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더불어민주당이 거대한 침묵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강성 친문 지지층의 눈치를 보다가 할 말을 하지 못하는이른바 마스크 정치에 함몰된 것이다. 한마디로 174석에 이르는 거대 여당의 침몰이다. 21대 총선 직전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 창당 금지를 공언해놓고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거나 최근에는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 당헌을 전당원투표라는 편법으로 무력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당내 쓴소리조차 없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180도 뒤집었지만 금배지를 단 의원들은 사실상 꿀먹은 벙어리수준이다. 강성 친문 지지층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시달릴 수도 있는 민감한 사인인 만큼 나서봐야 좋을 것 없다는 부자몸조심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주요 현안과 관련해 다름과 차이를 허용하지 않고 추락하는 셈이다.

뉴시스
이해찬 대표 시절 민주당 의총, 뉴시스

, 내로남불 말뒤집기비례위성정당 창당·재보선 공천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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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 친문 지지층 의식해 의원들 꿀먹은 벙어리전락

단일대오를 종용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민주당의 행태는 20대 국회와 비교해도 다르다. 20대 국회 시절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면서 당 안팎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던 이른바 조금박해(조웅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의원)’ 그룹도 21대 국회 출범과 더불어 사실상 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국정운영 기조에 반하거나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의견을 냈다가는 친문 지지층의 문자폭탄이나 항의전화, 댓글테러 등의 공세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민주당 안팎에서는 강성 친문 당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발언 수위를 조정하거나 아예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주당의 침묵정치가 차기 대선승리와 단일대오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으로 작용할지, 소수 의견 배제를 통해 파멸로 달려가는 으로 작용할지 짚어봤다.

약속 뒤집고 꿀먹은 벙어리가 된 의원들이재명, ‘침묵

민주당은 최근 1년 동안 주요 현안에 대해 수시로 말바꾸기를 이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는 공언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국민의힘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창당에 나서자 민주당은 이를 맹비난했다. 이후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 없이는 의석수의 막심한 손해는 물론 당시 자유한국당에 원내 1당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 180도 말을 뒤집었다.

총선 직전에서야 전당원투표를 통해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결국 만들었다. 당시 조금박해의 일원이었던 김해영 의원이 단기필마식으로 당 방침에 저항했지만 허공에 메아리였다. 김 의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의원들이 침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초대형 말바꾸기는 최근에도 이어졌다.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논란이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당헌(962)에 따르면 공천이 불가능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여파로 보선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 4월 재보선의 경우 미니대선으로 불리는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민주당의 고민은 커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 속에서 민주당은 또다시 말을 뒤집었다. ‘전당원투표라는 편법을 무공천 당헌 규정을 손질한 뒤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선에 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의 전형과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민주당 내부의 자정작용은 사실상 제로 상황이다. 민주당의 침묵은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오히려 키우고 있다. 이 대표와 이 지사 모두 대권으로 가는 1차 관문에서 친문 지지층의 확실한 마음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재보선 공천 논란과 관련, 친문 지지층을 의식하며 총대를 메고 전당원투표를 밀어붙였다. 이 지사 역시 재보선 공천 논란 관련해 애초 당이 문서로 규정하고 약속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가 서울 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 없다며 말을 뒤집었다.

현역 의원들이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정계은퇴한 원로들이 소환되고 있는 셈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민주당이 전당원투표를 통해 4월 재보선 공천 방침을 사실상 확정한 것과 관련, “지금의 정치 세태가 명분을 앞세우기보다 탐욕스러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너무 명분이 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유 전 의원은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대해서도 비교적 중립적인 스탠스에서 조언을 건넸다. 친문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추미애 장관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윤석열 총장을 거칠게 비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 전 의원은 지금 저렇게 고집 센 둘이 충돌하니까 누가 말리지도 못하고 있다이대로 방치하는 건 대통령에 너무 부담이 된다. 결국 청와대가 나서서 이거 어떻게든지 정리를 해야 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친문진영 공공의 적금태섭 탈당, ‘삼성 저격수박용진 침묵

금태섭  전 의원, 뉴시스
금태섭 전 의원, 뉴시스

예민한 정치 이슈에 대해 침묵하는 민주당의 마스크 정치는 금태섭 전 의원의 탈당 이후 보다 심화됐다. 지난 연말 여야간 갈등이 첨예했던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에 기권표 행사를 이유로 징계를 받았던 금 전 의원의 탈당은 상징적이다.

