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 제한 검토 중···공정성 논란 우려, 기준 ‘고심’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사내 갑질 행위가 줄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직장에서 상대적인 약자로 분류되는 비정규직 청년, 여성, 5인 미만 사업자 노동자 등은 아직까지 직장 내 괴롭힘이 여전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중소‧중견 기업에 대해 취업청년 목돈마련 사업인 ‘청년내일채움공제’ 참여 배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집중된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기준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어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신고 자체로 요건 삼기 어렵다···신고 취하 태반

최근 청년내일채움공제 만기를 채우기 위해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부당 처우를 참고 있는 청년들의 사례가 알려졌다. 정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중소‧중견 기업의 ‘청년내일채움공제’ 참여 배제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정량화된 기준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기업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을 대상으로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괴롭힘뿐만 아니라 문제가 제기되는 회사를 가입 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아직 정해진 것은 없고 현재 가입 제한으로 여러 가지를 두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추가할 부분이 있을지를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청년들, 제도에 발목 잡힌다?

중소‧중견 기업에 취업한 청년 노동자가 수년간 근속하면서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가 돈을 보태 목돈을 마련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인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이 2년간 300만 원을 적립해 1600만 원을 받는 2년형과 3년간 600만 원을 적립, 3000만 원을 받는 3년형으로 나뉜다.

이는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방지하고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에게 자금을 마련할 기회를 준다는 의의가 있다. 중도해지 시 혜택은 무효화된다.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재가입은 사업장 휴‧폐업, 도산, 임금 체불, 권고사직, 고용보험료 체납, 기타 지방관서장이 인정하는 경우 6개월 이내 재취업을 전체로 1회 허용한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과 운영 때문에 최근 일각에서는 제도에 발목을 잡힌 청년들이 사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도 참고 있다는 호소가 지속됐다.

올해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이직한 경우, 공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으나 직장 내 괴롭힘을 애초 공제 가입 요건으로 반영하려는 것은 이러한 폐해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업에 대해서는 노사 분규 중인 사업장, 임금체불 사업주, 중대산업재해발생 사업장을 비롯, 고용부 장관 또는 지방관서장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기업의 가입을 제한할 수 있다.

임금 체불-직장 내 괴롭힘

동일선상 판단 어려워

문제는 임금 체불 등과 직장 내 괴롭힘을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임금 체불 등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으로 처벌 조항이 명시돼 있으나 직장 내 괴롭힘은 이 같은 부분이 전무한 실정이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회사가 신고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가해자나 괴롭힘 자체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가장 유력하다고 떠오르는 기준은 고용부에 접수되는 신고 건수다. 그러나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파생되는 문제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신고 자체를 직장 내 괴롭힘 인정 기준으로 유의미하게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신고가 접수되면 지방관서에서는 사업장이 이를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개선 지도를 하고, 사업장의 조치를 확인한 뒤 불합리한 경우 감독관이 조사에 나서는 방식이다. 괴롭힘 판단 여부에 대해 감독관의 판단이 작용하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근로자가 스스로 신고를 취하하는 경우도 많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지난 7월가지 1년간 총 신고 사건은 4975건에 달했는데, 이 중 2156건은 행정조치 없이 취하됐다. 개선지도는 18.2%(848건), 검찰 송치는 1.2%(53건)로 나타났다.

사업장에 신고된 단순 건수만으로 페널티를 주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신고는 조사를 해서 밝혀봐야 하는 부분으로, 말 그대로 근로자의 주장에 불과하다”면서 “단순 신고 건수만으로 해당 사업장에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확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전했다.

또 괴롭힘의 주체가 사업장이 아닌 경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여지도 있다. 근로자 간 괴롭힘이 발생하면, 정작 근로자에 대한 처벌은 할 수 없지만 이를 기업이 대신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

고용부는 이 같은 문제들을 고려, 신중하게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청년내일채움공제 위탁 기관들을 만나 제도 운영상 문제점과 현장 애로를 청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등 최근 문제되는 사례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부분을 담아가야 할 것으로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기업을 파악하는 부분도 쉽지 않은 만큼 면밀히 검토해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노무사와 변호사 등 노동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조항도 신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출범 후 3년간 들어온 이메일 제보 1만여 건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근로기준법 개정안 14건 등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을 최근 발표했다. 이들은 여야 국회의원, 고용부와의 간담회를 통해 개정안을 설명하고 제보자들과 캠페인을 벌여 올해 안으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촉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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