재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불법·편법적 방식으로 합병해 경영권을 승계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국정농단 뇌물혐의 파기 환송심도 26일부터 시작해 지배구조를 완전히 개편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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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건희 회장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재계와 정치권은 물론 외신 등 애도의 뜻을 내놓고 있다.

전경련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재계 최고의 리더였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어 "남다른 집념과 혁신 정신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먹거리 산업으로 이끌었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다"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국격을 크게 높였고 사회 곳곳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상생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등 고인의 손길은 경제계에만 머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경총도 공식 논평을 내고 "경영계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강한 리더십으로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견인했던 재계의 큰 별,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소식에 존경심을 담아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삼성전자 40년사 발간사에 실렸던 "산업의 주권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도전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고인의 발언을 언급하며 "생전에 기술 발전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이 회장은 흑백 TV를 만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 삼성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선도하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다.

무역협회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세계 최고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우리나라가 무역 강국이자 경제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다"라며 고인을 애도했다.

국민의힘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이셨다”며 “고(故)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와 관련해 조의를 표했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 교도통신 등 외신도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을 속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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