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뉴시스
국회의사당, 뉴시스

미국 대선이 끝나간다. 선거 전에는 바이든이 압승할 것처럼 보이더니, 개표 초반에는 트럼프의 기적같은 승리가, 개표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면서는 다시 바이든의 당선이 확실해지고 있다. 가히 최강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엉성하고 기형적인 선거제도 때문에 민주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사회는 선거인단 간선제와 종신 대법관 제도처럼 시대와 맞지 않는 제도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와 별개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직을 내려놓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20년 전 부시처럼 연방대법원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도 실패하길 기원한다. 트럼프는 이미 미국사회를 더 끌어내릴 수 없을 만큼 망가뜨렸다. 트럼프 치하에서 미국사회는 보이지 않는 국경을 두고 두 쪽으로 갈라져 버렸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의 리더십마저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지구촌의 깡패처럼 구는 나라로 추락해버렸다.

트럼프는 기후변화가 사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미국 정부의 환경 예산을 대폭 삭감해 버리고,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해버렸다. 코로나19 팬더믹 이후에는 백신을 독점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중국 편을 든다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도 탈퇴서를 제출했다. 전통적 우방인 한국이 미국을 벗겨 먹고 있다면서 방위비분담금을 60배 이상 인상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가 한때는 한국인들에게 ‘트황상’, ‘트력제’로 불렸다. ‘트력제’는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대규모 원군을 보내 조선을 도왔던 만력제에 빗댄 별명이다. ‘트황상’은 온갖 기행 속에서도 신통하게 사안마다 한국 편에 선 것처럼 비춰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애정을 담아 부르는‘트럼프 황제 폐하’의 줄임말이다. 두 단어 모두 생경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일부 한국인들의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2018년 북미회담 이후 한국인들의 여론조사에서 40%를 넘나드는 호감도를 보여줬다. 트럼프 집권 초기에 10%도 안 되던 호감도가 몇 배 뛰어버린 결과다. 일본을 무시하고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이 한국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북미대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애정이 샘솟을 만도 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지지자들은 한창 미북대화 국면에서 ‘트황상 놀이’에 날이 새는 줄 몰랐다. 노벨평화상도 당연히 트럼프 몫이었다.

이제 ‘트황상 놀이’를 끝낼 때가 되었다. 보수 태극기세력이 트럼프 재선을 염원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스스로를 문재인 지지자라거나,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사람들이 트럼프의 재선을 응원하는 것은 분열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트럼프가 되어야 정전협정도 맺고 한반도에 평화가 온다고? 바이든이 되면 남북, 북미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더 이상 트럼프와 같은 자에게 우리 운명을 맡겨 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남북관계, 미북관계를 푸는 트럼프식 탑다운 깜짝쇼는 수명이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트럼프가 만약 재선이 된다면 전혀 다른 방식의 깜짝쇼로 평화로운 한반도를 뒤흔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제 남북관계는 미국이 아니라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 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 좌충우돌 트럼프가 4년 동안 한반도에서 불장난이 아닌 리얼리티쇼를 연출하다 막을 내리는 것에 만족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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