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처벌법’ 발의만 21년째···‘암수 범죄’만 쌓여가

사진은 본문과 관계 없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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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최근 수년간 강력 범죄로 인해 “아이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부모가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의 범죄는 남성에게도 일어나지만,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딸 낳은 게 죄”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그간 여론에서 스토킹 범죄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 처벌법의 부재를 지적해 왔다. 그런데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는 스토킹 범죄. 일요서울은 ‘스토킹 범죄’ 처벌 실태와 관련 사항들을 집중 취재했다. 

서범수 의원 “스토킹, 살인‧강간으로 이어지는 예비 범죄”
‘N번방‧창원식당’ 사건으로 ‘처벌 필요성’ 높아져

지난 5월, 식당 여주인이 남성 손님으로부터 약 10여 년간 지속적인 스토킹 끝에 살해로 이어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 발전한 대표적인 사례로 ‘창원식당 사건’이다. 

여주인은 사망 전날, 경찰에 ‘스토킹 범죄’ 행위를 신고했지만, 가해자는 관련 처벌규정이 없는 관계로 별도의 조치 없이 풀려났다. 이후 범인이 여주인에게 찾아가 보복한 것.

비단 창원식당 사건뿐만 아니라 스토킹 범죄를 당한 피해자들 다수는 확실한 대응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단순 미행 ▲단순 위협 ▲관찰 행위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는 행위 등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상해가 없으면 처벌은 물론 신고해도 단순 취조에 그치기 때문이다. 

2013년에 들어서야 경범죄처벌법 제3조 1항 41호에 ‘지속적 괴롭힘’ 항목이 추가돼 처벌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2019년 신고 건수 5466건 대비 검거율은 11%에 그쳤다. 이마저도 현실적인 처벌 수위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그친다. 

21년간 법안 발의
범죄 공식 집계도 7년뿐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3년 312건이던 스토킹 범죄 처벌 건수는 2019년에 583건으로 증가했다. 범죄 건수를 공식적으로 집계하고 통계분석을 시작한 것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과거 ‘스토킹’이 이성적인 구애 행위로 치부된 배경 탓에 2013년 이전 암수 범죄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에 ‘스토킹 범죄’ 관련 법안 발의 현황은 국회입법예고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20대 국회에서 총 10건, 21대 국회도 올해 3분기까지 8건이다. 21년 동안 ‘스토킹 처벌법’은 꾸준히 발의됐지만, 법안 통과는 물론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유야무야돼 온 것.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으로 활동하는 서범수 의원(울산 울주군)은 지난 5일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스토킹 행위를 ‘별도의 범죄’로 규정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에 발의된 법안은 지난 9월24일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위가 ‘스토킹 범죄 처벌법’. 서범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 법안에 동의한 의원 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무려 86명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으면서 성범죄 관련 스토킹 범죄에도 관심이 이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스토킹, 강력범죄 전조 현상”
‘동물 도살 행위’도 감시 필요

서 의원은 “스토킹이 살인‧강간으로 이어지기 전 발생하는 일종의 ‘예비적 범죄 행위’로 보인다”고 견해를 내놓았다. 

실제로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는 스토킹 범죄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유형으로 진화해 갔다. 사례로는 휴대폰‧노트북 카메라, 초소형카메라 등을 이용해 사생활을 관찰하는 ‘몰카’ 유형과 문자‧전화로 접촉을 시도하는 유형, 개인정보 유출‧도청‧악성 루머 퍼뜨리는 유형 등이다. 모두 ‘사이버 스토킹’에 해당되는 경우다. 

여기서 데이트 폭력, 살인‧강간 등 강력 범죄로 발전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언론이 ‘2018년 살인‧살인 미수 381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스토킹’ 여부를 확인한 결과, 여성이 피해를 본 사건 159건 중 30%인 48건이 스토킹이나 스토킹이 의심되는 범죄를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상반기 집중 조명된 디지털 성범죄 N번방. 거기서 파생된 박사방에서도 실제 살해모의를 위한 스토킹 행위가 포착됐다. 피해자인 교사 A씨는 과거 제자로부터 9년째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동물 도살 행위’도 마찬가지다. 그저 동물학대로만 바라보기 힘든 이유는 그간 길고양이나 반려견을 도살한 후, 실제 살인으로 이어지는 범죄 패턴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결국 ‘스토킹’과 마찬가지로 살인 범죄의 전조 현상에 해당하는 셈인 것. 

이에 서 의원은 대표 발의한 법률안 제2조 1항 ‘라’항목에 반려동물 도살 행위를 스토킹 범죄로 포함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한편, 관련 전문가들은 “현재 발의된 처벌법에는 처벌규정과 보호조치만 있다”고 지적하며 ‘예방법’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특히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성범죄와 살인은 스토킹에서 시작된다”며 3회 이상 스토킹 시 강력 처벌하는 ‘Three Out' 제도를 주장하고 나섰다.

스토킹 범죄 피해 사례들을 겪은 우리 사회는 ‘스토킹 범죄 처벌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많은 시민단체사회에서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만큼 21대 국회에서 법제화해 모든 국민이 ‘스토킹’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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