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환경 사각지대 실질적인 개선 가능할까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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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최근 택배 노동자 관련 인명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올해만 총 15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함께 일한 택배 회사들은 후속 대책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택배 노동자를 비롯해 최근 플랫폼 노동, 초단기 노동, 긱 이코노미 등 신(新)노동 형태의 일자리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다수가 ‘특수고용직 노동자’인 이들의 근로 환경은 전태일 50주기를 맞는 올해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일요서울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문제를 심층 추적 해본다. 

 

- 특고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부담
- 구조적 문제 방치…처우 개선 필요


“저 집에 가면 새벽 5시예요. 밥 먹고 씻고 한숨도 못 자고 나와서 바로 터미널 가면 또 물건정리 해야 해요. 형들이 돈 벌라고 하는 건 알겠는데 저 너무 힘들어요.…(생략)”

지난달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소속 택배기사 김모씨(36)가 사망 직전 동료에게 보낸 문자의 일부다. 김 씨는 성수기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한 탓에 새벽까지 배송을 해야만 했다.

올해 들어 택배노동자 15명이 사망했다. CJ대한통운 택배간선차 운전기사 강모씨(39), 쿠팡 물류센터 택배포장 업무담당 장모씨(27), 한진택배 대전터미널 화물운송기사 김모씨(58),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모씨(48) 등 사망한 이들의 연령층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젊은 나이였고 평소 아무런 지병도 없었던 청년들까지 죽어나가고 있다”면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한 명백한 과로사”라고 주장했다. 

특수고용직(이하 특고)인 택배노동자, 퀵 서비스기사, 대리운전기사, 보험설계사 등은 산업재해보험(이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실제 가입률은 저조하다. 사업주들이 보험료 부담을 꺼리거나 입직 미신고 시에도 처벌이 가볍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법상 특고 노동자와 계약한 사업주는 노무를 제공 받은 날을 기준으로 내달 15일까지 입직신고(일을 시작한다는 신고)를 해야 한다. 

다만 입직신고를 하게 되면 자동으로 산재보험에 가입, 보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는 입직신고를 안 해 주려고 하거나 입직신고는 해 주더라도 대필 등 강제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하게 해서 보험료 부담을 피하려는 꼼수를 쓴다. 산재 적용 제외신청은 산재 적용 대상인 특고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보험 가입을 거부할 경우 사업주가 이를 허용하는 것이다. 산재보험 원칙은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지만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고 노동자는 사업주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한다. 정부는 특고 노동자들이 사업주와 보험료를 나눠 내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산재 적용 제외신청 제도라는 예외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특고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었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이들에게 산재보험 적용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라는 공감대가 의원들 사이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다만 고용노동부도 ‘전속성’ 기준에 막혀 특고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속성은 업무상 주로 하나의 사업체에 속한 정도를 말한다. 산재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선 소득의 절반 이상이 하나의 사업장에서 발생해야 한다.

특고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 필요성 절감

특고 노동자는 법적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개인 사업자기 때문에 소득관리나 업무방식 면에서 일반 근로자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불완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월28일 노사정 협약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특성을 고려해 노사 및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전제로 ‘특고 종사자 고용보험’ 입법을 추진한 바 있다.

문제는 특고 노동자의 범위가 넓고 성격이 다양해 고용보험 틀에 일률적으로 넣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회사에 직접 고용돼 있지 않고 위탁·도급 계약을 맺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국내 최대 배달앱인 ‘배달의 민족’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배민 라이더스’의 경우는 직접 고용된 ‘라이더’가 80명 정도다. 나머지 2300여 명은 원하는 시간대에 일하는 특고 노동자고, 1만4000여 명은 아르바이트 형식인 배민 커넥트다.

‘전 국민 고용보험’ 실현 가능?

문재인 정부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해 ‘전 국민 고용보험’을 구축해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6일 “내년 상반기에 추진될 예정인 특고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은 전 국민 고용보험 성공의 중요한 열쇠”라면서 “특고는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 형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우선 사업주가 특정되고 보호 필요성이 높은 특고와 실질적 사각지대로 지적되는 일용근로자를 시작으로 소득정보 인프라를 정비하겠다”면서 “고용보험 적용 대상자가 될 특고·자영업자 등은 업종별 고용 형태가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다양한 대상자를 고용보험제도 안으로 안정적으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수용성을 제고할 수 있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지난 5일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가 발표한 ‘고용노동부 2021년 예산안 분석 의견서’에 따르면 정작 2021년도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사업 예산과 지원 규모는 대폭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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