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 부모’ 곳곳 등장···‘구하라법’, 아직도 국회에 맴도는 까닭은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양육은 부모의 의무, 구하라법 통과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죄장으로 참석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양육은 부모의 의무, 구하라법 통과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죄장으로 참석해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일명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회에서 맴돌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된 가운데, 순직 소방관의 생모가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보상금과 연금을 수령하는 등 ‘제2의 구하라 사건’은 지속됐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21대 국회에서 자신의 1호 법안으로 구하라법을 재발의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 등에서는 구하라법에 사용된 용어와 개념이 모호하다며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어떤 이유에서 일까.

민법 개정안, ‘개념표현모호···21대에선 통과될까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법이 담은 규제 내용의 모호함 때문이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6월 재발의한 민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상속인의 결격 사유에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행 민법은 상속 우선순위를 사망자의 자녀 등 직계비속→부모 등 직계존속→형제‧자매 순으로 두고, 살인 등 일부의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이 순서대로 유산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 의원은 발의 이유로 “최근 고(故) 구하라 씨의 경우를 비롯, 양육 의무를 지지 않은 친부모가 유산 상속을 주장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는 등 현행법상 상속권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를 결격 사유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판단 기준 명확치 않아”

법조계는 서 의원의 발의 의도가 국민 정서상 타당하다고 보지만, 민법 개정안의 ‘부양 의무’라는 개념과 ‘현저히 게을리’라는 표현이 모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민법 개정안을 검토한 후 “부양 의무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또 그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유사한 사례는 지속됐다. 지난달 26일에는 한 여성이 지난 4월 위암으로 숨진 딸의 사망 보험금‧퇴직금‧전세금 등 1억5000여만 원을 가져갔는데, 이 여성은 딸이 태어난 뒤 1년여를 제외하고는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민법상 우선순위에 있어 상속에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었다.

세금 부담은 있다

물론 이 같은 경우에도 세금 부담은 진다. 상속증여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상속하거나, 자녀가 부모에게 상속하거나 그 유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매긴다. ‘상속이 개시된 달의 말일로부터 6개월 안’이 납부 기한이다.

세율은 1억 원 이하 10%, 5억 원 이하 20% 10억 원 이하 30%, 30억 원 이하 40%, 30억 원 초과는 50%다. 이 세율은 기준을 초과한 금액에만 적용한다. 예를 들어 상속 유산이 10억1000만 원이면, 10억 원까지를 20%, 1000만 원부터 30%를 적용한다.

그러나 이 세율을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연말정산의 ‘신용카드 등 사용액 소득 공제’처럼 내야 하는 세금의 일부를 깎아주는 공세 제도가 상속세에도 있기 때문. ‘자녀 공제(1인당 5000만 원)’, ‘배우자 공제(5억 원)’ 등 다양한 항목이 있다. 해당 사항이 없는 납세자에게는 ‘일괄 공제’로 5억 원을 깎아준다. 무책임한 부모도 이 공제 제도의 혜택을 똑같이 받을 수 있다.

정부는 현행법상 여러 규제가 어렵다고 판단, 고육지책을 마련했다. 무책임한 부모가 자녀의 사망 보험금이라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수익자를 지정하지 않아 민법상 상속인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는 일이 없도록 보험사의 설명 의무를 강화하기로 한 것.

이 경우, 보험 가입 시 수익자를 누구로든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주인 없는 보험금을 수십 년간 연락을 끊었던 부모가 받아가는 일은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3월 시행 예정인 금융소비자보호법(금융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이러한 내용을 반영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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