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번 믿어 봐~” ‘범죄 표적’ 초기 정착 탈북민이 위험하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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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탈북민 대상 범죄 피해는 일반 국민의 5배를 웃돈다. 그중에서도 ‘사기 범죄 피해’는 40배가 넘는다. 사회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과 하나센터, 신변보호담당경찰관 등은 탈북민들이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준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전혀 경험 해보지 못한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뻗어오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이유다. 일요서울은 탈북민 대상 사기 범죄 피해 상황을 들여다봤다. 

사기 당해 빚더미 올라 비정상적 직업 택하기도
경찰, 사기 범죄 예방 교육 및 홍보 꾸준히 진행

#1. 일자리 구하는 것도 어렵고 해서 친구 소개로 화장품 판매 회사에 갔어요. 월 수익이 500~600만 원이라고 하더라고요. 회사의 역사부터 상품 소개까지 하루 종일 설명해 주고 2000만 원어치 물건을 구매하면 한 명 데려올 때마다 300만 원씩 준다고 했어요. 10명이면 3000만 원이니까 혹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물건을 팔기가 쉽지 않잖아요. 나중에 취소 요청하니까 계약서상 수수료 10%를 뗀다고 해서 그 돈 아까워 그냥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2. 한동네에 사는 고향 지인 말을 듣고 따라갔다가 그동안 모은 7000만 원을 가상화폐 사기로 다 날렸어요. 6주, 8주 패키지 코인을 사서 수익이 오르면 만기금을 받는 구조더라고요. 웬만하면 안 하는데 여기 대표가 대통령이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까 사기는 아니라고 확신했죠.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오려고 모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 투자했어요. 나중에 경찰서에서 전화 왔을 땐 돈은 다 사라져 있었어요. 몇 달 동안 못 일어났죠. 

#3.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통장에 돈을 넣어줄 테니 갖고만 있어 달라는 거예요. 한 달에 얼마씩 따로 챙겨준다고도 했어요. 그래서 계좌번호를 알려주니까 바로 큰돈이 들어오더라고요. 한 3개월 정도 돈을 갖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다 빠져나갔어요. 이전에 통장비밀번호랑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줬었는데 어차피 카드나 통장은 제가 갖고 있으니까 별일 있겠나싶었는데 그렇게 된 거죠. 게다가 제 이름으로 대출 2억까지 받았더라고요. 한국 온지 5, 6년 됐는데 신용불량자라 아직 제 이름으로 된 통장도 개설을 못해요. 

탈북민 ‘사기 범죄 피해’ 건수 빈발

앞선 이야기들은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정착 과정 중에서 직접 겪은 사기 범죄 피해 사례다. ‘국내 북한이탈주민의 범죄 실태와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 21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많은 피해 건수는 사기 범죄로 46건(21.4%)이었다. 이어 폭행·상해 피해가 11건(5.1%), 자동차 부품 절도 피해 2건(0.9%), 대인절도·주거침입절도·대인강도·성폭력 피해 각 1건(각 0.46%)으로 분석됐다. 

또한 최근 2년 이내 정착한 탈북민 중 범죄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가장 빈발하는 범죄 피해 유형은 전체 149건 가운데 사기 범죄가 92건(61.8%)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이 당하는 사기 피해의 주된 유형은 ▲다단계 및 피라미드 투자 등의 사업 명목 사기 ▲보이스피싱 ▲개인 간 돈거래 미수금 ▲소비자 사기 피해 순으로 나타났다. 

주 타깃은 정착 1, 2년차 탈북민…예방 노력 필요

탈북민들이 사기 범죄 피해에 취약한 이유는 한국 사회 정착 과정에서 초반에는 스스로 자립하며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고, 자본주의 경제 사정에도 어둡기 때문이다. 특히 일자리구하기가 어렵고 낮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경우일수록 고수익을 보장한다거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것. 이들에게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 대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입국해 일정 기간 조사를 마친 후 입소하는 통일부 소속기관인 ‘하나원’은 3개월간 사회정착 지원을 한다. 이때는 버스 타는 법부터 물건 사는 법, 경제관념 교육 등도 함께 진행한다. 사기 범죄 피해를 당하는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교육도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아무것도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서 듣는 주입식 교육은 받으나 마나라는 불만도 나온다. 

탈북민 최승혁(가명) 씨는 “선생님들이 다단계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알려준다”면서 “피라미드 구조를 알려줘도 당시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니까 열심히 설명해 줘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민 정윤희(가명) 씨는 “전화나 문자에 속지 말라고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모든 게 낯설고 적응이 안 된 상태라 그대로 믿게 된다”면서 “정확한 정보와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당하기가 쉽다. 담당 형사나 하나센터 관리자들도 도움을 주지만 (그들이) 24시간 따라다닐 수 없지 않냐”고 말했다.

특히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정착 초기의 탈북민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탈북민 김세은(가명) 씨는 “피해자를 노리는 사람들은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잘 안다”면서 “‘내가 믿는 언니야. 믿어도 돼’라면서 유혹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데 가봤자 돈을 적게 받을 것을 아니까 속는 셈치고 따라가는 것”이라면서 “돈에 대한 환상에 빠지다 보면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 사기 당해 빚이 많아지면 비정상적으로 돈을 버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최근에는 3만 명 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면서 노하우가 쌓였다”면서 “먼저 온 사람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한테 정보를 공유하고 주변에서 통제를 해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정착금을 갖고 있고 북한에 남겨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돈을 모으는 탈북민은 언제나 사기 범죄의 피해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적절한 홍보나 꾸준한 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남부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특수시책으로 ‘일대일전담Care 찾아가는 범죄예방 교육’을 실시하며 초기 정착 중인 탈북민뿐 아니라 범죄에 취약한 탈북민을 상대로 신변보호관이 직접 찾아가 애로사항 청취 등 소통을 했다”면서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대면으로 실시하지는 못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사기 범죄 예방 교육 및 홍보를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함에 있어서 이 같은 범죄에 대해 잘 몰라서 당하는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 차원의 도움을 주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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