금 전 의원은 공수처 법안에 대한 기권표는 물론 지난해 조국사태 당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언행 불일치라고 비판했다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확실하게 미운털이 박혔다. 합리적 성향의 이미지로 여야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던 금 전 의원은 이후 부정부패나 비리가 아닌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다름과 차이에 대한 포용을 강조해온 민주당의 옹졸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 전 의원은 당 안팎의 빗발치는 비난에 결국 탈당을 선택했다. 금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탈당계에서 우리 편에 대해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 설명 없이 뻔뻔스럽게 바꾸는 말뒤집기행태가 나타난다더 이상은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금 전 의원이 지적한 더 큰 문제는 당이 강성 친문 지지층의 눈치를 너무 본다는 점이었다.

금 전 의원은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힌다당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마저 양념이니 에너지니 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눈치를 보고 정치적 유불리만을 계산하는 모습에는 절망했다고 토로했다. 금 전 의원의 지적대로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해당 의원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게시판을 강성 친문 지지층의 비난으로 도배가 된다.

아울러 주요 정치기사 댓글에는 입에 담기도 힘든 험한 악플이 달린다. 이 때문에 일부 의원들의 경우 주요 현안에 소신을 밝혔다가도 진의가 잘못됐다”, “언론이 왜곡 보도했다며 발언을 철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금 전 의원의 탈당과 관련해 당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조금박해의 일원으로 불렸던 박용진 의원마저 침묵했다. 박 의원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비타협적인 기조로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정치인이다. ‘삼성 저격수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두려움없는 정치행보를 이어갔던 박 의원도 당 안팎의 예민한 이슈에는 아예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서 박 의원은 추미애 장관아들의 군복무 특혜의혹 논란에 교육과 병역은 온국민의 관심사라 국민의 역린이라고 사과했다가 2의 금태섭이냐며 탈당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실제 금 전 의원의 탈당 당시 민주당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박 의원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거의 대다수가 침묵을 선택했다. 일부 의원이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이마저도 익명을 전제로 한 대답이었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민주당조금박해실종

보수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정당이었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집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새누리당과 비교했을 때 당내 민주주의도 상대적으로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경우 주요 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방침이 결정되면 별다른 이견 없이 당 소속 의원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민주당 역시 점차 과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당내 소수의견의 상징으로 소신파 의원 그룹이었던 조금박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보좌관은 이와 관련 민주당은 과거 소수 의견이 어느 허용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지난해 조국사태에 이어 최근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을 거치며 획일화된 의견이 지배하는 정당으로 급변했다게다가 친문 지지층의 워낙 드센지라 주요 의원들이 불가피하게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조금박해가 사라진 민주당은 주요 현안에 대해 일제히 함구하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의 탈당 사례에다가 당내 주요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친문 지지층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정책 대실패는 물론 인사문제, 주요 현안에 대한 청와대의 독주 기조가 지속되고 있지만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친문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해 자연스럽게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 강성 친박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할 수 없었던 새누리당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모습이다.

여권 내부사정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대선주자는 물론 당 지도부, 중진의원마저도 강성 친문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할말을 못하고 침묵하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당이 지나치게 획일화되면 내년 4월 재보선 이후 본격 대선국면을 맞아 외연 확대와 중도층 공략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친문 지지층의 지지를 얻지 않고서는 대선후보로 나설 수 없다는 점에서 강성 친문 눈치보기와 애매한 침묵이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뒤 결과적으로 거대 여당의 침묵은 약이 아니라 독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여야간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대선이라는 전쟁에서 패배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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