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의 한 내부 모임에 참석했다. 그 자리의 사회자는 3급 정도의 행정관급에 해당하는 A씨였다. 노 대통령은 인사말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가 갑자기 A씨와의 인연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과거 부산에서 야인으로 있을 때 A씨를 비롯한 몇몇 참모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이 대통령 도전 의사를 밝히자 다른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A씨만은 가능성을 내다보고 적극 나서주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농담 비슷하게 “지금 그 정도의 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라고 했다. 이후 청와대 안에서는 조만간 A씨가 승진하는 것은 따놓은 당상으로 보고 있다.실제로 청와대 비서실처럼 특정인의 직책이 고무줄처럼 탄력적인 곳은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순식간에 몇계단을 상승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통령과 과거에 인연이 있거나 ‘코드’가 맞다는 점만 확인되면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곳이다. 노 대통령이 감명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중용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또 청와대 고위 인사가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과 분노와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참여정부 임기 후반기에 청와대 비서실을 이끌어갈 이병완 비서실장이 지난 26일 공식 취임했다. 당초 유력한 후보자로 거명되던 김병준 정책실장을 제치고 그가 신임 비서실장에 내정되자 청와대 일각에서는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실장은 참여정부 출범초 기획조정비서관(1급)으로 시작해 2년 반만에 차관급인 홍보수석과 홍보문화특보를 거쳐 ‘실세 장관급’인 비서실장에까지 고속승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나이도 이제 51세로 5공 이후 역대 비서실장 22명 가운데 네 번째로 젊다. 가히 파격 인사라고 할만한 것이다.

이병완 실장 발탁 서열 파괴
청와대 참모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나이가 더 많거나 불과 몇년 전만해도 자신보다 상급자였다. 비서관 시절은 그렇다치더라도 지난 2월 홍보수석직에서 물러날 때를 기준으로 해도 이 실장은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가운데 서열이 10번째 정도였다. 불과 6개월 만에 비서실 서열 1위가 된 셈인데, 문제는 당시 그 위에 있던 상당수 수석들이 아직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로 볼 때도 청와대 수석·보좌관 10여명 가운데 이 실장보다 젊은 참모진은 조기숙(46) 홍보수석과 박기영(47)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등 여성 2명밖에 없다. 더구나 김완기 인사수석(61)은 이 실장의 고등학교(광주고) 8년 선배가 된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핵심 측근으로, 이른바 ‘왕(王)수석’, ‘실세 수석’으로 불리는 문재인 민정수석과 이강철 시민사회수석도 버티고 있다. 이 실장의 ‘선배 부하’ ‘실세 부하’ 지휘술을 지켜볼 일이다.

허탈한 선배 수석비서관
처음 이 실장 내정 소식을 듣고 청와대 비서관급 참모들이 보인 반응은 대체로 “허탈하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2년반 동안 수많은 비서관들이 확실한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청와대내 이 곳, 저곳을 맴돌았다. 특히 이른바 ‘386 참모’들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승진도 거의 없이 3~5개 보직을 왔다갔다 했다.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의 경우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시작해 홍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부대변인, 대변인을 역임했으니 지금 보직이 다섯 번째다. 천호선 의전비서관·정태호 정책조정비서관·윤후덕 기획조정비서관·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안영배 국내언론비서관 등도 벌써 3~4차례 자리를 수평이동했다.

물론, 이병완 실장도 전형적인 돌려막기 인사를 당한 케이스였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서 받은 임명장만 6장이다.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를 시작으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정무기획비서관·홍보수석·홍보문화특보를 거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보직이 바뀔 때마다 비서관→수석비서관→특보→비서실장으로 직급이 승승장구한 까닭에 제 자리를 맴돌다시피 하고 있는 386 참모들과는 다르다. 더구나 이 수석은 ‘노무현 패밀리’ 입장에서 볼 때 외부수혈 인물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서울경제신문의 청와대 출입기자를 했다. 그러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청와대로 들어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을 맡으면서 비로소 노무현 후보와 인연을 맺게 된다.따라서 야당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같이 해 왔던 젊은 비서관들로선 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로선 불과 2년 반 전에 같은 비서관이었던 사람이 수석비서관도 아니고 까마득한 비서실장 자리로 올라가 버렸으니 허탈감을 느낄만한 상황인 것이다. 또 현직 수석비서관과 보좌관들도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과거 부하가 상관으로 치고들어오게 된 데 대한 서운함이 없을 리 없다.이같은 인사파괴는 일반 공무원 사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시 출신을 기준으로 할 때 기수와 경력을 철저히 따져 인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과거 부하가 어느날 상관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굳이 청와대 비서실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노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청와대 인사체계의 특성 탓이 더 크다.

