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4인 “‘생존의 문제’, 투 트랙 법안 마련 절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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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스토킹 범죄 피해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스토킹 범죄가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에 비해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요서울은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전문가 4인과 전화 및 서면 인터뷰를 통해 스토킹 범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그릇된 시각 바꿔야
- 스토킹 범죄는 예방이 중요하다

 

스토킹을 범죄로 안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

윤선영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본부장은 “면식 관계의 스토킹 범죄는 꾸준하게 있었지만 과거에는 이를 범죄보다는 호감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는 여성 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은 “미국의 경우 1990년도 이전에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 사회 내에 스토킹 피해에 대한 심각성이 인식돼 1994년도에 관련 법안들이 만들어졌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도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스토킹과 면식 관계에 의한 스토킹은 완전히 달라 서로 엮을 수도 없는 부분이다. 사귀던 여자들을 찾아가고 복수하고 죽이는 건 심각한 범죄며 피해자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이 교수는 “요즘 이런 사건들이 수면위로 나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스토킹 피해를 당해도 경찰에서 신고도 안 받아줬다”면서 “조혼을 많이 하던 과거에는 이 같은 행동이 가정폭력으로 녹아든 사건들로 나타났겠지만 지금은 결혼을 안 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밖에서 목표물을 쫓는 범죄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앞으로 스토킹은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에 대한 존중 없어…소유물로 생각하는 가해자들

이수정 교수는 “대부분 가해자인 남성은 피해자인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여성이 거절할 수도 있는 존재라고 여기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심리가 깔려 있다”면서 “내 말을 안 들으니 괴롭히고 죽이는 게 결국 목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스토킹 범죄의 상당수가 망상이나 성격 장애의 경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면서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현과 태도를 오히려 자신과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상대방의 확고한 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접촉을 시도하다가 결국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면서 “모든 스토킹 범죄의 발생 원인이 정신적인 문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집착을 표현하는 방식, 지속적인 괴롭힘을 통한 자존감 회복,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등의 이상 심리에서 대부분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법적 조항 부재…경찰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주거 침입이나 직장에 돌발 출연을 하는 등의 스토킹 행위를 하고 난 후에도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고 처벌도 어렵다 보니 ‘이 정도는 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다”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괴롭히기 위한 행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결국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교수는 또 “경찰도 스토킹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부분에는 공감한다”면서 “다만 명확한 법적 조항이 없기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과 상황을 부드럽게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상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일용 교수도 “스토킹 범죄를 경찰이 주관적으로 처벌한다는 의미는 적절한 법률 적용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면서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나 신변보호 조치 등이 되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찰이 무제한 해당 피해자 보호조치만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권 교수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정의가 논의되지 않아 실제 사건이 발생한 경우 형법상의 폭력이나 상해, 경범죄상의 괴롭힘 등으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회 문화적 통념상 피해자가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잘못된 인식도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예방법-처벌법 함께 가야 

한민경 교수는 “2000년 이전에 국회에서 스토킹 범죄 관련 법안을 마련했고 국회의원 절반이 찬성할 정도로 합의가 이뤄진 바 있다. 다만 여성단체 측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다음 법안이 마련돼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본회의까지 올라갔던 법안이 결국 가결되지 못했다”면서 “발의는 꾸준히 돼 왔지만 최소동의인원만 채워 발의하다 보니 크게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예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안이 논의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윤선영 본부장은 “미국은 연방법 차원에서 1994년 여성폭력방지법(VAWA)이 제정됐다. 1995년에는 여성폭력 담당기관(OVW)이 설치되면서 스토킹을 비롯한 여성 폭력 범죄에 대한 법 집행이 강화되고 이를 통해 피해자 지원을 위한 다양한 지원 기관 및 제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게 됐다”면서 “미국은 오래전부터 스토킹 관련 사회적 인식이 있었고 그에 따라 정부부처도 하나하나 대안을 마련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윤 본부장은 “관련법이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예방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스토킹이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고 심각성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홍보를 통한 예방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민의힘 성폭력대책위원회에 참여해 ‘스토킹범죄처벌법’을 발의한 이수정 교수는 “법은 ‘임시조치’에 큰 비중을 둬야 한다”면서 “스토킹 피해를 당할 때 바로 법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임시조치 3회를 위반하면 바로 상습 스토커로 구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렇게 해야 나쁜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면서 “상습 스토커들에 대한 처벌이 분명하게 있느냐가 법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당 경험을 안 해 본 사람들은 공감을 못하고 잘 모른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게 되면 생각보다 법이 쉽게 통과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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