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노무현 대통령의 종교가 천주교였나?” 최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송기인 신부의 프로필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송 신부에게서 영세를 받았다’는 내용을 본 일부 청와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 대통령은 일선 정치인 시절부터 종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스스로 종교난에 ‘무교’로 기록했기 때문이다.결론부터 말하면, 노 대통령은 분명히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지금은 ‘냉담상태’(장기간 판공성사를 보지 않는 등 사실상 신앙을 포기한 상태)에 있다. 즉, 자신의 길을 이끌어 준 정신적 스승인 송 신부에게 이끌려 영세를 받기는 했지만 이후 신앙생활은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 가운데는 이처럼 종교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특정 종파의 지지만으론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종교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 부부가 서로 종교를 달리하면서 ‘역할분담’을 하기도 한다. 물론, 확고한 종교적 신념으로 험난한 정치판을 헤쳐 나간 인물도 없지는 않다. 역대 대통령들의 종교세계로 들어가 본다.16대 대통령선거전이 서서히 막을 올리던 지난 2002년 6월20일 오후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노 후보가 먼저 신앙 문제를 화제로 꺼냈다.노 후보는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아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얻었다”고 소개하고 “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도 못하고 성당도 못 나가 프로필 쓸 때 종교란에 ‘무교’로 쓴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김 추기경은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이에 노 후보는 고개를 떨군 채 “희미하게 믿는다”고 힘없이 말했다. 김 추기경이 “어려울 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하자, 노 후보는 “앞으로는 프로필 종교란에 ‘방황’이라고 쓰겠다”고 대답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냈다.노무현 대통령은 어릴적에는 ‘왕보살’로 불릴 정도로 신심이 깊은 모친의 영향으로 불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노 대통령은 “어머니가 집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아침마다 독송을 했는데, 그 소리에 잠을 깨곤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그 영향 때문인지 노 대통령은 송기인 신부를 만나기 전까지의 청년 시절에 철학적 관심으로 ‘불교개론’을 비롯해 많은 불교 서적을 탐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 대통령은 일선 정치인 시절에도 사찰을 방문하면 불교 예절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DJ-천주교, 이희호-기독교
전임자인 김대중 전대통령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다. 1957년 7월 정치적 스승인 장면 박사를 대부로 모시고 노기남 대주교의 입회 아래 영세를 받았다. 이 때문에 DJ의 신앙도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폄훼하는 반대파들도 있다.그렇지만 DJ는 1970년대 일본에서 납치되는 등 고난의 세월을 보낼 때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겪은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다고 토로하곤 한다.반면,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기독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평생을 개신교와 함께 하고 있다.

이달 초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직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부부 앞으로 보낸 구명요청 서한이 처음으로 공개됐는데, 여기에도 그의 신앙심을 읽을 만한 대목이 들어 있었다.1980년 10월1일 인편을 통해 비밀리에 보내진 이 여사의 서한에는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남편을 살리려는 절절함이 가득했다. 이 여사는 “기도로 나날을 보내면서 신이 제 남편으로 하여금 정치에서 물러나 평생 기독교 신앙 보급을 위해 헌신토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믿게 됐고, 남편도 같은 생각”이라며 “하지만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이가 어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 우리를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YS,청와대 불상 모조리 치워
김영삼 전대통령은 개신교 장로다. 다른 정파 일각에서 YS의 문민정부를 ‘장로정권’이라며 비아냥 댈 정도로 그의 기독교 신자 편애는 심했다. 당시 P장관, K장관 등이 ‘민주계’ 실세들의 견제를 받던 ‘민정계’임에도 국회의원 시절 기독교 의원 모임에서 YS와 함께 신앙생활을 한 덕택에 입각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상도동 사람들은 YS가 8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신체적으로는 꾸준한 운동, 정신적으로는 독실한 믿음에 바탕한 기도”라고 들려준다.문민정부 시절 육·해·공에서 대형 참사가 잇달아 일어난 것을 두고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오면서 경내의 불상을 모조리 치워버렸기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했다.반면, 노태우 전대통령은 고향인 대구에서부터 불심을 쌓은 ‘진짜’ 불교신도다.

노태우 전대통령과 불교의 관계에 대해선 진위 여부와 별개로 잘 알려진 다음과 같은 소문이 있다.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에 이어 차기 대통령을 꿈꾸던 노태우씨가 어느날 모 사찰의 큰스님을 찾아가 절을 하고 “어떻게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방도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십원짜리 동전에 불국사의 다보탑이 있는데 그 탑 앞에 불상을 새겨 넣으면 모든 국민이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게 되니 이것은 큰 불사가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부처님의 은덕으로 권좌에 오를 것입니다”라고 했다. 노태우씨는 즉시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어서 십원짜리 동전에 불상을 새겨넣었고, 그 덕택인지 198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노태우 대통령 퇴임 후 뒤늦게 이런 소문이 나돌자 당시 한국은행측은 “십원권 동전에 있는 것은 부처님상이 아니라 사자상”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원래는 다보탑의 기단부 네 귀퉁이에 4마리의 사자가 놓여 있었으나 3마리는 식민지 시기에 도난당하고 지금은 1마리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처음 십원권을 만들때 모르고 빠트린 것을 다시 만들면서 정확하게 사자상을 넣었다는 것이다.

육영수와 석가모니 탄신일
전두환 전대통령은 종교가 없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백담사로 유배 당했을 때 자신의 아호를 따 ‘일해 거사’로 불리며, 사찰 내방객을 모아놓고 강론을 펴기도 했지만 불교에 귀의한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전 전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 불교계 법란에 대한 책임론이 줄곧 거론되는 등 ‘불교를 탄압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마저 있었다.박정희 전 대통령도 종교가 없었다. 하지만 부인 육영수 여사의 지극한 불심에 영향을 받아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가령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이미 공휴일로 지정됐으나 석가모니 탄신일은 기독교인들의 견제로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가 박정희 정권의 결정으로 공휴일이 됐다고 한다.

경주 불국사 재건 및 중창 역시 불교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관심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하지만 박 대통령이 합천 해인사에 들렀을 때 성철 큰스님을 만나려고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나돌기도 한다.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젊었을 때 천주교에 입문,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을 받고 천주교 계통인 서강대(전자공학과)에 다녔지만 지금은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반면, 박 전대통령의 외아들인 박지만씨는 개신교 신자로, 곽선희 목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앞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신교 장로였고, 윤보선·최규하 대통령은 종교가 없었다.한편, 기독교 혹은 천주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역대 대통령과 부인 중에도 재임 시절 유명 무속인을 청와대로 불러 운세 보기를 즐긴 인물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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