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일요일인 3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가을 산행을 했다.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올랐다. 취임 이후 봄·가을 주말에는 가급적 운동삼아 부인 권양숙 여사나 참모들과 함께 북악산을 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출입기자들과 함께 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2004년 봄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해 관저에서 칩거하고 있을 때다. 두 번째는 “봄이 왔지만 꽃이 좀 늦게 피는 것 같다”는 말을 남긴 올 봄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세 번째 산행에서도 최근 정국과 관련해 의미가 깊은 담론을 기자들과 나눴다. 일부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고, 다른 민감한 내용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에 부쳐졌다.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다. 그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대통령의 심중에서 나온 말을 들을 수 있다. 또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북악산을 대통령과 함께 등반할 수 있다. 노 대통령과의 산행 며칠 전에는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풍경이 좋다는 녹지원에서 이병완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과 가을단풍을 구경하면서 오찬도 함께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참여정부 전까지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춘추3락(春秋三樂)’이란 말이 있었다. 여기서 ‘춘추’는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상주하는 춘추관을 의미한다. ‘3락’은 첫째 춘추관 2층 구내식당에서 2,500원짜리 맛 있는 점심을 먹는 즐거움, 둘째 춘추관 지하에 있는 목욕탕에서 느긋하게 공짜 목욕을 할 수 있는 즐거움, 셋째 비서동 취재를 가면서 아름다운 녹지원을 구경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참여정부들어서는 이 가운데 세 번째 즐거움은 사라졌다. 비서동 개별취재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까지는 하루 두 차례 한 시간씩 비서동 출입이 가능했지만 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출입기자들의 비서동 출입을 완전히 금지시켰다. 비서실 업무에 지장을 주고, 보안이 안되며, 일부 힘 있는 언론사가 정보를 독점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선 “우리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니라 ‘춘추관 출입기자’”란 자조가 들린다. 또 춘추관이 홍보수석실에서 릴리스 해 주는 기사만 쓰다 보니 워낙 할 일이 없다고 해서 ‘춘추사(春秋寺)’라고도 부른다. 절간처럼 조용하다는 말이다. 어떤 기자는 인사발령을 받아 춘추관을 나오면서 “출소했다. ‘장기수(오랫동안 출입하는 기자)’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남겼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 인사를 통해 청와대 출입을 하게 된 기자가 정작 청와대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현정부들어 세 차례에 걸쳐 출입기자들에게 비서동을 개방하는 일종의 ‘행사’를 벌였다. 출입기자가 자신의 출입처를 단체로 견학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최고의 민완기자가 출입
이렇게만 설명하면 춘추관이 최악의 출입처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청와대는 여전히 기자들에게 최고의 출입처다. 언론사 기자 생활을 처음 하면 대개 사회부 소속으로 일선 경찰서를 돈다. 회사별로 사정은 다르지만 이후 여러 부서를 거치다 입사 5년 정도 이상은 지나야 정치부로 갈 수 있게 되는데 정치부 중에서도 청와대는 가장 중요한 출입처다. 모든 정보가 집결되고, 국가경영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소속 언론사의 민원을 다 해결하고 마치 자신도 권력을 가진 듯이 행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각 언론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민완기자가 청와대를 출입한다.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 가운데 언론사의 꽃인 편집국장(신문)·보도국장(방송)까지 오른 기자는 무수히 많다. 또 정계로 진출해 성공을 거둔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를 출입하던 모 신문사 기자가 하루 아침에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있었다.

고급정보 접근성 유리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겐 큰 낙이 하나 있다. 바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동행 취재다. 회사돈으로 출장비를 내고 청와대에서 전세로 얻은 특별기를 대통령과 함께 타고 나가 세계 각국을 다닌다.대개는 방문국에서 프레스센터가 설치되는 특급 호텔에 머물며 ‘VIP급 대접’을 받기도 한다. 이 정도가 큰 낙이란 말이 아니다. 해외 출장에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보통 해외에 나가 취재를 할 때는 ‘풀(POOL) 기자’제가 운영된다. 각 일정별로 2~3명이 한 조를 이뤄 대표취재를 하고 결과를 프레스센터에 풀어놓는 방식이다. 이 때 운이 좋으면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구경을 하게 된다.

가령, 미국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한·미 정상 간 대화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다든지, 일본 왕궁의 성대한 국빈 환영식을 직접 눈으로 구경한다든지, 남미 원주민의 특별한 민속공연을 대통령과 함께 관람한다든지 하는 일이다.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또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비서동 개별취재는 금지돼 있지만 그래도 지연·학연 등으로 맺어진 참모들과 청와대 담밖에서 꾸준한 접촉을 갖는다. 반주를 곁들인 점심이나 저녁식사 때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듣는 고급정보는 비록 기사화를 하지 못하는 경우라도 훌륭한 언론사 내부 정보보고 거리가 된다.

달라진 ‘춘추관’문화
현재 청와대 출입기자로 등록된 인원은 300명이 넘는다. 신문·방송·인터넷 매체 기자들을 모두 합친 것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 청와대 출입기자는 80여명선에 머물렀다. 참여정부들어 청와대 기자실을 개방하면서 인터넷매체와 스포츠지, 주간지 등이 등록해 인원이 늘어났다. 하지만 300여명 가운데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돌아가면서 취재하는 이른바 ‘풀 기자단’은 취재기자와 사진·방송카메라 기자를 모두 합쳐도 100명이 채 안된다. 등록만 해 놓고 춘추관에 자주 들르지 않는 기자들은 풀 기자단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어쨌든 청와대에 등록된 기자가 300명을 넘다보니 ‘춘추관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80여명만이 모여 있을 때는 수시로 세미나 등을 열면서 친목을 다졌다. 또 각 수석비서관들과 돌아가면서 술자리를 갖고 정부에 대한 조언과 비판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매체종류별, 또는 개인적인 친분에 따라 끼리끼리 어울릴 뿐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별로 없다고 한다.

평균 연령 30대로 대폭 낮아져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몇 안되는 출입기자들이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과 함께 소주와 막걸리를 섞은 폭탄주를 마시고 취해 서로가 ‘막 가는’ 행동을 했다는 얘기는 신화가 돼 버렸다.멀리 갈 것 없이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특별한 신분’이었다. 이는 인원이 제한돼 있던 탓도 있지만 호남 출신 기자들이 대거 춘추관에 입성, 동향 출신인 청와대 참모들과 끈끈한 정을 유지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김대중 정부 후반기에 춘추관을 출입한 기자들과 공보수석실 참모들이 모여 결성한 청춘회(靑春會·청와대+춘추관)라는 모임은 지금도 설날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간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청와대 출입기자는 40대 중·후반의 차장·부장급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40대 초반만 해도 ‘고참’ 축에 속한다. 대개는 30대 중·후반의 평기자나 차장대우급이다. 이는 청와대 홍보 분야 참모들의 평균 연령이 대폭 낮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청와대를 출입한다는 자체가 일종의 권력이었다. 청와대쪽에서 각 언론사에 아무개 기자를 출입시켜 달라고 아예 찍어서 요청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권과의 ‘코드’가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군사정권과 김영삼 대통령 시절까지 춘추관의 표준어는 ‘경상도 사투리’였고, 김대중 대통령 때는 ‘전라도 사투리’였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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