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팔이 그 자식, 대단하더라고. 예까지 쳐들어와서 멍게가 잡아먹은 닭 값을 물어내라고 악바리를 쓰며 깽판을 치는데 이건 아주 미치겠더라니까. 아무리 전쟁터에 가는 몸이지만 남자는 뒤가 깨끗해야 쓰는 법이여. 넌, 먹물이니 그런 일은 없겠지?”

“그런 일은 없슴다. 지난주에 벌써 다 청산했슴다.”

“좋아, 넌 신사여. 이거 받아, 내 작은 성의야. 오음리에 가서 훈련 중 목마르거든 막걸리나 사먹어.”

“고맙습니다, 단결!”

“그럼, 잘 가게. 몸조심하고.”

윤용한 대위의 걱정은 당연한 일이었다. 월남으로 차출되는 병사들은 대다수가 떠나기 전에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주에 출발한 최시열 상병만 해도 그랬다. 녀석은 평소에는 무척 착하고 순진한 병사였다. 그런데 월남으로 차출되자 일주일 전부터 개판을 치기 시작했다. 전쟁터에 죽으러 간다며 마을 이장, 뺑코네 씨암탉을 두 마리나 잡아 처먹고는 훌쩍 떠나 버렸다. 달포 전에 떠난 칠규는 순자네 개까지 잡아먹고 날아 버렸다. 녀석들이 떠나고 나면 반드시 말썽이 뒤를 따랐다. 닭 값이나 개 값을 누가 물어주었겠는가? 그야 물론 중대장인 윤용한 대위가 물어야 했다.

윤용한 대위는 중대 CP 문 앞까지 따라 나와 신동협 병장을 배웅했다. 그는 더블 백을 등에 맨 채 연병장을 가로질러 위병소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신동협 병장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신동협 병장은 대학 재학 중 입대한 먹물이라고 했다. 가정 형편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리고 성품이 무던하고 다른 병사들과 사이도 좋았다.

그러나 신동협 병장은 재수 없게 구만리까지 와서 한마디로 2년간 좆뺑이를 치다가 월남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신동협 병장이 처음 부대에 전입 왔을 때에는 샌님처럼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전방 군대 밥을 먹더니 이제는 제법 쓸 만한 물건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월남으로 차출되다니.

요즘 월남 차출은 시도 때도 없었다. 그 쪽 사정이 워낙 다급해서일까?

신동협 병장이 정문 위병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정문 위병소 안에서 장무수 일병이 고개를 내밀었다. 장무수 일병의 별명이 바로 장몽두리(몽둥이)이었다.

장무수 일병은 입대 전, Y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엘리트였다.

입대 후에 구만리 중대로 배속된 그는 첫 휴가 때 같은 과 출신인, 애인 경희와 함께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태풍을 만나 귀대 날짜에 맞춰 부대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그는 탈영자로 처리가 되었다. 그는 17년 동안 남한산성의 감방에서 보냈다. 그의 나이 38살로 구만리 중대 인사계와 입대 동기였다. 그는 그 동안 탈영과 수감 생활, 그리고 복귀를 계속해서 이젠 그 세계에서는 명물이 된 사람이었다. 남한산성에서는 소장보다 더 편한 생활을 한 대한민국에서는 단 하나뿐인 이등병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무슨 영문인지 제대 5개월을 앞두고 다시 17년 전에 근무했던 원 부대로 찾아온 것이었다. 남한산성에서 수많은 수감자들을 한 손에 움켜잡고 마음대로 요리했던 감방장 정도의 실력자이면 서울 근교의 좋은 부대로 복귀 할 수도 있었을 그가 왜, 이등병 때 근무했던 첫 근무지로 다시 돌아 왔는지 아무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는 군대 생활 25개월을 하는데 17년이나 걸렸다.

신동협 병장이 장무수 일병을 만난 것은 지난여름,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이었다.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다.

“단결, 신 병장님 큰일났심더!”

정문 위병소에 근무 중인 윤종철 상병의 다급한 전화였다.

“뭐야?”

“빨리 좀 와 보이소. 뭐, 저런 문디이 같은 자슥이 다 있는 교? 미치고 환장 하겠심더.”

신동협 병장은 부리나케 위병소로 달려갔다. 아마도 높은 사람들이 순찰을 나온 모양이었다. 지난주에도 주번 사령관 김동구 중위의 불시 순찰에 걸려 사람을 진땀나게 고생시키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난리인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정문 앞에는 위병소의 윤종철 상병과 송문환 일병이 두 손으로 귀를 잡고 신병들처럼 쪼그려 뛰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못난 친구들 같으니. 그러니까 근무 시간 중에는 한 눈을 팔지 말고 보초 잘 서라고 했지.

“이 자식들, 동작 봐라. 낮은 포복 실시!”

뒷짐을 지고 큰소리로 호령을 하고 있는 장교는 얼른 보기에도 화가 몹시 나 있는 것 같았다. 신동협 병장은 등 뒤에서 단결하고 경례를 했다.

“쉬어!”

장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신동협 병장은 장교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아,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장교가 아니라 새카만 이등병의 계급장을 모자에 달고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이마에 깊은 잔주름이 패인 얼굴은 인사계보다도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뭐 이따위가 있어? 새까만 쫄다구가 겁도 없이 근무 중인 위병에게 기합을 줘?”

신동협 병장은 기가 차서 이등병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쪼그려 뛰기를 하고 있는 위병 근무 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야, 근무를 어떻게 서는 거야? 일어나 임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윤종철 상병이 멋쩍게 일어서며 투덜거렸다.

“저 자식이 겁대가리 없이 위병소에 들어서더니 다짜고짜 우리한테 원산 포격을 하래요. 뭐, 자기한테 경례를 안 했다나요. 나 참, 더러버서. 군대 생활 십 팔개월에 이등병한테 기합 받기도 처음일세. “

그는 아직까지도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흥분하고 있었다.

신동협 병장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 있는 늙은 이등병을 바라보았다.

보통 키에 다부진 체격, 시커먼 눈썹과 쌍꺼풀진 도끼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입가의 미소, 윤이 반짝반짝하게 닦아 신은 군화, 신품 군복에 모자에는 이등병 계급장이 달려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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