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민심파악

최근 청와대는 잇달아 터지는 ‘인사 파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논문표절 시비로 야당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퇴진 압력을 받았던 김병준 전부총리를 내보냈다. 대신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려 했지만 이 역시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그런 와중에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에 대한 ‘보복인사’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8일 취임 6개월 만에 전격 경질된 유 전차관이 이번 인사가 자신의 재임 중 청와대의 잇단 낙하산 인사 청탁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해 버린 것이다. 청와대는 유 전차관의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교체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번 인사 파동 과정에서는 ‘대통령과 민심’ 논란이 일었다. 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에만 열중하다 보니 인기가 떨어지고 각종 선거에서도 참패를 당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거듭된 ‘코드인사’ 논란
반면 청와대는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언론을 겨냥, “민심의 정치적 이용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글을 통해 “민심이라는 우산 밑에서 두루뭉실하게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먼저 “‘문재인은 안 된다. 민심이 반대하기 때문에’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대통령과 가까운 참모를 또 기용하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논리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그동안 수없이 덧씌워온 ‘코드인사’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며 ‘문재인 비토론’을 제기했던 여당을 비판했다.
특히 청와대는 “민심과 대통령의 생각 사이에는 충분한 교집합이 있다”고 주장했다. ‘코드인사’는 도덕성도, 역량도 안 되는 부실한 인사를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중용할 때 문제가 되는데, 문 전 수석에 대해서는 민심도 그렇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구중궁궐’ 청와대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만 구사한다는 지적은 인사 문제 외에도 많다. 농민 등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행하려 한다든지, 역대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원로들의 조직적 반발도 일축하면서 전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 하는 것도 ‘민심 이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구중궁궐에 갇혀 민심을 모른다는 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대통령은 여러 채널을 통해 민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노 대통령은 민심의 흐름을 몰라서가 아니고 일반적인 민심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신념에 따라 간혹 ‘마이 웨이’를 선택하곤 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즉, 대통령이 지금 당장의 민심에 따른 국정운영을 하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보면 당장의 민심을 거스를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어떤 방식을 통해 저잣거리에 흐르는 민심을 파악하고, 그 민심의 성격을 분석해 국정운영에 활용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일전에 어느 비공식 석상에서 청와대 생활을 설명하며 “결국 대통령은 연금생활이다. 국내에서나 바깥에서나 그렇다”고 토로한 바 있다. 물리적으로 외부와 차단되는 청와대에 갇혀 생활하는 답답함을 내비친 말이다. 그렇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참모들로부터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3년반 동안 변복을 하고 민간에 암행시찰을 나간 적은 한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규범·규칙을 아주 잘 지키는 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경호실이 겪을 불편을 생각해서도 그런 시도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시장판·공사판 찾은 박정희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 평민복으로 갈아 입고 경호원 한, 두 사람만 대동한 채 허름한 선술집을 찾아 다른 좌석에서 떠드는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곤했다고 당시 청와대 사람들은 전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찾은 곳은 시장판, 공사판, 역전 등 광범위했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부터는 그런 일은 없었다. 특히 1986년에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총리가 경호원 없이 홀로 극장에 갔다가 정신병자의 저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은 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의 변복 외출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대신 참모들과의 잦은 회의와 토론을 통해 민심을 파악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하루의 일정을 챙기고 정국동향을 점검하는 아침 관저회의 멤버인 ‘386 참모’들과는 격의없는 대화를 한다. 이를 통해 바닥 민심을 읽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상세히 보는 것도 민심 동향의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거의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참모들이 다른 언론의 보도 내용과 함께 중요기사를 스크랩해 주는 정도가 전부다.
반면에,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조선·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성향의 신문들을 꼼꼼히 읽고 중요한 사안을 노 대통령에게 이야기해 주곤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DJ민심파악엔 탁월 민심 존중엔 실패
전임인 김대중 대통령의 언론 탐독은 유명하다. 공보수석실 참모들이 정리해 주는 언론동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신문을 읽고 방송 뉴스를 볼 뿐만 아니라 토론 프로그램도 자주 시청하면서 ‘여론’을 살폈다.
DJ는 재임시절 오랜 야당생활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던 각계 인사들과 청와대에서 ‘비공식 식사 모임’을 갖기를 즐겼는데, 이 자리 역시 훌륭한 민심 탐색의 자리였다.
그러나 DJ도 민심을 파악하는 데만 뛰어났을 뿐 민심을 존중하는 데는 소홀했다.
1999년 5월 이른바 ‘옷로비’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로부터 고급 옷을 받았던 사건이다.
고위층 가정의 부도덕한 행동이 민심을 자극해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당시 DJ는 이를 두고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했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발언이었다. 그러자 당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DJ는 임기 전반에 맞은 이 사건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아 이후 국정운영도 순탄치 않았다.


YS, 전화로 민심 파악 즐겨
김영삼 전대통령은 정보기관의 보고를 통해 민심동향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매일 아침 그의 책상에는 안기부와 경찰, 군의 정보기관에서 작성한 ‘일일 동향보고서’가 올라 와 있었다. YS는 그것을 세밀하게 살피며 여론의 움직임을 짚어 나갔다. 물론, 그런 식의 보고가 정확한 민심을 전할리 없었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YS가 사용한 방법이 ‘전화를 통하 민심 파악’이었다. YS는 청와대로 들어갈 때 야당 시절 교분을 쌓았던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적은 두터운 노트 한 권을 챙겨 갔다. 민감한 국정현안이 생길 때마다 YS는 일과 후에 관저에서 김기수 수행실장과 함께 노트를 뒤적이며 전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감읍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YS 역시 ‘민심 따로, 국정운영 따로’였음이 재임 기간과 퇴임 후 드러난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인됐다.
군 출신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은 문민 대통령들 보다 더 폐쇄적인 청와대 생활을 했을 것 같지만 과거 청와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변복 암행시찰’이나 전두환 전대통령의 ‘면담 민심 파악’이 유명하다. 특히 전 전대통령은 귄위적 이미지와 달리 재임 시절 자신과의 직접 면담을 요청하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있으면 그 지위가 아무리 낮더라도 가급적 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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