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화두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의견 분분

페루 심리학자 아나 에스트라다가 수도 리마의 자택 침대에서 산소 공급을 받고 있다. 합법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으나 페루 정부는 의학적 도움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진=뉴시스]
페루 심리학자 아나 에스트라다가 수도 리마의 자택 침대에서 산소 공급을 받고 있다. 합법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으나 페루 정부는 의학적 도움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인류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2월부터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시행되면서 2020년 10월 기준으로 12만5634명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했고 74만1202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논란만 일고 있는 가운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원정 안락사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령화시대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존엄한 죽음을 위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 연명의료결정법 “인간으로서의 존엄·가치 보호”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매년 증가 추세

 

소극적 안락사 ‘연명의료결정법’ 확산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사법’ ‘웰다잉법’ 등으로도 불린다.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한 경우에 환자의 의향을 존중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기준과 절차를 정립함으로써 환자가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은 ‘김 할머니 사건’이 계기가 됐다. 2008년 2월 폐암 여부를 확진 받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가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으나 병원은 의사에게 살인죄를 거론하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가족들은 연명의료를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내고 법원은 ‘인공호흡기 도움 없이 생존 가능성이 없고 연명의료도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며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확정 후 병원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지만 김 할머니는 의식불명 상태에서도 자발호흡으로 연명하다 201일 만에 사망했다.

2010년 7월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중단의 제도화에 필요한 쟁점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2009년 말부터 종교계와 의료계·법조계·시민단체·국회 등에서 18명의 인사로 구성해 운영해 온 사회적 협의체 활동을 종료하고 주요 협의사항을 발표했다. 사회적 협의체의 합의안은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임종 직전의 환자를 포함한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특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말기 환자에 대한 수분이나 영양 공급, 진통 등 일반적인 연명의료는 중단될 수 없도록 했다. 합의안은 말기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민법상 성인이 작성 전에 담당 의사와 상담 후 2주 이상의 숙려기간을 거쳐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2013년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구체적 절차와 방법을 논의했고 그에 따라 연명의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권고했다. 법안은 2016년 국회를 통과한 후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1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해외의 경우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허용된 이후 유럽의 일부 국가와 남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미국의 몇 개 주가 이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 바 있다. 

‘적극적 안락사’ 도입 필요성 공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를 연도별로 분석하면 2020년 현재 74만1202명, 2019년 43만2138명, 2018년 10만529명으로 2년 새 약 7배가량 증가했다. 원인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면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심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적극적 안락사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사단법인 착한법만드는사람들(착한법)은 지난 7월 ‘존엄사 입법 촉구’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직접적·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존엄사 입법안을 제안했다. 김재련 착한법 이사는 발표문에서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소극적·간접적 안락사만 인정하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직접적·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라며 새로운 연명의료결정법 도입을 촉구했다. 이는 연명치료를 위한 약물 투입의 중단뿐 아니라 의사의 도움으로 약물을 주입해 죽음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가 반영돼 있다. 

다만 단순히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죽음을 앞당기는 것과 적극적이고 인위적인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안락사의 경우 신체적 고통은 없지만 전신마비로 식사나 보행, 대소변 등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서 상당한 중증 치매를 겪고 있을 경우 품위 있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국가에서는 적극적 안락사의 다양한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게 ‘적극적 안락사’라면 환자가 직접 독극물을 주입해 목숨을 끊는 건 ‘조력 자살’이다. 두 방법 모두 환자가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은 같지만 명확한 개념을 구분하는 데는 차이가 있다. 적극적인 안락사는 형식적으로 타살이지만 조력 자살은 자살 개념이 더 커서 법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살을 돕는 단체 ‘디그니타스’로 유명한 스위스는 조력자살은 허용하지만 적극적 안락사는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력 자살과 안락사 모두 허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네덜란드다. 전 세계 최초로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합법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네덜란드는 1886년 형법을 처음 제정할 때 안락사를 범죄로 규정했지만 다양한 법원 판결을 거치면서 2002년 4월 안락사법이 시행됐다. 다만 네덜란드에서 안락사 하려면 법에서 정한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벨기에도 마찬가지로 2003년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합법화했다. 가톨릭 국가 중에서는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다. 2017년 기준 2309명이 안락사를 선택했고 대다수가 암 환자였다. 캐나다는 퀘벡 주만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조력 자살만 허용한다. 다른 주는 안락사와 조력 자살 모두 허용한다. 미국에서는 1997년 오리건주가 6개월밖에 살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 조력 자살을 허용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2015년까지 조력 자살 법안이 4차례나 올라갔지만, 결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조력 자살도 안락사도 금지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2년여 전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후 이제는 적극적 안락사로 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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