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빈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성민은 오스트리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역사며, 예술이며, 정치에 관해서도 성민은 놀랄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원자력기구가 빈에 있지만 막상 오스트리아는 원자력 발전 시설을 반대하는 반핵 국가야.”
“그래요?”
수원이 호기심을 보이자 성민이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리 원전이 건설되던 1978년에 오스트리아에서도 최초의 원전이 완공되었지. 도나우 강변의 츠베텐도르프 원자력발전소야.”
수원은 왜 중요한 일은 1978년에 다 몰려 있나 하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때 세워진 원전이 지금까지 가동하지 못하고 서 있다면 믿을 수 있겠어?” “정말이에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희생된 것이지.”
“정치적인 문제라면?”

수원이 나직하게 물었다. 뒷자리에 앉은 강병욱 정책처장은 수원과 성민이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식 가동 인가를 앞두고 정부가 주춤거리게 되었지. 마침 총선이 코앞에 있었거든. 찬반 시비가 많았던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한 거야.”

“야당이 반대한 모양이지요?”
“당시 집권당은 사회당이었고, 원자력발전소는 전 정권인 보수당이 계획했던 거야. 착공 당시 보수당은 우리가 해냈다 하고 그 일을 자랑스럽게 추진했는데, 신세가 바뀌어 야당이 되자 ‘무조건 반대 병’에 걸린 거지. 원전에 대한 찬반이 백중한 것도 아니고 찬성 쪽이 많았어. 그런데도 혹시 잘못될까 봐 겁 많은 사회당이 국민투표에 부쳤어. 그런데 결과가 부결로 나와 버린 거야.”

“아니, 원전 지지자가 많다면서 왜 부결돼?”
뒤에서 듣고 있던 강병욱 정책처장이 끼어들었다.
“듣고 계셨군요.”
성민이 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역시 정치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원전 자체에 대한 찬반보다 사회당이 밉다, 총리가 밉다, 이런 이유를 들어 부표를 던진 겁니다. 심지어 이웃에 있는 스위스와 사이가 나쁜데, 그 나라에 원전이 있으니 우리는 만들지 말자는 주장도 팽배했다니 할 말 다 했죠.”

“그래서 그 아까운 시설을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는 거예요?”
수원은 답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국제원자력기구는 그 나라에 있잖아요?”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었다.

일행은 빈 공항에서 시내의 유명한 NH 호텔로 갔다. IAEA 건물은 거기서 15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강병욱 정책처장을 단장으로 하는 일행 5명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새벽에 도착했기 때문에 잠깐 휴식을 취한 뒤 1층 로비 곁에 있는 식당에 모여 조찬을 들었다.

회의는 오전 열시부터 시작이었다.
일행은 조찬 후 서둘러 회의 장소인 바그레메르 스트리트의 인터내셔널 센터로 향했다. 5인승 승합차를 타고 회의장으로 가는 동안 수원은 빈의 고색창연한 풍경을  감상했다. 시가를 감싸고 도는 도나우 강 운하의 경치가 특히 아름다웠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의 고딕식 지붕은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했고, 흰 대리석으로 된 빈 시청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인터내셔널센터에는 유엔 산하의 여러 독립기구가 모여 있었다. 일행은 2층에 마련된 리셉션 장으로 올라갔다.
“아니.”

계단을 올라가던 수원이 멈추어 섰다.
“왜?”
성민이 같이 멈추어서면서 물었다.
“저쪽에서 무비 카메라로 우리를 찍고 있는 남자 보여요?”
수원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응. 그런데?”
“저 사람, 빈에 도착한 이후로 계속 마주쳤어요. 그런데 여기서 또 만나다니.”
“그래?”

“우리를 미행하는 것 아닐까요?”
“사람을 잘못 보았겠지. 이곳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거든.”
성민은 별일 아니란 듯이 수원의 팔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번 회의는 IAEA의 여러 분과 중 하나인 ‘정보유통시스템’이라는 기구가 주재했다. IAEA 가입국은 185개지만 이날 참석한 국가는 88개국이었다.
강병욱 대표단장은 리셉션 장에서 분주하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여러 번 회의에 참석해서인지 안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강병욱 단장은 프랑스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불어권 국가 대표에게 수원을 소개해 주었다.
배성민은 자기 나름대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 역시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회의가 시작되자 IAEA 사무총장이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이번 회의는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구, 이 지구를 건강하게 보존하고 인류가 그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어깨에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인사말이 끝나자 각국 대표 소개가 이어졌다. 참석자가 워낙 많아 소개가 끝나자 어느덧 점심시간에 가까워졌다. 참석자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서로 친분을 쌓았다.

오후 회의부터 본격적으로 각국 대표의 열띤 논쟁이 시작되었다. 토론 주제는 ‘화석 연료의 장래와 지구 온난화 방지’였다. 참석자들은 화석 연료로 인한 폐해를 강조하는데 지구 온난화 방지에는 대체 에너지 개발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자연스럽게 지구를 구하는 길은 원자력 에너지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가 소개 /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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