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평화 무드’ 노력에도 北 도발은 ‘현재진행형’

연평도 포격 뉴스 [뉴시스]
연평도 포격 뉴스 [뉴시스]

 

[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이 6.25전쟁 이후 처음 남한 영토를 포격한 ‘연평도 포격 도발’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포성은 멈추었지만 연평도를 비롯한 서북도서는 아직까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한반도의 화약고로 남아 있다. 지난 9월21일에는 연평도 인근에서 해양수산부 소속인 우리 측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피격 소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에 대한 정부의 ‘평화 무드’ 조성 노력과는 별개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일요서울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년을 맞아 당시 상황을 다시 돌아보고 북한의 끝나지 않은 군사위협을 추적해 봤다. 

-다시 돌아본 ‘연평도 포격 도발’

북한은 2010년 11월23일 남한의 호국 훈련을 핑계로 연평도를 포격했다. 이날 북한은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 영해에 대한 포 사격이 이뤄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경고한다”는 통지문을 우리 측에 발송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훈련 중단 요청을 거절하고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했다. 

연평도에 주둔한 해병대는 10시15분부터 14시24분까지 4시간 동안 3,657발의 사격 훈련을 했다. 해병대의 포격 훈련이 종료된 이후 북한은 평사포, 대구경포 등을 이용해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무차별 포격을 시작했다. 북한의 최초 포격이 시작되자 해병대 자주포 부대는 K9 자주포들을 대피시설인 포상 내부로 일단 숨기고 나머지 해병들도 대피호로 대피했다. 이후 북한의 1차 포격이 잠잠해지자 해병대는 K9을 다시 이동시켜 첫 피격이 있은 지 13분 후인 14시47분경부터 대응 포격을 시작했다. 

북한의 초반 포격에 한국군은 2대의 K9 자주곡사포가 손상되어 남은 3대의 K9 자주포로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무도의 북한군 기지를 향해 50발의 대응 사격을 했다. 우리 측이 30발쯤 사격할 때 1대를 긴급 수리해 총 4대를 투입했다. 이후 북한이 다시 우리군 레이더 기지를 노리고 개머리 반도에서 포격을 개시하자 한국군은 다시 30여 발의 포를 개머리 반도에 발사했다. 교전이 중지될 때까지 북한군은 총 170여 발의 포를, 한국군은 80여 발의 대포병 사격을 실시했다. 오후 3시41분 포격은 일단 종료됐다. 

이 공격에서 북한은 방사포를 사용했다고 한다. 122mm와 240mm 로켓탄 일부가 연평도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북한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연평도 포격을 준비했다는 증거였다. 240mm 방사포는 해안포부대에 배치되지 않는 군단급 지원화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한 포탄 중 절반 정도는 바다에 떨어지고 나머지가 연평도에 떨어졌다. 당시 발견된 탄피로 볼 때 사용탄은 130mm, 75mm의 포와 방사포탄이었다. 우리 군에선 앞의 두 개로 영점 조준을 하고 방사포를 중심으로 포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북한의 포가 오차도 매우 크고 지상에 떨어진 것 중에도 불발탄이 20여 발이나 되어 군이 수거했다. 비율로 따지면 지상에 낙하한 것만 불발탄 비율이 약 30%가 넘어갔다. 그것도 남한 수도권을 노리는 4군단에서 미리 준해 놓고 발사한 것도 이렇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연평도 지상에 폭격해 제대로 폭발한 포탄들도, 우리군 포대나 군 시설에 정확히 떨어진 건 별로 없고, 대부분 엉뚱한 민간인 지역 여기저기 마구잡이식으로 산만하게 떨어졌다. 

한편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일어나고 있을 때 우리 공군은 14시38분 KF-16, F-15K 전투기와 해군 함정들을 보냈다. 그러자 북한도 MIG-23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경비정도 출동시켜 공중과 해상에서도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를 볼 때 북한이 확전을 각오하고 도발을 저지른 것으로 분석됐다. 

해병대 [뉴시스]
해병대 [뉴시스]

 

- ‘연평도 포격’ 이후...외신 “유령 마을 방불케 해”

1시간가량(14시34분~15시41분) 북한에서 쏟아진 포탄들로 인해 우리군 막사가 파괴되고 인근 숲 등 10곳이 불에 탔다. 떨어지는 포탄들 중 몇 개가 연평도 주민들의 가구 위로 떨어져 민간인 부상자도 발생했으며, 상가 건물이 붕괴됐다. 또 해당 지역 소방서는 차량 1대와 전담 소방요원이 2명밖에 없어 진화 작업이 힘든 가운데 있었다. 정부는 다급히 소방차 24대를 긴급 투입해 포격으로 발생한 산불과 가옥과 창고 등을 태운 주택가 화재까지 모두 진화했다. 

당시 1,7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피했다. 연평도 포격 발발 직후 연평도로 향하는 모든 항로는 폐쇄됐고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어선을 타고 인천 본토로 대피했다. 나머지 주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리고 해경의 지원 아래 어린이, 노약자, 환자를 우선해 346명의 주민들이 해경 경비한 두 척에 나눠 타고 인청항에 도착했다. 이후 해경, 해군의 공기부양정으로 184명을 추가로 더 태우고 인청항에 도착했다. 이후 추가적인 피난을 통해 연평도 주민의 80%가 인천으로 대피했다. 당시 외신들은 연평도 마을들을 둘러보며 유령마을이란 표현까지 썼다. 포격이 끝난 후 확인된 한국군 피해는 해병대원 2명 전사, 6명 중상, 10명 경상이며 민간인 피해는 2명 사망, 3명 경상으로 조사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모습을 17일 보도했다. 2020.06.17.[뉴시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모습을 17일 보도했다. 2020.06.17.[뉴시스]

 

- 아직까지 수도권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

1994년 3월 박양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했다. 북한의 포병전력이 수도권을 겨냥해 장사정포를 겨누고 있기 때문에 한 발언이었다. 군 안팎에선 북한의 장사정포는 유사시 수도권에 핵무기에 준하는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북한이 서부전선 일대에 집중 배치한 장사정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170mm 자주포 150문과 240mm 방사포 200문이다. 자주포란 궤도차량에 얹혀 있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포를 말하고, 방사포는 포신 여러 개를 묶어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만든 한국군의 다연장포와 비슷한 개념이다.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구축된 갱도진지에 숨은 이들 포의 사거리는 각각 40~60km에 달한다. 

국방부가 그동안 국회에 보고한 자료를 종합하면 군 당국이 북한의 장사정포에 대한 남한의 피해는 매우 크다. 우리 군의 분석에 따르면 개전 초기 한 시간을 기준으로 170mm 자주포는 총 3618발, 204mm 방사포는 1만2068발을 발사할 수 있다. 수도권이 이런 북한의 폭탄세례를 받게 되면 325만 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 혹은 부상의 직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여기에 북한의 300mm 방사포의 최대사거리가 중부권까지 미친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우리 측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2018년 북한과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북한은 군사합의 이후 26번의 미사일 도발과 작년 11월엔 서해 NLL 부근 창린도에 해안포 사격을 했으며 지난 5월엔 비무장지대 중부전선에서 한국군 감시초소(GP)에 총격을 가했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 6월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최근엔 우리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을 피살 소각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연평도 포격 도발 10주년인 현재까지도 일련의 사태가 증명하듯 북한의 도발은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은 언제 어떻게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도발하지 모른다. 우리 정부가 제2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방지하기 위해선 남북 간 교류 협력 추진과는 별개로 우리 군의 대응과 대비태세를 분명히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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