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여섯 달, 홀시어머니와 한집에 사는 민공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래 성격이 낙천적으로 타고난 데다 딸 여섯 있는 집 맏이라 웬만한 일은 참고 견디는 그녀였다. 그러나 시어머니 최여사만은 하루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여고 동창인 차인숙이 불쑥 찾아왔다. 미리 전화했더라면 시어머니가 절에라도 가고 없는 날 오라고 했을 텐데 하필이면 시어머니가 기분이 좋지 않아 찌푸리고 있는 날 찾아왔다. 그러나 민공자는 더없이 반가웠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동안에 쌓인 이야기를 실컷 하고 싶었다.

“얘, 말도 마. 홀시어머니 시집살이 힘들다고 하길래 난 그런 건 옛날 이야긴 줄 알았어. 그런데 내가 당해 보니 정말 미칠 것 같더라.” “어머머, 그러니? 요새 그런 시어머니가 어딨니?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차인숙은 민공자를 동정하는 척하면서도 어딘지 고소해 하는 것 같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공자는 부잣집 외아들에게 시집 가 없는 것 없는 호강을 하게 되고 자기는 가난한 월급쟁이 아내가 된 것이 분해 못 견딜 것 같았는데 속사정을 알고 보니 시집을 잘 온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사사건건 트집이야. 주로 음식 솜씨가 없다고 야단이신데……. 그냥 불평하는 정도가 아니라 친정어머니가 못 가르쳤다고 어머니 욕을 마구 해대는 데는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요즘은 요리학원 다녀. 하루도 안 빠지고 꼬박꼬박.”
“요리학원엘 다니게 허락하는 것을 보면 너희 시어머니도….”

“얘, 말 마라. 거기 다닌다고 얼마나 구박을 했는데. 그래서 일요일 밤에만 몰래 다녀. 저녁 7시에 나가 10시에 오거든.”
“고생이 심하겠다. 근데 얘, 요새 미궁의 인기도서 소설 중에 ‘하우 투 킬 시어머니’라는 책이 있대, 흐흐흐.”

차인숙이 음흉하게 웃었다. “정말? 얼마 전에 어느 신문에서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이라는 것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하더니, 시어머니 죽이는 방법이란 소설이…. 후후후“

민공자도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였다. 방문이 확 열리고 시어머니 최 여사가 마귀 같은 무서운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소리 질렀다.

“뭣이 어째? 시어미 죽이는 법이란 책을 구한다고?” “아니에요, 어머니....”
그러나 변명이 소용없었다. 차인숙은 혼비백산하여 집으로 도망치고 민공자는 온갖 욕설을 다 들으며 잘못했다고 빌었다. 해외에 출장 중이 아들이 오거든 보자며 시어머니는 통곡했다.

인사성이 없다, 아직 아이도 안 생겼느냐, 시집올 때 밍크코트도 한 벌 없이 왔느냐는 등 평소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민공자가 아니면 참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날 밤처럼 생트집을 잡고 통곡까지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민공자는 아무래도 최 여사가 정서 불안의 의학적 문제가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튿날은 5월23일 월요일이었다. 그날은 마침 시어머니 생일이라 일찍 미역국을 끓여 놓고 시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일찍부터 어딜 갔다가 9시나 되어서 경찰관 한 명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그뿐 아니라 시어머니는 뜻밖에도 왼쪽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함께 들어온 경찰관이 민공자를 보고 입을 열었다. “민공자씹니까?”
“예, 그런데요?” “시어머니께서 존속 상해로 고소했습니다. 아무리 시어머니가 미워도 시어미니 죽이는 법 공부나 하고 칼로 이렇게 부모를 찌르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예?”
민공자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 제가 언제 어머니를 찔렀습니까? 어머니, 정말 왜 이러세요?”

민공자는 너무 기가 막혀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언제 이렇게 했습니까?”
경찰관이 최여사를 보고 물었다. “어제저녁이랍니다. 목이 말라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다가 이 늙은 게 주책없이 컵을 떨어뜨려 깨졌죠. 그래서 저년하고 말다툼하다가 그만 저년이 쥐고 있던 식칼로 나를 이렇게….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그때가 몇 시쯤이었나요?”

“텔레비전에서 아홉 시 뉴스를 막 시작했을 때였어요.” 최여사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다. 민공자는 꼼짝없이 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
민공자는 정말 창피하고 억울하고 기가 막혀 죽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조사를 하던 경찰관은 최여사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며느리를 그렇게 모함하면 벌을 받게 되어요, 할머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해 드릴 테니 며느리한테 사과나 하세요. 경찰관도 어이가 없는지 그냥 돌려보내 주었다.

민공자는 남편이 돌아오자 시어머니를 모시고 정신병원을 찾았다.

 

퀴즈. 경찰관은 시어머니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답변-5단] 시어머니가 경찰관을 데리고 온 날은 월요일. 그러니까 시어미가 칼에 찔렸다고 한 날은 일요일 저녁 9시께가 된다. 일요일 저녁 9시는 민공자가 요리학원에 있는 시간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추리소설과 역사 소설을 40여 년간 써 온 작가다. 40여 년간 일간신문 기자, 편집국장, 회장 등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기자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날카롭고 비판적인 필치로 묘사해 주목을 받았다. 역사와 추리를 접목한 그의 소설은 4백여 편에 이른다. 한국추리문학 대상, 한글발전 공로 문화 포장 등 수상.

주요 작품으로, <악녀 두 번 살다>, <여섯 번째 사고(史庫)> <역사에 없는 나라>, <세종대왕 이도 전3권> <정조대왕 이산>, <해동 육룡이 나르샤>, <지구 남쪽에서 시작된 호기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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