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코스타리카 국빈 방문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 60차 유엔총회 고위급 본회의(유엔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17일 귀국했다. 노 대통령의 이번 순방에서 하이라이트는 유엔총회 본회의 기조연설(한국시간 15일)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 나선 40개국 국가원수 가운데 나이지리아에 이어 25번째로 본회의 단상에 올랐다. 정상들의 연설 순서는 추첨에 따라 정해졌다. 노 대통령은 4분47초 동안의 연설을 한국어로 했다. 다른 나라 정상들도 마찬가지로 자국어 연설을 했다.이처럼 우리나라를 포함해 각국 대통령들은 제3국에서 열리는 공식회의에선 자국말을 사용한다. 다른 참석자들이 알아듣게 하는 것은 통역사의 몫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서 만나는 외국 정상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까. 공식적으로 통역사가 수행한다고 해도 다자간 국제회의에선 다른 나라 국가원수와 갑작스럽게 마주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어떤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할지가 궁금해진다.

과연 역대 대통령들의 외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궁금증을 단편적으로나마 풀어줄 수 있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증언들이 청와대 주변에는 나돈다.노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 동안 많은 외국 정상과 만나 공식 회담을 하거나 환담을 나눴다. 유엔총회 개막식에서만도 인도네시아 라운지에서 대기하면서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미국),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 폴 마틴 캐나다 총리와 인사를 나눴고, 회의장안에서 오만 국왕,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주최로 열린 오찬에서는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좌우에 두고 같은 테이블에 이라크·핀란드·브루나이·카타르·베네수엘라 등의 정상들과 함께 앉아 환담했다.

전날 저녁 부시 대통령 주최 환영 리셉션에서도 필리핀·말레이시아·터키·요르단·스페인·아르헨티나·호주·수리남·그라나다 정상들과 만났다.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대부분 언어가 다른 이들 정상들과 어떻게 대화를 나눴을까. 물론, 사전에 예정된 정상회담에는 통역사가 배석하므로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리셉션장 같은 데서 전혀 낯선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 정상과 맞닥뜨렸을 때다. 대통령 자신이 영어에라도 능통하다면 간단한 인사 정도를 나누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지만 기본적인 회화도 안될 경우엔 난감할 수밖에 없다. 국가원수들끼리 만난 자리서 ‘보디 랭귀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승만 대통령 영어 능통
우리 나라에서 아직까지는 외국어 실력이라면 곧 영어 실력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영어를 가장 능통하게 구사한 인물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학사(워싱턴대학교), 석사(하버드대학교), 박사(프린스턴 대학교) 학위를 모두 미국에서 받았다. 따라서 오히려 광복 후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땐 한국말이 서툴렀다. 이후 성우 구민씨가 흉내내는 바람에 알려진, 떨리고 어눌한 한국말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됐다. 또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는데, 부부 간에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오스트리아의 언어인 독일어도 어느 정도 익혔다고 한다.영어를 제1언어처럼 사용했던 이승만 대통령 다음으로 영어에 능통했던 인물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었다.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나온 최 전 대통령은 외무관료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외무장관까지 지냈다. 당시에는 북한과의 외교전이 한창일 때인지라, 외무장관이 스스로 해외에 나가 유엔에서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담판을 짓는 일이 흔했다. 이 때 최규하 외무장관은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외교전쟁에서 맹활약을 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최규하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영어 실력으로 금·은메달감이었던 셈인데, 그렇다면 동메달감은 누구일까.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이력으로만 보면 영국의 에든버러대학교에 유학했던 윤보선 전 대통령을 꼽아야겠지만 그는 재임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내각책임제 하의 대통령이어서 늘 논외로 치곤한다. 윤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함께 꼽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두 전직 대통령이 현역 군인 시절 미국 군사학교에 유학을 가 정식으로 영어를 익혔다는 점을 든다. 미군들과 ‘실전 회화’를 많이 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을 더듬거리는 영어로 한 적이 있다.하지만 청와대 의전 파트나 외교부에 오래 근무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상고졸 출신으로 미국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동메달감’으로 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DJ의 영어는 전형적인 ‘콩글리시’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또박또박 떼어서 발음하는 것이 마치 중학생이 영어교과서를 읽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콩글리시가 미국에서도 통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DJ는 대통령 재임 기간 중인 1999년 7월 미국에 가서 ‘필라델피아 자유메달상’을 받았다. 당시 야외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일반 시민을 포함해 1천여명이 모여 있었다. DJ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완전히 콩글리시로 읽었다. 그렇지만 미국인 청중들은 이를 용하게 알아듣고 박수를 칠 때 어김없이 박수를 쳤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미국문화에 밝은 측근들이 DJ에게 힘주어 발음할 때를 표시해 줬고, 한 문장이 끝난 뒤 숨을 돌리거나 물잔을 들어 입을 축이면 박수가 나온다는 귀띔을 해줬다는 것이다.물론, DJ는 발음엔 상당한 문제가 있었지만 영어권 기자들의 질문을 금방 알아듣고, 영어로 답변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외국정상과의 회담이나 기자회견 도중 통역이 미처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즉석에서 정정하는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1982년 12월부터 85년 2월까지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미국의 ABC·NBC·퍼블릭 라디오를 위시한 각 지방의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 방송에서 영어를 사용하기도 했다.DJ가 콩글리시를 쓰는 것은 영어를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 오랫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독학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영어를 익힌 경험담을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마흔 여덟살 때부터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1972년 유신이 선포되기까지 10년 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했지만 그때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외국의 공관 사람들이나 외신 기자들을 만나는 일이 참 괴로워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 76년과 80년 두 번에 걸쳐서 있었던 5년 간의 옥중 생활은 영어 실력을 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삼위일체’라는 영어책을 비롯해 여러 권의 영문법 책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으로부터 죽을 위협을 당하는 등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신세도 많이 졌다. 나를 두번이나 감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도 못 했을 것이고, 영어 공부도 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YS,영어구사 에피소드 많아
DJ와 항상 비교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어 구사 능력은 어땠을까. YS에 대해선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에피소드들이 늘상 따라 다닌다. 영어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령 그가 어느 국제회의에서 영어연설을 하게 됐는데, 측근들이 영문 연설문 밑에 한글로 발음을 달아줬다는 식이다.그러나 문민정부 청와대 시절 초기 외교·의전 파트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모두 음해”라고 단언했다. 그는 “YS는 그래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다. 영어에 능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외국 정상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안부를 묻는 정도는 통역없이도 충분히 가능했다”고 전한다.반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영어에 서툴렀던(정확히 말하면 기회도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다.

