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정치 방정식’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한 바가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회의석상에서 알려 하면 안 돼, 회의석상에서의 대통령 발언을 의중으로 알고 행동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수 있거든…”
이 말은 대통령의 치인(治人)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즉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간파하는 자만이 오랫동안 대통령 곁에 머물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하면 옳다고 하겠다.
이와 같이 대통령의 의중을 적절하게 파악하는 일은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고 모종의 역할을 수행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전달을 통해 지시를 수행하게 된다. 측근과 비 측근의 의견 전달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지인(측근)들을 가까이 불러 개인적으로 지시를 하거나 속내를 털어놓는 일들을 자주 했다. 때문에 대통령의 특별한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은 늘 변방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역대 대통령 중 윤보선과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야당 출신인데다가 모두가 똑같이 가신정치를 통해 ‘안방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안방정치’는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 정치행위를 한다는 의미로서 세 사람 모두 당시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때문에 자택에서 정치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안방정치’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주변 환경에 따른 선택이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안국동에 99칸에 달하는 고택을 소유한 부호였다. 자유당 정권 시절,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맞서 수시로 안국동으로 지인들을 불러들여 시국에 대한 논의를 했다. 당시 YS와 DJ도 윤보선씨를 찾아 정치현안에 대한 논의를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국동이 실질적인 민주당사 역할을 했던 셈이다.

윤보선 ‘안방정치’ 원조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상도동계라는 정치적 인맥을 형성했다. 이들을 ‘민주계’라고도 불렀지만, 한편에선 ‘상도동계’라고 부를 만큼 거의 모든 정치적 결정을 YS자택에서 했다.
이런 이유로 역대 군사정권은 YS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세세한 물품까지도 검열했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YS가 연금 중이던 전두환 정권의 82년 5월. 당시 11대 국회 민한당 의원이었던 황명수는 생선회를 즐겨먹던 YS가 생각났다. ‘연금 중이라 그 좋아하는 생선회도 못 먹겠구나’라고 생각한 황명수는 일식집에서 생선회 5인분을 주문한 뒤 상도동에 전화를 걸어 “점심을 먹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상도동 집 앞에서 난리가 났다. 지키고 있던 경찰이 “그게 뭐냐, 혹 무슨 비밀문서 아니냐”며 생선회를 들쑤셔 놨다. 이 때문에 YS는 생선회를 먹지도 못했다.
그리고 황명수는 안기부로 끌려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신 왜 다 끝난 김영삼이와 접촉을 하는 거요, 당신이 자꾸 그러면 김영삼이 용기를 가지고 쓸데없는 짓(정치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이요.”
이처럼 ‘안방정치’는 집 주인의 정치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였다.
삼양동의 이민우 당시 신민당 총재도 ‘안방정치’를 하며 YS와 세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승자는 YS였지만 말이다.
기자들도 집 현관 앞에 놓인 신발 수를 가지고 이 사람의 정치적인 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했다고 하니, ‘안방정치’에 있어서 사람들의 신발 수는 정치적 ‘역량’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이기도 했다.
상도동계로 불리며 YS와 함께 중요한 정책이나 정치적 결정을 해 왔던 인물로는 고(故) 김동영, 최형우, 김덕룡, 서석재, 김명윤, 황명수 등이 있다. 이들은 문민정권 창출 이후에도 상도동에서 청와대로 자리만 옮겼을 뿐 YS와 함께 중요한 결정을 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윤보선이나 YS보다 ‘안방정치’의 시기를 장기간 이끈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윤보선이나 YS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탄압과 연금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질적인 면에서 보면 ‘안방정치’의 대가는 단연 DJ라고 할 수 있다.
DJ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까지 YS와 함께 동교동계라는 가신체제를 만들어 늘 YS와 경쟁관계를 이어나갔다.
동교동 ‘안방정치’의 주요 정객은 권노갑, 김옥두, 한화갑, 정균환, 최재승 등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모두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사라진 지금 유일하게 동교동계에서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 상도동계에서는 김덕룡의원이 현역으로 남아 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으나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태다.
오죽하면 한 대표는 “지금 정치판에선 동교동계의 종자까지도 다 말라 버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YS와 DJ의 ‘안방정치’는 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문제점이 드러났다. 자택에서 청와대로 옮겼을 뿐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곳엔 늘 이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결국 ‘안방정치’의 든든한 기초가 이 같은 문제점을 낳은 것이다.

전두환 요정서 쿠데타 모의
위에서 언급한 대통령과는 달리 군 출신 대통령들은 ‘요정정치’를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특별한 지시를 전달하거나 여론의 추이를 듣기 위해서 ‘요정’을 활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뒤편에 위치한 요정을 자주 이용했다. 박 정권 시절, 요정정치를 통해서 대통령의 입과 귀 역할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 김형욱과 이후락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민심과는 상관없이 모든 기준을 대통령에게 맞춰서 보고했다.
김형욱과 이후락은 대통령과 독대를 위해 요정에 도착한 여야 의원들을 미리 만나 대통령에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해야 될 말들을 따로 알려주고 이에 따르지 않을 시에는 비리를 캐내서 협박을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요정정치’의 의도를 완전히 오도한 인물들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다른 군 출신 대통령보다도 요정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항간에서는 ‘청와대 담을 넘어 요정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니 전 대통령의 요정 사랑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요정은 현재는 일반인에게 개방돼 찻집과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는 삼청각으로 현재의 규모로 봤을 때 당시에는 대통령의 전용 술집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는 평가가 나올만한 곳이다.
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한 이후 삼청각에서 대일관계 개선 및 대일차관확보를 위한 비밀회의를 열기도 했다.
12·12 당일에도 이곳으로 주요지휘관들을 초대해 자신들의 쿠데타 모의를 모르게 유도했다. 정작 본인은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참석하지 않았다.
전 대통령의 ‘요정정치’는 현실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요정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성은(?)을 입어 공천을 쉽게 딸 수 있었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술을 즐기기는 했지만 필요시에만 요정을 찾았다. 요정을 정치무대로 삼은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도 ‘독대정치’ 시작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반에 ‘독대정치’를 지양하고 비서관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회의를 통해 모든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복잡한 정치상황과 잘 풀리지 않는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중단을 천명했던 ‘독대정치’를 암암리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국회주변의 전언이다.
노 대통령의 독대 파트너로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노 대통령이 유 장관과 독대를 하고 나면 ‘말썽(?)’이 생겨, 청와대 주변에서 유 장관에게 자중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독대정치’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사정책의 실패에 따른 부담감 가중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최근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낙마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임명권 행사가 무위로 끝나자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인사에 대한 문제만큼은 수석실의 참모들보다 외부의 특별한 인사들로부터 조언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또한 노사모 회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답답한 현실 정치의 속내를 드러내며 현정치권을 비판한 일 또한 대통령이 뭔가에 쫓겨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년밖에 남지 않은 기간 내에 뭔가 이뤄야겠다는 초조감이 더해진다면 앞으로도 노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독대정치’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정치권의 분석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통합사수파와 통합신당파로 나눠진 여당의 답답한 정치현실 속에서 노 대통령이 과연 ‘독대 정치’로 정국전환의 호기를 만들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언론인 김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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