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화진지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초겨울 풍경 [사진=신수정 기자]
평화문화진지 옥상 정원에서 바라본 초겨울 풍경 [사진=신수정 기자]
폭파된 건물 잔해와 지나가는 지하철 [사진=신수정 기자]
폭파된 건물 잔해와 지나가는 지하철 [사진=신수정 기자]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서울에는 다양한 명소‧장인, 독특한 지역 상권 등이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상권을 만들고, 지역 특색을 가꿔 온 가게들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하나둘씩 문을 닫는 추세다.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공간과 이를 지켜 온 인물들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지역을 떠나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명소‧인물, 그리고 각 지역의 전문가와 독특한 지역 상권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열 번째로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를 찾았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 안으로 들어서면 거칠고 투박한 건물 외벽이 보인다. 이미 회색빛으로 바란 벽들에서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느껴본다. 초겨울 일몰, 붉은 해를 등지고 바라보는 전차의 한쪽 구석에는 과거 남북전쟁의 그림자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다. 앞으로는 중랑천이 흐르고 뒤에는 도봉산이 드리워진 이곳은 ‘평화문화진지’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 도봉산역에서 하차해 7호선 라인의 1-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입구가 나온다. 일요서울은 지난 5일 이곳을 방문해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현장을 둘러봤다.

1970년 시민아파트 당시 2층으로 연결된 계단 [사진=신수정 기자]
1970년 시민아파트 당시 2층으로 연결된 계단 [사진=신수정 기자]
1970년 시민아파트 당시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가까이에서 찍은 모습 [사진=신수정 기자]
1970년 시민아파트 당시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가까이에서 찍은 모습 [사진=신수정 기자]

‘근현대사’의 자화상
‘배산임수’ 지리적 이점도

평화문화진지는 공간재생사업을 통해 조성된 문화 공간으로 지난 2017년 10월31일에 개관해 매년 약 6만여 명 규모 관람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곳이다. 현재는 예술가들의 공연·전시로, 문화 포럼과 플리마켓 등 시민참여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여실히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시대에는 다락원 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지리적으로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에 해당해 한국의 전통 촌락의 원칙이 엿보인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바람을 막아주는 도봉산과 그 산을 타고 흐르는 생기가 외부로 흐르는 것을 중랑천이 막아주는 구조다. 또한 음(陰)에 해당하는 산의 기운과 양(陽)에 해당하는 물의 기운이 서로 합해지는 지역으로 산천의 생기를 북돋아 만물이 잘 자라나는 기운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나랏일로 여행하는 관리들이 쉬어갈 수 있는 숙박시설들이 자리 잡게 됐다. 

과거 1579년, 율곡 이이가 도봉서원이 경립된 경위를 쓴 기문 「도봉서원기(道峯書院記)」에서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는 평화문화진지 일대를 두고 “성곽을 등지고 있는 명산이라고 하면 꼭 도봉산과 삼각산을 말하게 되는데 그 계곡과 수석(水石)이 아름답기로는 영국동(寧國洞, 도봉)과 중흥동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후 1970년에는 대전차방호시설이자 도봉구 최초의 시민아파트가 설립됐다. 아파트는 1층은 군사시설, 3층은 군인과 그의 가족들의 주거 공간, 4~5층은 일반 시민의 주거공간으로 활용하는 특이한 구조를 지녔다. 

군사시설과 거주공간을 한곳에 모아둔 계기는 1968년 북한 무장간첩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한 ‘강신조 사건’이 시발점이다. 당시 도봉구는 서울의 최북단으로 전차가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북한이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가 될 수 있어 수도 방위 강화를 위한 ‘서울 요새화 계획’의 일환으로 군사시설을 짓게 됐다. 

동시에 산업이 발전하면서 서울에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고 인구밀집도가 높아졌다. 부족했던 주거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시설 위에 거주공간을 짓게 된 것. 그야말로 ‘남북대립’과 ‘도시산업화’의 상징으로 자리하게 됐다.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시민아파트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노후건물 안전진단 E등급(불량)을 받고 2004년 철거됐다. E등급은 심각한 결함으로 시설물 안전에 위험이 있어 즉각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이나 개축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철거 이후에는 1층의 군사시설만 유지한 채 10년간 방치해 “도시 미관을 저해한다”며 흉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후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은 지난 2017년이다. 그러면서 ‘평화문화진지’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지난 2016년 12월 서울시와 도봉구청, 도봉구 관할 군부대 ‘60보병사단’이 협약을 체결하면서 공간재생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이제 예술인들에게는 작업실로 시민들에게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2020년대의 역사를 써 가고 있다.

옛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 [사진=신수정 기자]
옛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 [사진=신수정 기자]
상설전시관 내부 [사진=신수정 기자]
상설전시관 내부 [사진=신수정 기자]
1970년 소총 저격공간 [사진=신수정 기자]
1970년 소총 저격공간 [사진=신수정 기자]

역사가 담긴 ‘출사지’
옥상정원‧전망대서 “경관 만끽”

일정한 간격으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벽들과 단절된 계단. 어떤 이들은 남은 구조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놓여 있는 좌석을 휴식 공간으로 쓰기도 했다. 특별한 인테리어가 없어도 철거 이후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 때문에 가을철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벽들을 지나치다 보면 모퉁이. 계단을 걸어 2층에 오르면 옥상이 나온다. 11월 초,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바람을 맞는 옥상에는 갈대를 비롯해 적재적소에 꾸려진 조경이 가을의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특히 해 질 녘 노을을 배경으로 도봉산역과 도봉산 쪽을 바라보면 장엄한 사진전람회에 와 있는 듯하다. 

옥상 정원의 끝에는 평화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나온다. 전망대에서는 도봉산역에서부터 평화문화진지와 우편 중랑천, 수락산까지 둘러싼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1층 공방들 사이로 ‘진지한 책방’이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 과거 역사의 흔적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 벽 한쪽에는 1970년대 소총 저격공간으로 쓰인 틈새와 소총 받침대가 남아 있다. 북침을 막기 위해 폭파할 지점을 표시해 둔 작업 종이도 함께 걸려있다. 

지난주 서울창포원에 이어 바로 옆 평화문화진지를 둘러봤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역사와 예술을 한 번에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명소 ‘평화문화진지’에서의 추억으로 코로나블루를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평화문화진지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6-5(마들로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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