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
장덕수

젊은 세대에게는 배우 이정재가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으로 나와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유행어를 통해 더 잘 알려진 조선 제7대왕 세조. 조선시대 성공한 두 번째 쿠데타인 계유정란(癸酉靖亂)을 얘기할 때면 수양대군이 최종 결심을 고심할 때 '갑옷'을 들고 와 결행을 응원했던 부인 윤씨, 정희왕후의 일화도 빠지지 않는다.

정희왕후는 조선의 다른 중전에 비해 남편 세조와의 각별한 애정과 정치적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당시로서는 장수(66세)까지 했으니 행복한 듯 보이지만 사실 세조가 각종 질병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봐야했고 두 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불행한 여인이기도 했다.

대군시절부터, 왕이 된 이후에도 세조는 매사를 정희왕후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정희왕후의 식견, 정치적 안목은 대단했던 것 같다. 특히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았던 것 같다. 거사를 고심하는 수양에게 갑옷을 갖다 준 것도 그렇고 세조를 이은 예종이 즉위 1년2개월 만에 죽자 4살짜리 예종 아들보다 세자 때 죽은 큰 아들의 막내아들(12세)에게 왕위를 계승시킨 것도 예리한 정치적 감각의 결과다.

정희왕후는 또 성종이 성인(20세)이 되었을 때 주변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물러나 수렴청정의 한도를 왕의 성인으로 하는 기준을 세웠다. 정희왕후 외에도 명종(문정왕후), 선조(인순왕후), 순조(정순왕후), 헌종(순원왕후), 철종(순원왕후), 고종(신정왕후 조씨) 6명이 수렴청정을 한 기록이 있으나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정희왕후의 선례로 왕이 성인이 되면 수렴청정을 거두었지만 그 후에도 끊임없이 막후권력을 행사하려 했고 이는 조선 말의 외척 세도정치로 이어졌으며 마지막에는 흥선 대원군과 고종의 갈등으로 조선의 종말을 보게 된다. 

권력이란 마약보다 더한 중독성이 있어서 스스로 끊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속성이 있다. 조선이 망한지 110년이 지난 지금 여의도에서도 현대판 수렴청정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퇴진여부를 놓고 시끄럽다.

지난 2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공개발언이 나왔다. 지난 5월27일 취임했으니 5개월 만에 거취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날 총회에서 조경태 의원은 “당이 위기이고, 비대위 지도력이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새 출발이 필요하다”며 ‘조기 전대’ 주장을 폈으며 그 전날에는 김재경 전 의원이 김 위원장 체제에 대해 “반사적 이익에 따른 반짝 선전, 그 이상 아무런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사퇴를 공개 촉구했다.

특히 조경태 의원은 5개월 여전 비대위원회와 김종인 선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비대위가 아니라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고 혁신해 가야 한다는 ‘자강론’을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 5개월 여전에는 당 생존 방법론에 대한 차이였다면 지금 제기되는 김종인 위원장 퇴진론은 김종인 위원장 자신이 빌미를 제공했다. 시쳇말로 약발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국민의힘과 우파진영에서 거론되는 잠재적 대권 후보나 서울. 부산 시장보궐선거 후보들을 디스, 폄하한다. 일일이 다시 소개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리곤 몇몇 외부 인사들을 만나 선문답으로 영입 가능성을 타진한다. 정말 영입하려는 의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안 되면 말고다. 정치력이 의심되는 인사를 전격적으로 영입해 중책을 맡기려 하거나 기준도 없이 해당 행위자를 감싸기도 한다. 우파 통합이나 복당 요구에 대해서는 말도 못 꺼내게 한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그의 행보에 여의도에서는 별의별 소문과 추측이 난무한다. 최근 가장 많이 도는 소문이 ‘김종인 수렴청정’이다. 정치세력이 없는 신인을 내세워 당선시키고 그들을 정치적 자산으로 해 임기 종료로 예정된 4월 이후 공식적인 당 대표에 선임되길 꿈꾼다는 것이다. 그 뒤 당권을 장악, 고분고분한 대선후보를 내세워 대통령만들기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이다.
 
다른 얘기는 ‘내각제 개헌합의설’이다. 거론되는 후보들에 대해 거침없이 디스 작렬 행보를 계속하는 이유는 야권에 마당한 후보가 없으니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내각제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다. 이를 위해 김무성 정진석 등 국민의힘 중진들과 사전 결탁했다거나 심지어 여권의 친문세력과도 소통이 있다는 주장이 떠돈다. 본인이 직접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안 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 같고 하도 허무맹랑한 소리여서 소문 축에도 끼지 못한다.

김종인 위원장은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스스로 거두고 온양으로 내려간 절제와 식견을 배우고 권력욕으로 끝내 아들과 절연하고 나라까지 절단내버린 흥선대원군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괜한 노욕으로 남들이 쳐놓은 어망마저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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