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수가 없어 인력 부족한데 위원회 운용비용도 부담돼”

지난 2009년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첫 연명의료 중단을 통한 존엄사를 치르신 김 할머니(77)를 지켜보는 가족들과 의료진의 모습 [뉴시스]
지난 2009년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첫 연명의료 중단을 통한 존엄사를 치르신 김 할머니(77)를 지켜보는 가족들과 의료진의 모습 [뉴시스]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노년층의 인구 비율이 높아진 최근, 본인의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할 권리로 ‘안락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죽을 권리’를 논하기 어색한 우리나라에서 안락사 허용을 찬성하는 국민은 10명 중 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규모 의료기관에서는 연명의료 중단 이행이 제한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 이에 관련 지원 정책과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한 요양병원 54곳 중 42곳은 ‘공용 윤리위원회’로 참여
복지부 “요양병원 등 소규모 의료기관의 참여 유도 위해 지원 확대해 갈 것”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이걸 전담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연명의료 정식 수가도 없는데 어느 요양병원이 윤리위원회에 참여해 인력과 시간, 비용을 투자하랴”

이는 현실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이 어렵다고 느끼는 수도권 요양병원 임원 및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 해 사망자 4명 중 1명이 요양병원서 삶을 마감하는 가운데, 정작 요양병원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하기 힘들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 것. 

일요서울은 지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정부 부처 대응 및 사업 현황 등 관련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요양병원 
“위원회 구성·운영비 부담”

지난 2018년 2월4일부터 진료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안, 일명 ‘존엄사법’이라고도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 이 법안은 지속적인 치료에도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환자를 대상으로 본인의 결정 또는 가족의 동의를 통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다. 내용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네 가지 연명의료 시술에 대한 치료 중단을 골자로 한다. 이후 연명의료 의학적 시술에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등이 치료법이 추가됐다. 

법률안 제2장 제10·12조에 따라 연명의료결정 과정에서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본인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결정의 이행은 법안 제3장 제17조에 의거해 두 가지 서류를 갖춰야 하는 조건을 지닌다. 

특히 ‘연명의료계획서’는 제14조에 의거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의료기관의 담당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만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가능하다. 

윤리위원회는 제14조 3항목에 따라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명 이상의 운영 위원을 둬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해당 의료기관 종사자로만 구성할 수 없고, 의료인이 아닌 종교계·법조계·윤리학계·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사람 2명 이상을 포함시키도록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윤리위원회 등록 현황은 어떨까.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월16일을 기점으로 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은 전국 265개소에 달한다. 상급종합병원은 대상 42곳 모두가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등록률 100%를 기록했다. 이어 종합병원도 대상 320곳 중 148곳이 등록해 46.3%의 등록률을 보인 반면, 요양병원은 전국 1584곳을 대상으로 3.4%인 54곳에 불과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도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뤄졌다. 한국보건의료원에 의하면 ▲상급종합병원 44.2% ▲종합병원 21.8% ▲병원 1.8% ▲요양병원 0.3%로 집계됐다. 왜 유독 요양병원의 윤리위원회 설치율이 낮은 것일까. 

전문가들은 ‘윤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인력 및 비용 부담’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요양병원들의 참여 독려를 위해 ‘공용 윤리위원회’ 사업을 신설해 재정 지원에 나섰다. 

“공용 위원회 설치·수가 신설”
지원 사업 내건 복지부

‘연명의료 제도화 지원’ 관련 보건복지부 예산안은 2018년 26억7000만 원, 2019년 54억8900만 원, 2020년 37억8400만 원이다. 2021년도 예산안은 29억5100만 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에서 심의 중에 있지만, 큰 변동이 없다면 전년 대비 22%나 예산이 삭감된 셈이다. 

반면, 연명의료 제도화 지원에 속한 ‘공용 윤리위원회’로 잡힌 예산은 2018년 1억 원 가량에서 지난해와 올해 약 8억 원까지 증액됐다. 공용 윤리위원회는 재정적·환경적 부담이 있는 요양병원,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대형 상급종합병원에 연명의료 중단결정 심의를 위탁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연명의료결정법 제14조 제5항에 따라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 이때 소규모 의료기관이 대형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사업비 200만 원을 정부가 지원하게 된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12일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코로나19로 전체적으로 다른 부처도 예산안이 감소되거나 동결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삭감될 예산에서도 ‘공용 윤리위원회’의 예산을 8억 원 수준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요양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 미만 의료기관들의 참여율 상승을 위해서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공용 윤리위원회에 참여한 요양병원은 2019년 28곳, 2020년 42곳으로 확인됐다. 이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운영관리팀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제도 자체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있다고 본다. 요양병원 측 비용 부담이 줄어들다 보니까 참여 비중 자체는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한편, 복지부는 2021까지 ‘연명의료결정 수가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평가해 2022년 정규 수가 사업으로 전환을 결정할 계획이다. 연명의료결정 수가 시범사업은 수가 적용 기준을 완화, 윤리위원회 등록한 의료기관으로서 관련 교육을 이수한 인력으로 ‘연명의료지원팀’을 구성·운영해 연명의료 중단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시범 사업이 정식 수가 사업으로 전환된다면, 의료기관의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사각지대가 점차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에서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어 향후 요양병원들의 참여가 활성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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