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화 경계시스템’에 2400억 들였는데 무용지물?

국방부 청사 별관. [뉴시스]
국방부 청사 별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군사분계선을 넘어 강원도 고성군으로 넘어온 북한 주민으로 인해 우리 군에 대한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명 ‘철책 귀순’이라고 불리는 이번 사건으로 군 경계시스템의 허술한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 지난 2012년 ‘노크 귀순’ 사건 이후 군이 대북 감시를 위해 약 2400억 원을 들여 도입한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허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형국이다.

경계 실패논란 확산 속 반박만 하는 軍···홍준표 무슨 변명이 필요하냐

이번 사건에서의 주요 쟁점은 군 최전방 경계부대(GOP)를 뚫고 남하한 북한 주민 A씨가 철책을 타 넘었음에도 정상 작동하던 철책의 감지센서(광망)가 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성능 감시카메라를 비롯, 철책에 깔린 광망은 군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이다. 지난 2012년 ‘노크 귀순’ 사건, 현역 병력 부족으로 전방에 대규모 경계근무 투입이 제한되는 등의 문제로 지난해까지 약 2400억 원을 투입, 구축했다.

A씨는 GOP 철책과 윤형철조망 부근에 설치된 감지센서 등 두 단계의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모두 뚫고 남하했다. 군의 최신화 경계시스템을 무력화 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군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내년 과학화 감시 장비 추가 도입에 올해보다 16배나 많은 예산 약 2000억 원을 편성한 상태다.

병력이 줄고 있는 상황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지만, 장비 설계와 운용의 문제점 등을 보완하는 게 더 시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래픽=뉴시스]
북한 동부전선 귀순 상황도. [그래픽=뉴시스]

미흡한 점 있지만

경계 실패 아니라는 국방장관

서욱 국방장관은 최근 철책 경계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서 장관은 지난 9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묻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 질의에 “전방 경계부대를 보면 과거 병력 중심의 경계 체계에서 과학화 중심으로 바꾸면서 철책의 소수가 있다”며 “과거에는 GOP에서 130% 운용했는데 보직률을 분석해 보니, 100%에서 조금 부족한 97~98%가 돼 있다. 과거보다는 적은 운용을 하고 있다. 경계작전 시스템을 바꿔서 하고 있는데 미흡한 점이 있다면 현장점검을 통해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경계 실패 책임을 추궁하는 무소속 홍준표 의원 질의에는 “비무장지대 안에서 미리 발견하면 전방에서 침투하는 적이나 귀순자를 잡을 수 있는데 이번 경우는 발견이 좀 안 됐다”면서 “경계 작전을 했던 감시 장비를 리플레이 해봤는데 거기가 차폐율이 높아서 감시 장비에 걸리지 않았고 감시 장비가 철책을 넘을 때 본 것이다. 차단선에서 작전을 해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래도 철책 뒤에서 검거했기 때문에 잘된 작전이라고 말씀드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철책 종심에서 검거했다”고 말했다.

“여론 무마 위해

장병 징계 말아야”

의원들은 군 경계 시스템의 심각한 허점이 드러난 사건이라며 힐난했다.

한 의원은 “국방개혁의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면서 “군인 수를 줄이고 과학화 장비로 경계한다고 하지만 산림이 우거진 산악지역에 출동병력이 가까이 없으니 결국 생포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병들을 징계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 속죄양을 찾는 것은 우를 범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국방개혁을 재진단하고 현장상황을 분석해 근본적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방부의 임무”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해병2사단 경계 문제가 거론될 때는 넘어간 사람이 덩치가 작아서 개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얘기했지 않나”라며 “지금 또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참 옹색하다. 경계가 실패하고 휴전선이 뚫리면 결과에 대한 책임 여부만 문제되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변명이 필요하냐”고 따졌다.

조사 결과 발표 안할 듯

“경계시스템 노출 우려”

군이 경계 실패 논란에 대해 반박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군이 이번 사건을 경계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전을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지난 10일 오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철책 전방에서 조기 식별하고, 작전을 종결하는 것을 최선으로 하지만 GOP 작전의 특성상 종심에서 차단해 봉쇄선 안에서 귀순자 신병을 확보한 것은 작전 절차대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군이 경계 실패를 해 놓고 장비 탓만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한편 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결과를 추가적으로는 설명할 계획은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경계 시스템에 대한 노출 우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 공보실장은 지난 12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과학화경계시스템 전반에 대해 전투실험 등 합동실사를 통해 기술적인 문제를 포함한 광망의 기능 상태, 기능 발휘 상태를 면밀히 진단하고 있다”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장 조사 내용을 공개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보완 사항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우리 경계시스템을 노출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추가로 설명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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