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봐, 강 형사. 이런 밤은 애인하고 데이트나 하면서 지내는 거야. 이게 뭔가? 청승맞게 이런 날 드라이브도 아니고….”

추 경감이 담배에 불을 붙이려 바람을 막고 지포 라이터를 철컥거렸다.
“반장님! 이 차에는 담뱃불 정도는 붙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요.” 강 형사가 투덜거렸다.

“누가 뭐라나? 인간적이지 않아서 안 쓸 뿐이라고.”
“그럼 뭐하러 라이터는 갖고 다니십니까? 아예 부싯돌을 갖고 다니시지요.”
“음, 구하지 못해서 안 갖고 다니는 거지. 자네가 구해 줄라 하는가? 구해 주기만 한다면 나를 두고 다닐 용의는 얼마든지….”

추 경감의 농담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강 형사가 황급히 차를 세웠다. 브레이크 음이 길게 어둠 속을 날았다. “이크, 왜 이래?”

“사고가 난 모양입니다.” 강 형사가 안전띠를 풀며 몸을 일으켰다. 추 경감도 차 밖으로 나갔다. 강변도로였지만 여전히 끈적거리는 여름밤이었다. 그리고 그 끈적거림 속에 피비린내가 함께 있었다. 사람들 두셋이 찌그러진 승용차에서 피투성이가 된 운전자와 동승자를 구조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강 형사가 곁에 있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보면 몰라요? 교통사고지요.”

사내는 뜻밖에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피해 차량밖에 안 보이는데…?”
강 형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뺑소니를 친 거지요. 세상인심하고는....”
“혹시 뺑소니 차량을 보셨나요?” “예?”

중년 남자는 그제야 강 형사를 바라보며 아래위로 훑어 내렸다.
“아, 저는 경찰입니다. 지나던 길에….”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도 그냥 지나가다 구경을 하는 것뿐에요.”

사내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다가 얼른 자기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생각대로라면 달려가서 끌어내려야 할 노릇이었지만 강 형사는 참았다.
추 경감은 피해자들을 구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강 형사, 이 사람들 어서 병원으로 후송해”

강 형사는 얼른 핸들을 잡고 떠났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정말 시민 의식이 투철하신 분들이군요.”

추 경감은 일단 그곳에서 인명 구조에 힘쓴 사람들에게 치하했다.
“저는 시경의 추 경감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가해 차량을 보신 분이 없습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하니 쳐다볼 뿐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추 경감은 사고 차량을 한 바퀴 빙 돌아보았다. 분명 트럭 같은 것이 뒤에서 받은 모습으로 차가 찌그러져 있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커브 길로 앞서 가던 승용차가 속도를 줄인 것을 모르고 트럭은 제 속도대로 가다가 사고를 낸 것 같았다. 차들이 드문 야간이라 더욱 안심했던 것 같다.
“글쎄, 저희는 모두 지나가다가 보고 뛰쳐 내린 사람들이라….”

얼굴에 사마귀가 있는 사람이 말했다.
“이 흔적으로 보아 뺑소니 차는 트럭인 것 같습니다. 과속 트럭이었다면 여러분의 차를 추월해서 지나갔을 경우가 큰데 트럭을 보신 분은 없습니까?”
“이 길로 밤이면 트럭들이 많이 다니지요. 몇 대가 지나쳐 간 것 같기는 하지만 번호판 같은 것을 기억할 수는 없어요.”

중절모를 쓰고 있는 초로의 신사가 말했다. “색깔이나 덩치를 기억하시는 분은 없나요? 잘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뺑소니 차를 내버려두는 것은 운전자 여러분이 스스로 죽음이라는 보험에 드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뭐든 기억나는 것은 없습니까?”

추 경감이 다시 한 번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제일 먼저 도착하신 분은 누구시지요?” “그건 접니다.”
사마귀가 나서서 말했다. “그럼 뭔가 보신 게 없으십니까?”
“글쎄요? 제 앞으로 덤프트럭이 한 대 지나가긴 했습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좀 더 생각을 더듬어 보십시오.”
사마귀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주 큰 트럭이었습니다. 5톤 이상의…….”
“번호는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까?” “사실은 아까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이 잘 안 나는군요. 하지만 약간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간의 도움이라뇨?”

추 경감의 얼굴에 당장 화색이 돌았다. “저는 차 번호를 보면서 ‘짓구’를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235 짓고 4 땡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제 앞으로 지나간 덤프트럭은 번호가 578짓고 3, 6으로 가보였습니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까? 가령 서울이라든가 인천이라든가 말입니다.” “아니요, 저는 단지 지을 수 있는가 하는 여부만 살펴보니까요.”
“예, 그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추 경감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길 건너편에서 어느새 병원을 다녀온 강 형사가 클랙슨을 눌렀다.

“잠시 저희와 같이 서로 가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신 사항을 적어야 하니까요?”
사마귀는 머뭇거리는 기색이었지만 곧 추 경감을 따라왔다.
“그런데 당신의 차는 어디 있습니까?”
추 경감이 웃으며 수갑을 꺼냈다. 사마귀는 뺑소니 차의 동료로 사건을 어지럽히기 위해 현장에 남아 있었다.

 

퀴즈. 추 경감은 어떻게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을까요?


[답변-5단] 중장비 트럭은 번호가 여섯 자리다. 01-2345식으로 붙어 있다. 뺑소니 차는 일행 중 한 사람을 내려놓아 사건 수사에 혼선을 일으키려 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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