대신 일본 육사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은 그 시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어에 능통했다. 또 일본군 장교 시절 만주 일대에서 근무한 관계로 중국어도 어느 정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청와대 시절에도 측근들과 은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일본말을 사용한 것으로 어느 영화에서 묘사된 바 있다. 최근 공개된 한일협정문서에는 박 전 대통령이 일본과 담판을 벌이는 과정에서 직접 일본말을 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즉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1년 11월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의 워싱턴 회담에 앞서 도쿄를 경유,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와 먼저 정상회담을 가질 때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케다 총리와 통역없이 1시간40분간 일본말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정상회담 과정을 기록한 문서에는 “신문발표 때는 통역을 대동했다고 발표했으나 사실은 통역이 참석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전문 통역사 의사전달
사실 대통령에게 있어 외국어 실력은 갖춰져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큰 불편이 있거나 흉이 될 것은 없다. 공식적인 국제회의 연설에선 항상 자국어를 사용하고 통역이 이를 정확히 전달해 준다. 대통령에게는 전문 통역사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통역사 중 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 스페인어·러시아어·아랍어 등 ‘7대 언어’ 담당자는 외교통상부 직원이다. 다만 영어처럼 수시로 통역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예 청와대 비서실에 파견근무를 한다. 현재 청와대에서 영어통역을 담당하는 이성환 외무관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 행정관으로 파견돼 있다. 그는 최근 주미대사에 내정된 이태식 외교부 차관의 차남이다. 일단 대통령 통역자로 선정되면 ‘보안각서’를 쓰는 것으로 알려진다.

양국간 민감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열리는 단독 정상회담에서 오간 구체적인 내용은 두 정상과 양쪽 통역만이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기자들은 대통령의 해외출장시 함께 특별기를 타고 동행하게 되는 통역과 친해지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 통역의 첫 번째 자질이 ‘무거운 입’이란 데서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업무상 취득한 비밀’을 끝까지 지킨다.뭐니뭐니 해도 대통령 통역의 백미는 2004년 제주도 한·일정상회담에서 있었던 외교부 소속 여성 통역사의 재치였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일본 기자가 독도 문제를 묻던 중 “다케시마는…”이라고 하자 답변을 하면서 무심결에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선…”이라고 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호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실수였으므로 참모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측 통역사가 “독도 문제에 대해선…”이라고 재치 있게 통역해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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