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대통령 전용 헬기를 구입하는 건이 있었습니다. 얼른 생각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헬기가 멀쩡한데 왜 사냐’ 하는데, 새 헬기는 내년에 도입이 됩니다. 제 임기 중에 1년 남짓 타고 나면 다음 대통령 몫이죠. 또 지금 우리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 비행기)가 있습니다. 공군 1호기는 일본과 중국을 간단하게 실무적으로 나들이하는 경우 이상으로는 쓸 수 없습니다. 국내용이죠. 미국을 가고 유럽을 가고 멀리 정상외교를 위해서 가게 될 경우에는 1호기로는 안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 장만을 한다든가 하는 결정을 하게 되면 그게 적용되는 시기는 제 임기 중이 아니고, 아마 다음 대통령도 해당 없고 그 다음 대통령 때나 쓸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계산해야 할 것은 대통령 순방용 비행기를 임대해서 쓰는 것과 전용기를 하나 장만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게 경제적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총리의 순방외교가 있을 때도 저만한 비행기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이냐, 국가정상의 품위 등을 고려할 때 어느 게 맞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시점은 10년 뒤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지금 계획을 세워 발주해도 들여오는데 한 10년 쯤 돼야 합니다. 나와 관계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없죠.”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월3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등반을 마치고 난 뒤 서울 효자동의 음식점 ‘토속촌’에서 삼계탕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불쑥 대통령 전용 헬기와 항공기 얘기를 꺼냈다. 대통령이 구상하는 정책이나 국가과제가 보통은 본인 임기 중의 일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의 사례를 든 것이었다.대통령의 전용 헬기와 비행기가 노후해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은 역대 정권에서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과거 대통령들은 노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내 임기 중에 쓸 것도 아닌데 욕을 먹어가면서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불편해도 그냥 사용했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달랐다. 지난 봄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대통령 전용 승용차를 과감히 바꿨을 뿐만 아니라 전용 헬기와 비행기도 ‘다음 대통령을 위해’ 바꾸려 하고 있다. 대통령의 전용 헬기와 비행기에 대해선 이 난의 ‘해외순방’, ‘지방순시’ 편 등에서 자세히 살펴 본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대통령이 국내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 사용하는 승용차에 얽힌 비화들을 알아본다. 지난 봄 청와대는 국가원수용 승용차로 기존의 ‘벤츠’ 대신 ‘BMW’ 5대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때 청와대가 도입한 BMW는 6,000cc급인 ‘시큐리티 760Li’다.

한국 방탄차 생산능력 없어
사실은 대통령의 승용차가 어떤 차종인지 자체가 ‘기밀’에 속한다. 대통령이 타고 이동하는 차량 자체가 일종의 경호장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 경호실은 당시 차량 교체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당시 일부 언론은 ‘부산에서 11월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각국 정상들에게는 4,500cc급 에쿠스를, 영부인과 장관들에게는 3,500cc급 BMW를 제공하기로 했다. 청와대에서도 BMW 5대를 계약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그러자 청와대 경호실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경위를 설명했다. ‘외국 정상들에게는 (국산) 에쿠스를 제공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은 (독일산) BMW를 탄다’는 식의 보도가 오해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경호실은 “일반적으로 세계 각국은 국가원수용 승용차로 경호안전상 방탄차량을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방탄차 생산능력이 없어 부득이 외제 차량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선택의 폭은 벤츠, BMW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 방탄차량은 정해진 내구연한에 따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올해에 노후차량 교체용으로 BMW 5대를 도입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국가원수용 방탄 차량의 차종을 벤츠에서 BMW로 교체한 것이 아니고, 노후차량을 교체하면서 차종이 바뀐 것 뿐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승만 전용차량 GM 캐딜락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노무현 현 대통령까지 모두가 최고급 외제차를 승용차로 이용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이승만 전대통령은 미국 GM사의 캐딜락 ‘플리트우드60’ 리무진(배기량 7,390cc)을 이용했다. 당시 이 차종은 전세계에서 830대만 한정생산돼 각국 원수들이나 유명 기업인, 연예인 등이 사용했다고 한다.박정희 전대통령은 플리트우드60형을 개량한 ‘플리트우드68’ 리무진을 애용했다. 최규하 대통령도 같은 차종을 탔다.그러다 전두환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국가원수의 승용차는 ‘링컨 컨티넨탈’ 리무진으로 바뀌었다. 이 리무진은 1,156대만 한정 생산됐다. 청와대가 구입하면서 방탄차량으로 개조했음은 물론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링컨 컨티넨탈을 애용했다.

대통령 이동시 동일차량 3대이상
김대중 전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가원수 전용 차량은 ‘벤츠S’ 리무진으로 교체됐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초 ‘벤츠S600’을 타다가 올 봄 ‘BMW 시큐리티 760Li’로 바꾼 것이다. 이 차량의 대당 가격은 2억4,000여만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V형 12기통 엔진이 장착돼 있고, 배기량 5,972㏄로 최고 출력 438마력에 최고 속도는 시속 250㎞에 달한다. 무게는 보통 2.3톤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타는 차는 일반형보다 1.5톤 무거운 3.8톤이다. 방탄용 철갑에 방탄유리, 특수도금이 추가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이어는 특수 제작돼 펑크가 나도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다.대통령이 승용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보통 벤 경호차량과 별도로 3대 이상의 동일 차량이 함께 움직인다. 저격 등 만일의 경우에 대비, 어느 차에 대통령이 타고 있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청와대가 동일 차종 5대를 일괄 구입한 이유가 된다.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통령 전용차량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63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할 당시 탔던 ‘프레지덴셜 컨티넨탈’이다. 이 차량은 방탄 덮개를 씌웠다 벗겼다 할 수 있는 ‘컨버터블형’이었는데, 댈러스 방문 때 케네디는 덮개를 벗긴 채 군중에게 답례하다 오스왈드의 저격을 받았다. 그 이후로 각국의 대통령 전용차량에서 컨버터블형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대통령 전용차량의 운전기사는 경호실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현역 군인이 전속 운전기사였고, 한 때는 영관급 장교가 대통령 전용차량을 직접 몰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직접 확인은 되지 않는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때도 군 출신 베터랑 운전기사가 경호실에 소속돼 전용차를 운전했다고 한다.

청와대 비서진 ‘뚜벅이족’ 많아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했던 기사를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들 ‘민간인 출신’ 대통령 전용차량 운전기사는 일정 기간 경호실에서 경호교육을 받은 후에야 VIP 차량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즉 차량을 운전하는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노무현 대통령 초기에는 SK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가 노 대통령의 고향 친구이자 전 운전기사인 선봉술씨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했던 적도 있다.

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손길승 SK그룹 회장에게서 받은 11억원어치 양도성예금증서(CD) 가운데 1억원대의 돈을 선봉술씨에게 줬다”고 진술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한편, 청와대 참모들 가운데 관용차량이 제공되는 사람은 비서실장을 비롯해 정책실장 수석비서관, 보좌관 등 소수에 그치며, 차종도 모두 국산 중형이다.그 밑의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은 대개 본인 소유의 소형차를 직접 모는 ‘오너 드라이버’다. 특히 참여정부들어서는 젊은 비서관이나 행정관 가운데 본인 소유의 승용차가 없어 대중교통이나 청와대 출퇴근 버스를 이용하는 ‘뚜벅이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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