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피해도 제기되는데···징계는 장관 명의 ‘경고’에 그쳐

외교부 [뉴시스]
외교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미국 주시애틀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는 한 외교관의 발언과 비도덕적인 행태에 대해 논란이 거세다. 주시애틀 총영사관 소속 부영사가 공관 소속 행정직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지속하고, “인간고기가 너무 맛있을 것 같다. 꼭 인육을 먹어보려고 한다” 등의 비상식적인 발언을 했음에도 경미한 징계만 이뤄졌다는 논란이 인 것. 심지어 이 외교관이 공금을 횡령해 개인 컴퓨터를 사려다 그친 정황이 추가 폭로돼 외교부는 얼굴을 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공금 빼돌려 직원에 애플 컴퓨터 사와라지시···발각되면 숨겨라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이 외교부 내부 관계자의 제보를 통해 확보한 내용에 따르면 주시애틀 총영사관 소속 부영사 A씨가 지난 2019년 주시애틀 총영사관으로 부임한 후, 해당 공관 소속 행정직원들에게 욕설과 폭언, 비상식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그러나 A씨는 외교부 장관 명의의 경고 조치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보에 따르면 A씨는 “에이 XXX끼야” 등의 욕설은 일상이었으며, “네가 퇴사하더라도 끝까지 괴롭힐 거다”, “내가 외교부 직원 중 재산 순위로는 30위 안에 든다”, “이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하냐” 등으로 행적직원을 겁박했다.

또 A씨는 “나는 인간고기가 너무 맛있을 것 같다. 꼭 인육을 먹어보려고 한다”, “우리 할머니가 일본인인데 우리 할머니 덕분에 조선인(한국인)들이 빵을 먹고 살 수 있었다” 등의 비상식적인 발언과 행정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신체 접촉도 수차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 제기한 행정직원

퇴직 강요 받고 있다?

주시애틀 총영사관 소속 행정직원들은 지난 2019년 10월 A씨에 관한 비위행위 16건(폭언 및 갑질 외 사문서 위조, 물품단가 조작, 예산 유용, 휴가 통제, 이중장부 지시, 특근매식비 집행서류 허위 작성, 시간외 근무 불인정 등)을 공관 간부에게 신고했다. 이후 공관은 본부에 감사 요청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감사관실 내 감찰담당관실은 제보 내용을 검토, 감찰담당관 등 4명으로 감찰반을 구성했다. 현지 실지감사는 지난해 11월24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됐다. 3개월 후인 올해 1월 외교부 감사관실은 A씨에 대한 폭언 및 부적절 언사와 관련, 공관 내 행정직원 대상으로 외교부 내 메일 시스템을 통해 실명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도 A씨의 폭언 및 부적절 언사, 갑질 등에 대한 진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보고 받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감찰담당관은 “해당 비위사건에 대해 A씨의 B 행정직원에 대한 폭언(2차례) 및 상급자를 지칭해 부적절한 발언(1차례)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그 외의 조롱, 인격비하 발언, 막말, 불쾌감 조성, 마약 옹호 발언 등은 양측 간 주장이 상반되고, 주변인 진술 또는 증빙자료가 없어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해 문제 삼기 곤란하다. 그 결과 해당 A 부영사에 대한 징계는 장관 명의의 경고 조치가 주어졌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지 실지감사 당시 구성된 감찰반 4명이 A씨와 감사담당관실에서 근무하지 않은 인원들로 구성해 감사를 진행했다. 또 감사 당시 공관 직원 대상 서면 문답을 진행, 다수의 문답서에서 A씨의 폭언 및 부적절한 발언 등이 적시돼 있다고 확인했다.

이 의원은 “외교부는 양측 간 주장이 상반되고, 녹취 등 증빙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폭언 2건과 부적절한 발언 1건에 대한 사실 관계만 인정하고 장관 명의 경고 조치라는 경미한 수준의 징계에 그쳤다”면서 “국민권익위 등에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 감찰 이후 공관 최고위 간부로부터 행정직원이 퇴직을 강요당하는 발언을 듣는 등 2차 피해도 제기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안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적절한 대응이 이뤄졌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지난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사항에 대해서 제보가 있었다”면서 “외교부는 제보 내용에 대해 정밀조사를 실시했고, 정밀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부대변인은 피해 행정직원의 2차 피해 주장과 관련, 추가 조사나 감사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어떤 조치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강경화 “리더십 한계 느낀다”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A씨에 대한 추가 폭로가 나왔다. A씨가 공금을 횡령해 개인 컴퓨터를 사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내용이다.

이 의원이 지난 22일 공개한 외교부 감찰담당관 보고사항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교민업체 상호명을 무단으로 사용해 견적서를 만들도록 지시한 뒤 허위 견적서를 본부에 송달해 10만5250달러(약 1억2000만 원)를 받았다.

이 의원이 받은 제보에 따르면 A씨는 견적서에 명시된 가구가 아닌 저렴한 가구를 구매하는 방식을 통해 물품구매 계약 시 자산취득비의 잔액을 편취하려고 시도했다. 또 사적으로 영상 편집용 컴퓨터(약 280만 원) 구입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가구 구입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직원에게 명품을 리뷰하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영상 편집용 컴퓨터(애플사 제품) 구입을 지시했다. 이후 감사가 실시될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추후 발각되면 행정직원의 집에 숨겨두라는 지시까지 했다고 이 의원은 설명했다. 증거인멸 의혹까지 불거진 셈이다.

또 제보자에 따르면 외교부 감찰담당관의 현지 실지감사 한 달 후인 지난해 12월경 외교부 감사관실은 공문으로 횡령 관련 서류를 요청했으나, 이를 준비한 사람은 사건 당사자인 A씨였다.

총영사는 감사관실에서 요청한 완료 사업 관련 서류를 인위적으로 수정 후 가구대행 구매업자에게 재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가구대행 구매업자는 감사관실 측에 A씨가 공금을 유용하려는 정황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이 진술은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감찰담당관은 이 의원실에 “A씨가 영상 편집용 컴퓨터를 구매하려는 정황은 파악했지만 마지막에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고 지시한 이메일을 확인해 문제 삼을 수 없었다”면서 “공금 횡령 관련 지급결의서 등 관련 서류는 모두 확인했고, 제보자들이 영수증 등 관련 증빙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번 사태의 본질은 개인의 일탈을 떠나 외교부 감찰시스템의 하자, 내부 기강해이 및 온정주의 등이 극에 달해 있고, 결국 장관의 리더십과 지휘관리 능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외교통일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을 포함, 잇단 재외공관 성비위‧갑질 사건에 대해 “여러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장관인 제가 리더십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제 리더십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국민들이 그렇게 평가하고, 대통령이 그렇게 평가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결정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성비위‧갑질 근절을 외교부 혁신의 중요한 과제로 3년 넘게 해 온 만큼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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