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 일부 젊은 참모들이 술렁거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실 공식 회의기구와는 별도로 아침마다 ‘386’ 핵심 참모들을 불러 약식 모임을 갖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다수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들도 실세 참모들의 ‘아침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는 후문이다. 아침모임 멤버에 끼이지 못한 비서관들로서는 소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이 모임은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의 집무실로 출근하기 직전인 아침 8시30분에 관저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참석자는 청와대 비서실 내 386세대 맏형격인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을 위시해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 천호선 의전비서관, 문용욱 부속실장 등이다. 하나 같이 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간주되는 인물들이다.

사실 청와대 비서실 직원이라고 해서 권한과 역할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직급이 같더라도 개인별로 무게가 다르다. 때로는 대통령과의 친소 관계가 돈독한 하급자가 상급자보다 더 큰 파워를 과시하기도 한다. 청와대 실세 참모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청와대 비서실의 정원은 531명이다. 원래 499명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기능 및 역할을 담당하는 통일외교안보정책실(안보실)을 최근 청와대 비서실 내에 신설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청와대 비서실은 그동안 장관급인 비서실장-정책실장 ‘2실장 체제’에서 비서실장-정책실장-안보실장 ‘3실장 체제’로 전환됐다. 이와 함께 국가안보보좌관·외교보좌관 자리가 폐지되고 대신 안보실 내 안보정책수석 1개 자리가 신설됨에 따라 청와대 수석·보좌관 수는 기존의 11명에서 10명이 됐다. 실장은 장관급, 수석비서관·보좌관은 차관급이다. 1~2급 별정직인 비서관은 40명선이다.

주목받는 젊은 비서관들
그러나 이들 참모들의 역할과 위상은 꼭 직위에 비례하지 않는다. 이번에 확인된 아침모임 참석자들은 모두 비서관급이다. 청와대에는 이들의 상급자인 비서실장과 각 수석비서관, 보좌관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아침모임 참석자들은 상급자들을 제치고 대통령에게 현안을 직보하고, 직접 지침을 하달받는다. 아침모임 참석자들이 대부분 수석비서관실이나 보좌관실 소속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비서실장 직속이긴 하지만 비서관급인 이들만의 별도 정례 모임은 그 자체만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이들은 매일 일과 시작에 앞서 전날의 여론 동향 등을 파악하고 그날 일정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대통령과 매일 얼굴을 맞대는 이들 386 참모들이 사실상 청와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개연성이다.물론, 비서실장도 대통령에게 거의 매일 현안을 보고한다. 또 수석비서관이나 보좌관들도 소관 현안이 있으면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이런 보고는 집무실에서 이뤄지는 의례적인 절차다. 대신 386 참모들의 아침 보고는 비공식적인 것으로, 보다 격의없이 현안에 대한 대응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얼마전 노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발탁을 강행하고, 뒤에 윤태영 비서관이 이를 ‘차세대 지도자 육성’ 차원이라고 설명한 것이 바로 이 아침모임의 ‘작품’이란 관측도 있다.노 대통령과 이들 386 비서관들의 아침 회동이 시작된 것은 2~3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연초 신년연설 등을 통해 ‘양극화 해소’를 화두로 던진 뒤 이에 대한 언론 보도 등 여론 흐름을 파악하면서 모임이 정례화됐다고 한다.그러나 노 대통령과 386 핵심 참모들의 별도 만남은 그 이전에도 비정기적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호철 실장과 윤태영·천호선 비서관 등은 수시로 노 대통령과 독대 또는 집단 면담을 갖고 민감한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곤 했다.

DJ는 분할통치의 선수
참여정부 청와대에는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일일상황점검회의’란 것이 있어 여기서 그날그날의 주요 현안이 다뤄진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일일상황점검회의에서 큰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거의 없고, 노 대통령과 386 핵심 측근들의 ‘구수회의’ 결과에 좌우된다는 설이 청와대내에선 무성하다.실세 참모들이 득세하는 현상은 이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통적인 현상은 실세 참모들은 한결같이 정치권 출신이었다는 점이다.청와대 비서실의 인적 구성은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신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함께 들어오는 참모들이다. 이들은 신임 대통령과 정치권에서 고락을 같이 했던 인물이다. 청와대에선 주로 정무와 홍보 파트에서 일을 한다. 둘째는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경제와 외교안보 파트 같은 전문 분야에 포진해 있다. 세 번째는 청와대 장기 근무자들이다. 그다지 많은 인원은 아니고, 주로 총무나 의전 파트에 몰려 있다.이 가운데 당연히 실세는 정치권 출신이다.

특히 정치권 출신 가운데서도 대통령과의 친소 정도에 따라 힘은 달라진다. 참여정부 아침모임의 참석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생활을 하면서 어려울 때 동고동락했던 인물들이다.비록 아침모임 참석자는 아니지만 김종민·정태호·양정철·김만수·최인호씨 등 80년대 학생 운동권을 주도하다가 ‘정치인 노무현’ 캠프에 합류했던 386 참모들이 청와대를 움직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에서 초기 실세는 당연히 동교동계 출신이었다. 그러나 동교동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이런저런 말썽을 일으키자 DJ는 구 여권 출신인 김중권 비서실장에게 많은 힘을 실어줌으로써 동교동계 참모들을 견제토록 했다.이에 따라 동교동계 비서관이나 행정관급 참모들이 김중권 실장에게 ‘투항’해 각종 정보를 직보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그러자 DJ는 동교동계도 아니고 구 여권도 아닌 박지원씨를 중용하면서 세력의 균형추를 맞추도록 했다.이후 국민의 정부 청와대 비서실은 동교동계-구여권-박지원계 참모들이 서로 물고 물리며 권력을 나눠 가졌다.

그런데 DJ 정부 시절에도 ‘아침 모임’이 있었던 것으로 당시 청와대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의 아침모임은 지금과 달리 비서실장, 정무수석, 공보수석(대변인) 등 공식 라인이 참석 대상이었다고 한다.앞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청와대에서 실세 참모들은 당연히 상도동계 출신들이었다. 상도동계 참모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과시했는지는 장학로 제1 부속실장 수뢰 사건 등 당시 잇달아 발생한 권력형 비리에 청와대의 높고 낮은 참모들이 줄줄이 연루된 데서 알 수 있다.문민정부 시절 청와대의 실세 참모그룹은 아침 조깅 멤버들이었다. YS는 청와대에서도 조깅을 즐겼고, 이 때 매일 아침 운동을 함께한 참모들이 실세로 대접 받았다. 이원종 정무수석, 김기수 수행실장 등이었다.

박정희도 실세참모 수시 바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공식적인 비서실보다는 사적인 비서모임을 두고 국정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윤보선 대통령 시절엔 내각책임제에 따라 실권이 장면 총리에게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비서실은 항상 조용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은 1명의 비서실장과 3명의 비서관만 두어 비서실 사상 가장 단출했기에 참모들의 위세를 논할 것까지도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르러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파워 게임이 일어났다. 측근들을 분할통치하면서 적절히 파워게임을 시켰던 그 때 청와대의 실세 참모 그룹은 수시로 바뀌었다.전두환 대통령 때의 청와대 비서실은 신군부 출신들이 장악했고,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3당통합의 여파로 청와대 비서실이 YS가 버틴 여당(민자당)에 비해 세력이 약해지는 현상이 초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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