직급 인플레 극심
청와대 비서실의 지휘계통은 비서실장(장관급)→수석비서관(차관급)→비서관(1~2급)→행정관(3~4급)→일반직원(5급 이하)으로 구성돼 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경제수석 등 몇몇 주요 수석비서관이 장관급 예우를 받았지만 지금은 모든 수석비서관은 차관급이다. 또 참여정부들어 활성화된 청와대 보좌관(국가안보 보좌관·외교보좌관 등)은 수석비서관과 같이 차관급에 준한다.통상 공무원 사회에서 국장이라면 20~30년 정도 공직생활을 한 나이 지긋하고 근엄한 인물이 떠오르지만 청와대는 전혀 그렇지 않다. 30대 초·중반의 젊은 ‘국장’이 수두룩하고, 아직 대학생티가 가시지 않은 ‘과장’들도 많다. 그만큼 직급 인플레가 극심하다.청와대 비서실은 직급별 호칭도 조금 유별나다. 비서관까지는 그대로 ‘○○○ 수석’ ‘○○○ 비서관’이지만 행정관은 무조건 ‘○○○ 국장’이다 .또 일반직원들은 웬만하면 다 ‘○○○ 과장’이라고 호칭해 준다. 일반 공무원들에 비해 직급 호칭도 인플레 돼 있는 셈이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기능직 잡무를 보는 직원도 외부에 나가면 ‘청와대 과장’ 행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내부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과거 정권도 인사파괴 다반사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의 또 한가지 특성은 ‘5년 한시직’이란 점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선 몇개월만에 경질되기도 하고, 실력이 있거나 줄을 잘 타면 다음 대통령까지 이어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론 5년 정도 청와대에 머문다. 결국 직급 인플레, 호칭 인플레에다 5년 한시직이란 특성 때문에 청와대 인사에서 일관성 있는 원칙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특징이 있는 관계로 청와대 인사파괴는 비단 참여정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물 쓰듯’ 자리를 나눠주는 일이 다반사였다.국민의 정부 시절 핵심 인물이었던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년에 접어들면서 평소 그를 아끼는 지인들로 “국내에 남아 있으면 반드시 화를 당할테니 임기 만료로 청와대에서 나오는 순간 미국으로 떠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그는 뉴욕에서 가발업 등으로 성공했고, 아직도 그곳에 기반이 있다. 그럴 때마다 박지원 실장은 말했다. 내가 “DJ에게서 받은 공식 임명장이 몇 장인지 아느냐. 자그마치 일곱 장이다. 미국에서 살다가 뒤늦게 정치판에 들어와 DJ로부터 그만큼 큰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그런 내가 나만 살자고 미국으로 훌쩍 떠날 수 있겠느냐.”실제로 그는 DJ로부터 모두 7 차례 중용됐다. 야당(민주당→국민회의) 대변인,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 청와대 공보수석(대변인),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대통령 정책특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각각 DJ를 보좌했다. 이 가운데 청와대에서만 4장의 임명장을 받았다. 그런 신뢰에 보답코자 끝까지 국내에서 DJ의 곁에 남으려다가 대북송금 특검에 걸려 갖은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임기말 경력관리용 직급 상승
어쨌든 당시 정치권에선 DJ에게 받은 ‘7장의 임명장’이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참여정부에서 이 기록은 조만간 깨질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한 참모들 가운데는 이병완 실장 외에도 이제 겨우 임기가 반환점을 도는 2년 반 사이에 벌써 4~5 차례나 임명장을 받은 참모들이 적지 않다.이렇게 보면 현정부 보다 국민의 정부 이전은 그나마 청와대 비서실이 조금 안정돼 있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은 ‘순환보직’이란 명분으로 직위는 그대로 둔 채 직책을 계속 바꾼다. 하지만 DJ와 YS 시절에는 그 자리에서 직급을 올려주는 방법을 썼다.

YS 시절 어느 참모는 4급 행정관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왔다가 나갈 때는 1급 비서관으로까지 승진했다.특히 직급 상승이 심할 때는 임기 막바지다. 어차피 임기가 끝나면 새로 직장을 잡아 줄 처지도 아니기 때문에 경력 관리용으로 직급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에서 퇴임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차관급 이상을 지내면 정부 외곽 학술재단의 지원으로 대학 강의를 맡을 수 있는 규정을 이용해 임기를 몇개월 남겨놓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행정부 차관급 자리로 이동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B씨는 그런 차원에서 국민의 정부 말기에 행정부 차관급 자리를 받았지만 이후 특유의 업무 능력과 친화력을 발휘해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독특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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