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늘 벗어나'..활동반경 넓히며 두각 드러내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 시대를 호령했던 경영인들이 영면에 들어가면서 2세 시대가 저물고 다음 세대로의 교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10월25일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데 앞서 현대차그룹과 LG그룹 등 주요그룹 2세 경영인들의 경영 일선 후퇴나 부음 소식이 전해졌다.

2세 경영인들은 창업주의 기업 정신을 계승하고 기업의 먹거리를 다양화 했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 들어서는 이들의 손주가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세대교체의 본격 서막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1년새 조양호·김우중·구자경·신격호 이어 이건희까지 별세
 이재용·조원태 총수 등극...4세 최인근<*SK>·신유열<*롯데>도 등장

재계 1·2세 세대는 유독 지난해와 올해 많이 영면에 들어갔다. 지난해 4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12월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구자경 LG그룹 명예 회장이 며칠 차이를 두고 별세했다.

올해 1월에는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전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으며 지난 25일에는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6년여간 병상에 있던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한국 경제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며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준 기업인들이다.  

경영 감각 익힌 젊은 후계들

재계에 따르면 한국 항공업의 선구자로 평가받던 조양호 회장이 지병 악화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장남인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의 총수에 올랐다.

지난해 12월엔 LG그룹 2대 회장으로 25년간 그룹을 이끈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45세이던 1970년에 LG그룹 2대 회장에 취임, 이후 그룹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2018년 6월에는 구자경 전 회장의 장남이자 LG그룹 3대 회장인 구본무 전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당시 40세였던 장남 구광모 상무가 그룹 회장·총수에 오르며 LG의 '4세 경영'이 시작됐다.

올해 1월에는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전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신 전 회장은 1942년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8년 일본 롯데, 67년 한국 롯데를 세웠으며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2013년 건강 악화로 두 아들 간 경영권 문제가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경영 비리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아들 신동빈 회장이 롯데의 경영을 맡으며 회사를 운영중이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6년여간 병상에 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 25일 가족의 곁을 떠났다. 

이 회장은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현재 삼성의 두 기둥인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의 밑거름을 다진 한국 경제의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 동일인으로 지정되면서 공식적인 삼성 총수가 됐다. 아직 '회장' 직함은 달지 않았으나 이 회장 별세로 머지 않아 회장 자리에 오르며 '3세 시대'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재계에서 나온다.

현대차그룹에선 2세 경영인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아들 정의선 회장이 최근 새롭게 현대차 총수로 취임,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올해 82세인 정몽구 회장은 지난 7월 대장게실염으로 입원했다가 현재 건강은 회복했으나 세대교체와 혁신 차원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정의선 회장이 선임되면서 4대 그룹 모두 40·50대인 '젊은 총수' 진용을 갖췄다. 


현재 주요 그룹 중 2세가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경우는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신동빈 회장의 롯데, 김승연 회장의 한화그룹 정도다.

SK 최태원 회장은 1998년 회장에 취임한 창업 2세대 경영인이다. 최근에는 최회장의 아들 인근 씨가 SK E&S 전략기획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씨는 수시 채용 전형으로 SK E&S에 입사해 근무 중이다. 최 씨는 2014년 미국 브라운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고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인턴십을 거쳤다.

SK E&S는 SK그룹의 에너지 계열사로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가상발전소(VPP) 등의 에너지 솔루션 사업을 추진 중이다. 

SK 관계자는 "최 씨가 과장이나 부장이 아닌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만큼 사원급 처우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최 씨가 비상장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해 앞으로 그룹의 친환경 신사업을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의 장녀 윤정(31) 씨는 SK바이오팜 책임매니저로 일하다 지난해 휴직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차녀 민정(29) 씨는 지난해 SK하이닉스에 대리급으로 입사해 근무하고 있다. 


'후계작업 진행'...3세 경영 속도 낸다  

한화그룹의 경우 2세 경영인인 김승연 회장이 현재 두문불출 하고 있지만 내년 2월 그가 경영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폐질환과 당뇨 등을 앓은 김 회장은 미국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국내 2세 경영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경영활동에 나서고 있다. 

신 회장은 최근 귀국했다. 신 회장은 지난 두 달 간 일본에 머물며 일본롯데 경영 현안을 살피고 창업주인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현지 유산 상속 업무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오찬을 겸한 회동도 가졌다.

재계에 따르면 한국 롯데를 본인이 직접 경영하는동안 일본 경영은 장남 유열 씨가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롯데에 비해 규모 면에서 비중이 낮은 일본 롯데 경영에 참여하도록 해 3세 경영을 일찌감치 준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신 씨는 올해 상반기 일본 주식회사 롯데에 입사했다. 직책, 업무 등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사급 이상의 직위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씨는 회장과 부인 시게미쓰 마나미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3남매 중 맏이다.

1986년생으로 2008년 노무라 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다시 노무라에 복귀해 최근까지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했다.

롯데 관계자는 “일본 롯데에 입사한 것은 맞지만 입사 시기, 직책은 확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신 씨의 행보는 신동빈 회장과 유사하다. 일본 롯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3세 경영 수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신 씨가 입사한 일본 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 산하 과자·빙과류 제조업체로 한일 롯데그룹의 모태로 평가받는다. 신 회장 역시 일본 롯데에 합병된 롯데상사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 수업에 들어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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