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식사] 저자 주영하 / 출판사 휴머니스트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인류가 살아온 역사속에서 먹고 살았던 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음식의 역사를 통해 그 사회와 문화가 비로소 보이고 세계사적 맥락에서 차지한 위치를 재평가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부지런히  K-푸드를 알린 탓에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서든 한국 음식과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외국 문화 교류를 활발하게 이끌었던 19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음식문화 또한 세계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입맛을 추구해 왔다. 세계화와 더불어 이룩한 초근대적인 맛의 문화는 한국 마트에서도 외국산 식자재와 공장재 식품의 수요를 늘리고 여러 음식 문화를 조합한 형태의 퓨전문화를 등장시켰다.

식인문학자 교수인 저자 주영하의 ‘백년 식사’에서는 근현대사를 시작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 한국 음식 문화의 원형과 변화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본다. 책에서는 한반도가 세계 식품체제에 편입되는 개항부터 식민지, 전쟁, 냉전, 압축성장과 세계화라는 여섯 시기에 오른 한국인의 식탁 문화를 살펴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한국인의 입맛의 변화과정을 탐구하고 추적해 나간다.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음식 민족주의를 넘어서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한국 음식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에피소드에서 그치지 않고 식량 주권이나 거대한 농축산물 산업과 건강한 먹거리, 팬데믹 시대의 식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인문학적 성찰과정을 통해 상세하게 짚어준다. 주 교수가 그간 치밀하게 분석한 문화인류학과 역사학, 사회학등의 다양한 학문적 접근방식을 총해 단순히 썰을 풀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근현대적인 역사적 배경을 통해 오늘날 한국음식문화의 원형과 변화과정을 낱낱히 살폈다.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분명 과거 시점의 지나간 이야기 이지만 독자의 흥미 유발을 위한 친근한 요소를 심어놓는 데 주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한반도 곳곳을 여행하며 조선의 음식을 즐긴 미국 해군 조지 포크가 묘사한 조선의 음식문화를 기행하듯 따라가기도 했고, 서양 음식을 처음 접한 통역관 김득련의 소소한 실수담을  다루기도 했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여성과 공식적으로 처음 식사를 한 오찬의 메뉴를 설명해 주기도 하고, 대한제국 황실 찬사로 임명된 손탁과 크뢰벨 부인의 이야기로 한국인의 고전적인 식탁이 세계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기도 한다. 조선이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서서히 입맛이 제국주의로 길들여져 가는 과정을 일본식 공장제 간장과 그 시절 식탁을 장악한 화학조미료를  예로 들어주면서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음식과 식품 산업이라는 시선을 통해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했다.

특히 한국 음식문화의 분수령을 이뤘던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의 냉전 역사를 다루면서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대용식으로 삼았던 음식문화를 소개했다. 유엔과 선진국 등지에서 보내준 구호,원조품으로 만든 소면과 국수, 수제비, 빈대떡 같은 분식이 주를 이뤘던 시절을 그림을 그려나가듯 묘사하기도 했다. 이후 압축성장과 세계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급격히 성장한 우리나라의 공장제 식품 산업의 이야기부터 1970년부터 즐기기 시작한 활어회문화, 1980년대부터 유행했던 삼겹살 구이와 갈비살집의 변천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서 우후죽순 생겨난 패스트프드점과 여성 접대부가 사라진 한정식집에서 차려진 음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 후 시장개방과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세계화된 한국인의 입맛과 식량 주권의 실상을 오목조목 살피기도 한다.

저자 주영하는 인문학과 역사학배경의 음식과 문화를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다. 학부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문화인류학을 연구한 학자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담당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거 일본 가고시마대학교 심층문화학,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원 아시아학과에서 방문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저자의 또 다른 저서로는 ‘음식전쟁 문화전쟁’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음식인문학’ ‘식탁 위의 한국사' ‘장수한 영조의 식생활’ ‘밥상을 차리다’ ‘한국인, 무엇을 먹고 살아왔나’ 등이 있다.

이 책과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는 저자 배한철의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김소연의 '건축, 근대소설을 거닐다', 이상길의 '상징권력과 문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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