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건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23일 항미원조(抗美援朝) 70주년 연설에서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 확장을 억제한 전쟁’이라고 규정하자, 8천만 명 넘게 소속된 중국공산당 청년조직까지 북한의 ‘남침’을 부인하고 북한과 한국이 서로 한반도 주권을 주장하다가 벌인 ‘내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중국의 역사왜곡에 발맞추어 북한 선전매체도 6.25를 남침이 아니라 한·미에 의한 ‘북침’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10월 30일 “조선전쟁(6·25 전쟁)이 미제와 이승만 도배들이 도발한 침략 전쟁이라는 것은 그 무엇으로써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의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전쟁이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이 명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해서는 “애초에 미국의 거수기로 전락돼 공정성과 정의를 줴버린(내팽개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침을 ‘남침’으로 오도하여 채택한 부당한 결의”라고 폄훼했다.

중국의 학자들은 6.25를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한다. 미국에 대항해서 조선(북한)을 지원했다는 뜻이다. 7년 전인 2013년 중국 국책연구기관도 “소련의 지지와, 소련의 강요를 받은 중국의 묵인 아래 북한이 군사행동을 개시했다”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이 왜 항미원조 띄우기에 나섰을까. 아마도 격화되는 미·중 갈등과 연관됐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적 사실을 공공연히 부인하는 일은 한·중 간의 신뢰관계를 훼손할 뿐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왜곡에 줄곧 항의하고 경고해온 중국이 북한의 남침을 부인한다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란 국제사회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2021년(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인민의 복지가 완성되는 ‘소강사회(小康社會)’를, 2049년(신중국 100주년)에 세계 초일류국가인 ‘대동사회(大同社會)’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시진핑이 대륙굴기를 통해 중국 중심의 패권체제를 만들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이다.

이를 위해서 중국은 전 세계 국가에 중화주의(中華主義)를 전파하고 있다. 그 실천적 방안들이 세계 각국에 만들어 주는 ‘공자 아카데미’와 중국의 뿌리를 기존 역사보다 더 기원전인 전설시대로 확대하는 ‘역사공정(서북공정, 서남공정, 남부공정, 동북공정)’이다.

역사공정은 한 무제 때부터 영토확산 음모를 감춘 교묘한 소프트파워전략이다. 한 무제는 장건을 보내 서북의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서남으로는 티베트와 사천성, 운남성 일대를 정복했으며, 그 다음 동북으로는 흉노를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고조선을 멸망시켰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고조선·고구려·발해의 우리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교부가 전·현직 일본 정치인·관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규탄한 공식 논평은 10여 차례에 이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 대사를 초치(招致)해 역사왜곡에 대해 엄중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유독 중국에 대해서만 저자세다.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 참전으로 6·25전쟁은 14만 명의 국군 전사자와 22개국 4만 명의 유엔군 전사자를 냈다. 중국이 남침이 아니라고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건 굴종외교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이번 논란에 대해 “시진핑 주석 연설을 ‘역사적 관점’에서 봐 달라”고 했다. 외교부는 더 이상 침묵하면 안 된다. 싱하이밍 대사를 초치하여 재발방지 대책을 추궁해야 한다.

사기(史記) 연구의 대가인 김영수 교수는 “반세기 훨씬 이내에 중국이 대한민국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마천 당대에 한 무제가 실시한 대외정책은 지금 중국의 ‘공정’과 똑같습니다. 한 무제 시절 고조선을 비롯해 많은 주변국가가 멸망하거나 정복당했어요. 2100년이 지난 지금 온전한 독립국가로 남아있는 것은 고조선의 후예인 우리입니다. 그게 동북공정의 이유죠.”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정치 경제 질서와 안보 등 주요 이슈를 이끌어 가는 G2 국가다. 김영수 교수는 중국의 이런 국제위상을 ‘소프트파워전략’으로 정의하고 그 첫 표적이 대한민국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선택과목이 된 역사교육을 조속히 정상화하고, 동북공정 등 중국의 계속되는 역사왜곡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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