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 먼지!”

봄날을 맞이하여 그동안 사무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늘 눈에 거슬리던 캐비닛을 옮기리라 마음먹고 형만은 동료들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 캐비닛을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 밑에 잔뜩 덮인 먼지를 닦고 쓸고 하는데 뭔가 굴러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금속성의 울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이게 뭐야?” 형만은 얼른 그것을 집어 들어 보았다. 얼핏 볼펜 같아 보이던 그것은 금제 몽블랑 만년필이었다. 형만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주머니에 만년필을 밀어 넣었다. 이게 캐비닛 밑에 굴러 들어가 있을 줄이야. 만년필은 전무님의 것이었는데 이것이 없어졌다고 얼마나 난리가 났던가? 그리고 그 때문에 경리직에 있던 미스 홍은 회사에서 결국 쫓겨나다시피 나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상세히…….” 경리과장 오동식은 식은땀을 훔치며 전무에게 말했다.
“상세하게나마 내가 어젯밤 8시쯤에 여기 들어온 것 자네도 알지?”
“알고말고요.” 오 과장이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리고 자네가 내민 결재 서류에 사인을 했다 이거야” “예, 그렇습니다.” “그때 자네도 내 만년필을 봤잖아.” “예, 금장 몽블랑 만년필이었지요. 그리고 사장님이 찾으셔서 얼른 저와 함께 사장실로 갔습죠.” “그래 그랬지, 근데 그때 내가 만년필을 챙겼나?”

전무가 오 과장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며 말했다. “그, 글쎄요? 저는 그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요. 그게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소리가 났을 텐데요?”
“그럼 여기에 또 누가 있었지 않아?” 오 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려 가면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김대리는 일찍 퇴근했고 유형만 씨도 주진명 씨도 다 없었고 미스 차도 퇴근했고…….”

오 과장의 눈길이 미스 홍에게서 멈췄다. “그래, 미스 홍이 남아 있었구먼?” “예?”
미스 홍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 과장을 바라보았다. “어제, 여기서 금장 만년필 본 적 없어?”
“없는데요?” 미스 홍은 바짝 얼어 있는 눈치였다. “어제 자네는 다시 사무실에 안 들어왔잖아?”

전무가 오 과장에게 물었다. “그랬지요. 전무님하고 같이 바로 퇴근했지요.” 오 과장은 미스 홍을 다시 쳐다보았다. “사무실 정리하고 퇴근했을 거 아니냐?”
“그랬지만 과장님 책상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미스 홍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럼 만년필이 어디로 갔다는 거야?”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봐. 미스 홍. 산동네에 살면서 홀어머니랑 동생들 학비도 댄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미스 홍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형만도 그런 사실은 처음 듣는 것이라 깜짝 놀랐다. 미스 홍은 약간 멍청해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았지만 하고 다니는 것은 늘 깔끔해서 못사는 집안 딸같이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해요.”

미스 홍은 얼굴을 감싸고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이 일로 미스 홍은 어제 사표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만년필을 미스 홍이 훔쳤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만년필이 형만에게 발견된 것이다.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형만은 캐비닛을 옮기는 일도 잊어버리고 생각에 빠졌다.

원래 캐비닛이 있던 자리는 과장의 책상 오른쪽이다. 전무는 과장의 왼쪽에서 사인했다. 만일 과장이 또르르 굴리기만 한다면 만년필은 얼마든지 캐비닛 밑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무가 사장 전화를 받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에 해치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 일이 있은 지 나흘이 지났는데 왜 만년필이 아직 여기에 있을까?
물론 캐니빗을 옮길 시간을 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건 이후 과장은 늘 직원들보다 일찍 퇴근했다.

형만은 다시 캐비닛을 원위치시켰다. 일단은 그렇게 해 놓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과장은 왜 만년필을 훔쳤을까? 그가 만년필이 탐이 나서 훔쳤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미스 홍을 사직시키기 위해서? 그렇다.
그것이 타당한 추리라고 형만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미스 홍을 왜 그렇게 내쫓아야 했을까?

미스 홍이 어떤 경리 부정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육체관계라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니까 앙심으로?
형만은 그렇게 생각하자 속이 부글부글하는 것을 느꼈다. 그 길로 회사로 뛰쳐나가 선배인 시경의 강 형사를 만났다. 강 형사는 이야기를 다 듣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 생각에는 미스 홍이 어떤 원한이 있어서 오 과장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했던 것 같아. 자네가 한 이야기 중에는 오 과장이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 있다고.”

 

퀴즈. 강 형사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답변-5단] 오 과장은 만년필이 떨어졌다면 소리가 났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말로 오 과장은 전무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만년필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미스 홍은 둘이 나간 후에 만년필을 캐비닛 밑으로 굴려 넣은 것이다. 오 과장이 신상 기록철을 통해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알고 손길을 뻗치는 것에 염증을 냈던 때문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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